"박정희 장군의 혁명군, 대한민국 구출했다"

[분석] 과거 국사 국정교과서 살펴보니... 집권 세력에 정당성 부여

등록 2015.10.11 20:59수정 2015.10.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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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1979년 국사 국정교과서. ⓒ 우리역사넷


"사회의 비능률적, 비생산적인 요소를 불식하고 전근대적 생활 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

1979~1981년에 사용된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에 나온 10월 유신에 대한 내용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에 단행한 유신은 장기집권을 위한 초헌법적 조치라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다. 하지만 당시 국정교과서는 10월 유신을 민주주의의 정립이라며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해방 이후 중·고등학교 역사 관련 교과서는 검정교과서였다. 1972년 유신 이후 1974년 제3차 교육과정에서 처음으로 중·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가 나왔다. 2002년 한국근·현대사 검정 교과사가 나올 때까지 역사 과목은 국정교과서가 독점했다.

국정교과서는 집권 세력의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통성이 약한 정부에서 내놓은 국정교과서는 정당성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점철됐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독재·친일을 미화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교과서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979년 교과서] "박정희 중심 혁명군, 대한민국 구출"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교과서에서 5·16 쿠데타는 혁명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1979년 국사 교과서는 대단원 '민족중흥의 새 전기'의 첫 번째 소단원 '민주주의의 성장'에서 4·19혁명을 4월 의거로 표현했다. 4·19 혁명으로 세워진 제2공화국 민주당 정부를 두고 "사회 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면서 5·16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교과서는 이어 "군부의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 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혁명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라고 서술했다.


또한 "(혁명군이 구성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의욕적이고도 참신한 설계로 국정을 과감하게 개혁하였다", "자립 경제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등 혁명 공약을 착실히 실천에 옮겨 갔다"라고 강조했다.

소단원 '대한 민국의 발전'에서는 경제성장, 새마을 운동, 10월 유신을 다뤘다. 새마을 운동을 두고 "이 정신적 기반 위에서 전통 문화의 올바른 계승을 도모하고 민족 역량의 근대적 발전을 계속 추구한다면, 우리의 역사적 과제인 민족 중흥의 터전은 기필코 다져질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 교과서의 백미는 5·16 쿠데타 세력의 거짓말을 그대로 실었다는 데에 있다. 5·16 쿠데타 세력은 당시 혁명 공약에서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교과서가 나온 1979년 18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었다.

혁명공약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고 바뀌었다.

역대 국사교과서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우리역사넷)을 운영하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당시 교육 과정을 두고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정부는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 확립을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국사 교육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보다는 정부 시책을 교육에 효율적으로 반영하려는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1982년 교과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대신 자화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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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2년에 나온 국사 국정교과서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서 일어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찾을 수 없다. ⓒ 선대식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고등학교에 적용된 4차 교육 과정의 국사 국정교과서 역시 3차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단원 '민주주의 발전의 새 전기'에서 5·16 쿠데타를 두고 "박정희 등 군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국민을 부정 부패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 국가를 건설하자는 기치 아래 5월 혁명을 일으켰다"라고 서술했다.

소단원 '대한민국의 발전'에서 새마을 운동에 대해 "농어촌의 근대화는 물론, 도시에서도 새로운 의식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어 국가 발전의 정신적 터전이 마련되었다"라고 했다.

교과서는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소단원 '제5공화국의 성립'에서 "10월 유신 이후 성립한 제4공화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징후를 보였다. 이리하여, 이를 막기 위한 개헌 논의가 일자, 대통령은 개헌 운동을 중지시키는 등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0·26 사태를 맞았다"라고 서술했다.

이어 전두환 정권의 자화자찬으로 이어진다. 교과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 보위 비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라고 기록했다. 교과서에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찾아볼 수 없다.

국편의 평가는 혹독하다. 국편은 "여전히 지배층 위주의 정치사, 제도사 서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중의 생활이나 입장을 무시한 채 지배층 위주의 사관과 역사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역사발전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식민지 시대 좌파와 연관된 민족운동, 사회 운동은 비중을 줄이거나 의의를 축소하여 서술한 것을 두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이전 교과서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 받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사 교과서에서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시련과 지배층이 중심된 극복을 강조함으로써 반공 체제와 독재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1990년 교과서] 민주화 이후 이념 편향성 비판 수용했지만

1990년 고등학교에 적용된 제5차 교육 과정의 국사 국정교과서는 민주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와 함께 현 정권에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전 정권을 비판하는 국정교과서의 특징은 여전했다.

교과서는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언급했다. 소단원 '민주정치의 발전'에서 "10·26 사태 이후,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12·12사태가 일어났다. 이를 전후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라고 적었다. 전두환 정권을 두고 "민주화 운동의 탄압과 여러 부정사건 및 비리로 인하여 국민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다"라고 평가했다.

'광복 직후의 남한과 북한', '북한의 공산화' 등 북한에 대한 소항목이 처음 마련됐다. '5월 혁명'은 '5월 군사 혁명'으로 바뀌었다. 국편은 "분단 체제와 현 집권 체제를 합리화하는 논리가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교과서에서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 운동에 대한 서술도 늘어났다. 국편은 "1980년대 이후 제기되어 왔던 국사 교과서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1996년 교과서] 5·16 군사 혁명 → 군사 정변

문민정부인 1996년 고등학교에 적용된 6차 교육 과정의 국사 국정교과서에서는 앞선 군사 정부에 대한 서술 태도가 매우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5·16 군사 혁명'은 '5·16 군사 정변'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4·19 의거'는 '4·19 혁명'으로 바뀌었다. 소단원 '5·16 군사정변과 민주주의의 시련'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부 세력이 사회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구실로 군사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상에 반대해 일어난 6·3 시위가 처음으로 교과서에 실렸다.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에 참여한 시민과 대학생들을 억압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유신에 대해서는 "강력한 통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였다",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정치 활동을 제약한 독재 체제였다"라고 기록했다.

전두환 정권을 다루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더욱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교과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면서 "이 때 민주주의 헌정 체제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도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라고 기록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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