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 왜 국회의원 선거운동 못할까

또보자마을학교 <사람책> 강의 "보좌관이 말하는 정치의 비밀"

등록 2015.10.18 15:51수정 2015.10.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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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 박선민


수업을 마치니 어깨가 뻐근하다. 최근 들어 가장 긴장된 자리였다.

'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을 마쳤다. 또보자마을학교는 성미산마을(서울 마포구) 사람들이 추진한 '마을과 학교가 함께 아이들의 교육을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말 그대로 '마을과 학교'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마을과 학교의 주인이 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망원동, 서교동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사람책>은 인근 성서중학교 학생들의 '진로 직업 체험의 날' 정규 수업으로 기획됐다. 마을에 살거나 마을에서 일하는 26명의 어른들이 사람책으로 참여하여 본인의 직업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총 190여 명의 학생들이 7~10명씩 26개 팀으로 나누어 본인이 배우고 싶은 사람책을 찾아간다. 나는 '보좌관이 말하는 정치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참여했다.

함께 한 학생들이 14세, 중학교 1학년이다. 내가 소개할 직업은 보좌관, 주제는 '정치'다. 같은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수업이 될지 물었더니 "어차피 다 잘 거야"라고 말했다. 신청자도 없을 거라고 했다. 대체 누가 국회나 정치 이야기를 듣고 싶겠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아이의 정직한 조언으로 고민은 배가 되었다. <사람책> 강연자 중에는 연예인도 있고, 뮤지컬 배우도 있고, 보드게임 강사도 있다. 내가 봐도 보좌관이라는 직업을 궁금해할 중학생은 없을 것 같았다.

무려 2시간을 보내야 한다. 평생 기억에 남을 명강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시간 내내 졸게 할 수는 없다. 딱딱한 수업을 했다간 정치에 대한 첫인상이 '지루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용'에 담되 아이들이 대상화되지 않도록 '형식'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또, 수업은 이론과 실습 각각 한 시간으로 구성해 달라는 것이 주최 측의 요청이었다. 요리 수업도 아니고, 실습은 뭘 해야 하나. 고심 끝에, 1교시 이론 수업은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해 설명하고, 2교시 실습은 '퀴즈와 게임'으로 수업 계획안을 짰다. '아이들이 유치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메모지와 스티커와 포스트잇 등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계속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신경 쓰이는 수업을 내가 대체 왜 맡았담.


정치, 그리고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궁금한 중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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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 박선민


10월 8일, 드디어 수업이다. 일곱 명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다행이다. 딴청을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학생들에게 <사람책>에서 내 강의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정치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보좌관이 하는 일이 궁금해서요." "사람책 소개 자료에 나온 보좌관, 국회, 정치, 정당, 민주주의. 이 말 보고요."
"정말 그게 궁금해요?"
"네!"
"재미없는 수업을 택해줘서 고마워요. 재미있는 수업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약간 불안해서 덧붙였다.

"음, 혹시 별로 재미없더라도 무조건 재미있었다고 소문내자. 어때요?"
"네!"

학생들이 웃어준다. 됐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궁금해서 온 학생들이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사람이고,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일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뒤에서부터 거꾸로 설명할 생각이다.

스웨덴 이야기로 시작했다. 스웨덴은 공공아동수당 제도가 있어서 태어나서부터 16세까지 누구나 한 달에 약 18만 원씩 받는다. 16세가 되면 20세까지 같은 액수를 학업 보조금으로 받게 된다. 대학 학비도 무료다. 대학생들은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상환의무가 없는 학업비 보조와 상환의무가 따르는 장기저리 융자금을 더해 학기 중 8개월 동안 매달 134만 원 가량을 받을 수 있다.

교육비가 무료이고, 수당도 주는데 대학 진학률은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을 안 가면 뭐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보통 1~2년 정도 쉬면서 여행을 떠나거나 직업 경험을 하며 진로를 탐색한다.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 전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 여러분과 같은 청소년기부터 자기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정치 활동을 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정당에서 '청소년 여름캠프'를 진행하는 데 여기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당의 청소년 조직 출신 인물이 지방의원을 하고, 국회의원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선거운동을 못 한다니..." 어이가 없다는 아이들

