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어록' 같은 박정희 영웅담, 교과서에 실리나?

청운각에서 '박정희표' 교과서와 '박근혜표' 교과서를 엿보다

등록 2015.10.15 21:13수정 2015.10.1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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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하는 박근령 지난 2010년 11월 14일 경북 문경시 청운각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기념행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둘째딸 박근령(오른쪽)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유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1 아이에게 경북 문경은, '새재'가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장으로 각인됐다. 문경 여행에서 아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맨 먼저 떠올린 건 '청운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37년 3월부터 1940년까지 2월까지 만 3년간 기거했던 '하숙집 유적'이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직후, 그 기간 그는 문경 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문경읍내에서 새재로 가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청운각이 있다. 도로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 걸려있어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찾아가기 쉽다. 대통령의 자취가 유적으로 보존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아이가 느끼기에도 남다른 구석이 있다. 그가 머물던 초가는 이엉을 얹어 복원되어 있다. 그 옆에는 대통령 내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우뚝하고, 기념관까지 나란히 세워져 '성역'을 연상케 한다.

문경초등학교 교문과 바로 이어져 있어, 아이들은 매일 등·하교할 때마다 이곳을 문방구나 놀이터처럼 지나다니게 될 듯하다. 문경의 아이들은 굳이 교과서가 아니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오가며 배우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선지 사당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는, 문경 아닌 곳에서 부러 찾은 경우가 많을 테지만,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유난히 많았다.

과연 청운각은 '신성한' 곳이었다. 곳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련된 '영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이라면 그저 관람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치부할 텐데, 문화재 표식처럼 반듯하게 세워진 안내판에 버젓이 적혀 있어 자못 놀라웠다. 읽다가 자칫 다른 관람객들 앞에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역사 왜곡에 엉터리 찬양, 광신도의 성지같은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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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앞에 세워진 높이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 ⓒ 권우성


"어투와 내용이 마치 '김일성 어록' 같은데요?"

조롱하듯 아내가 내뱉은 말이다. '청운각보존관리위원회' 이름으로 세워진 안내판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헛갈리는 내용이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올라와 있었다. 안내판을 세운 보존관리위원회를 '제자들의 지원 단체'라고 밝혀두었으니, 당시 제자들의 기억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록된 내용마다 검증된 사실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된 표현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시다가 일본인 교사에게 발각돼 급기야 집단적인 대충돌로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교사로 재직 중에 일제의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했다 탈락한 사실이 있다. 또, 역시 교사 시절이었던 1939년 3월, 혈서를 써서 천황에 충성 맹세를 하고 육군군관학교에 가까스로 입학하게 된 전력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가 일본인들과의 민족 갈등으로 교직에서 쫓겨났다는 듯이 서술한 건 엄연한 역사 왜곡이다. 언뜻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하다. 더욱이 "선생으로는 일본인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총칼을 차고 와서 이겨주마" 외치며 학교를 떠났다고 덧붙였다. 이 무슨 황당한 주장인가. 진정 그런 각오를 했다면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해야 옳지, 어쩌다 독립군을 소탕하던 만주국의 군인이 되었나.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가난 속에 어렵게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배고픔도 면하고 대접도 받을 수 있는 그때 그 좋은 교직에 연연치 않고 조선인으로서는 극히 위험한 행동을 연속하셨다"는 내용은 또 어떤가. 당시 사회적 성공으로 여겨졌던 교직에 연연치 않은 건 맞지만, 그건 민족혼 때문이 아니라 출세에 대한 집착으로 보는 게 그의 이후 행적으로 보아 더 설득력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군 토벌대의 장교가 된 것이 '조선인으로서 극히 위험한 행동'이었을까.

백 보 양보해서, 청운각은 궁벽한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에서, 일제의 촉망받는 군인으로, 나아가 해방 직후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뿐이다. 역사적 교훈 운운할 곳은 전혀 못 된다. 더욱이 그가 만주국 신경 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의 자취라면, 성역화하기보다 차라리 남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청운각 주변의 '유물'들은 그 황당함에 있어 안내판과 비교할 수 없다. 특히, 담벼락의 네모진 유리관 안에 보존되고 있는 살구나무 고사목 이야기는 압권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로부터 이틀간 계절을 뛰어넘어 꽃을 피운 뒤 곧장 말라죽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충절의 나무'다. 미물조차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충절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훗날 자연현상의 이적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셈인데, 이 또한 우리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기이한 이야기에서 끌어온 냄새가 역력하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신라 말 속세를 떠나며 최치원이 꽂았다는 지팡이가 천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나무로 살아있다는 전설을 뒤집어 활용한 사례라고나 할까. 아이의 말마따나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라는, 딱 그 수준이다.

그 '신비로움'은 대를 잇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 있는 옛 우물터에서 2010년 즈음,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가지가 무성한 오동나무 한 그루가 솟았다고 한다.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진 그 오동나무는 곧장 호사가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하고 수긍하는 '근거'가 됐다. 이적이라기보다는 '꿈보다 해몽'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은 이 나무는 '박근혜 오동나무'로 명명되었다.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른 오동나무의 특성상 나무의 크기만으로 나이를 유추할 수는 없다. 느닷없는 나무의 출현을 두고 사실관계를 일일이 따질 수 없다는 말이다. 기실 그럴 필요도 없다. 문제는 수백 년 전의 야사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마치 사실처럼 기록하고 관광객들에게 소개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상황을 아내는 이렇게 비유했다.

"적어도 이곳에선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는 '정사'보다 오동나무의 예언이라는 '야사'가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 것 같아요. 같은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그래요."

풍전등화와 같은 우리 역사 교육, 반신반인의 신화 배우나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 사진도 걸려 있어, 그곳을 자주 찾는다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게 얼마 전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는지 여쭤보았다. 문경에서 개최된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의 개회식 때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는 소식을 얼핏 들어서다. 딱히 궁금해서라기보다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그의 '퉁명스런' 답변은 분위기를 더욱 데면데면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음이야 굴뚝같았겠지만 오시진 않았어요. 우리 대통령께서 그때 짬을 내 이곳을 방문하셨다면, 허구한 날 반대만 하는 야당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공사 구분을 못 한다는 둥, 세금을 사적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둥 설레발치고 야단법석을 떨었겠죠. 대통령께선 늘 그렇듯 정치적인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몸소 조심하신 거죠."

사뭇 거친 말투에서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 같은 게 느껴졌다. 순간 그 답변이 설마 그의 '진심'일까 싶기도 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천 갈등 등 여당 내에서도 끊임없이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현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우리 대통령'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모두 다른 사람들 책임이라는 걸까.

그의 '진심'은 방명록의 관람객들이 남긴 글들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사심 없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대통령" 따위의 헌사로 넘쳐났다. 빈칸으로 남아있을지언정 두툼한 방명록에 부정적인 내용의 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방명록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누군가 평한 것처럼 '반신반인(半神半人)'인 게 틀림없다. 이럴진대, 그의 혈육인 현 대통령에 대한 왈가왈부는 이곳에선 일종의 금기일 수밖에 없다.

놀라운 건 방명록의 코흘리개 아이들이 남긴 글이다. 삐뚤빼뚤 글씨체로 보아 기껏해야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어른들이 남긴 글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에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결같이 "위대하고", "존경스럽고", "사랑하는" 분이다. 심지어는 개중에는 그를 '이순신'에 비유하는 글도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무릇 역사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건, 과거의 사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자랑스러운 과거도 우리 역사요, 굴욕적인 과거 또한 우리 역사다. 역사적 사건의 인과 관계를 자세히 살피고, 역사 속 인물의 공과 과를 함께 따져 오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청운각은 역사교육의 현장이 아니라, 차라리 '종교 성지'다.

이미 편견으로 굳어진 기성세대라면 몰라도, 아이들에게 '신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청운각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제 때 '동원된' 몇몇 어린아이들의 오래된 사진을 보며, 부당한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가엾은 교육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에 '반신반인'이 즐겨 언급될수록 그 역사는 신화에 가까워지게 된다.

다시금 풍전등화인 우리의 역사교육을 생각한다. 문경 청운각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미래를 미리 읽을 수 있었다. 말끝마다 "우리 대통령"을 읊조린 그 아저씨가 과거 1970년대 '박정희표' 국정교과서로 배운 세대라면, 방명록에서 만난 이름 모를 어린아이들은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부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짓을 그만두라.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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