다음으로 정당에 대해 설명했다. 알고 있는 정당을 다 적어보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모두 맞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맞춘 학생도 있고, 민주당이라 말한 학생도 있다. 민주당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자 언제 이름을 바꾸었느냐며 굉장히 억울해했다. 노동당, 녹색당 이름도 나왔다. 들어봤다고 한다. 통합진보당도 나왔다! 해산된 정당이라고 하니까 정당을 해산 시킬 수도 있느냐고 묻는다. 정의당은 나오지 않았다. 원내정당과 원외 정당에 대해 설명해주고, 정의당을 알려줬다. 처음 들어 본다고 한다. 중학생 일곱 명의 대답을 보편적 인식이라 해석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정당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 정당은 정당법에 규정되어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매우 높다. 중앙당은 서울에 두어야 하며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갖춘 시도당이 5개 이상 있어야 한다. 지역 정당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당법으로 정당 설립 요건을 규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외국은 '정당'을 정치적 의견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정치단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당 설립과 활동은 상당히 자유롭다.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면 원내 진출을 못하는 것이고, 시민들이 지지하면 원내 진출 정당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당원이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정답이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당원의 자격을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은 '19세 이상'부터 주어진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국회의원에 출마를 했어요. 여러분이 부모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학생들은 이구동성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답한다. "없어요."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공직선거법은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9세 미만의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우리나라에서 19세 미만은 선거권·피선거권이 없음은 물론, 정당에 입당할 수도 없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다.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딱히 명확한 기준은 없다. 민법상 성년의 기준이 만 19세라는 게 그나마 근거라 할 수 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합헌이라 하였다. 좀 길지만 학생들에게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과 소수의견을 그대로 읽어줬다. 먼저 다수 의견이다.

"첫째, 청소년은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존성에 의해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민주적인 시민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둘째,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 보호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경험이나 적응능력 등의 부족으로 인해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선거권 연령은 나라의 역사, 전통과 문화, 국민의 의식수준, 교육적 요소, 신체적·정신적 자율성의 인정여부, 정치적·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하여 결정할 문제다. 이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현행 제도는 합헌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소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청소년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입당 또는 선거운동에 연령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그 실례를 볼 수 없다. 물론 우리와 같은 형태의 정당법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당의 구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 공직선거법상의 연령에 따른 선거운동제한은 단지 선거과정에서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거운동기간 외에 통상의 정치운동조차 청소년들에게 허용될 여지마저 없애버린다."

학생들은 다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소수의견도 맞는 말이라고 했다.

선거권 연령의 기준을 18세로 정하고 있는 국가가 110여 개국이 넘는다. 유럽에서 20대 의원의 등장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은 청소년기의 정치수업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변호사나 교수 등 전문가가 '갑자기' 의원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정당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서 검증된 사람들이 의원이 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나 독일의 총리 상당수는 정당 청소년 조직 출신이다. 시민들의 정치참여율이 높고, 정치가 안정된 나라의 특징은 청소년기부터 정당 활동을 하고, 정치수업을 받을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놀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의미 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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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 박선민


이제 2교시 실습 시간이다. 먼저 흥미 진작을 위한 "국회 안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퀴즈다.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맞춰보시라. '예식장, 수영장, 찜질방, 사우나, 지하 비밀통로, 땅속 와인, 미용실, 한의원, 치과, 응급실, 정당 사무실(당사), 기자회견장' 이 중 어떤 것은 있고, 어떤 것은 없을까? 학생들은 흥미진진해 했다.

국회에는 300명의 국회의원과 2700여 명의 보좌진, 국회사무처, 도서관 직원 등 수천 명의 사람이 일한다. 국회 안에는 우체국, 은행, 식당, 찻집, 마트 등 업무지원과 편의를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흥미를 위한 두 번째 게임은 자음만 보고 완성된 단어를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면, 'ㄱㅎㅇㅅㄷ'을 제시하면 '국회의사당'을 유추하는 것이다. 초성을 바라보다 단어가 떠오르면 "아!" 감탄사를 내뱉는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며 머리를 감싸기도 한다.

알고 나면 쉽지만, 정치적 용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기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게임을 통해 민주주의나 비례대표,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학생들에게 친근한 단어가 되었기를 바란다.

다음은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 방법론 중 협상력 훈련의 하나인 '부러진 연필'이란 게임이다. 세 모둠은 '종이'라는 자본, '칼'이라는 기술, '부러진 연필'이란 자원을 하나씩 나누어 갖는다. 각 모둠은 협상을 거쳐 칼로 연필을 깎고, 깎은 연필로 종이 한 장당 'O'이란 글씨를 쓴다. 'O'이란 글씨가 쓰인 종이를 많이 가진 모둠이 이기는 게임이다. 협상을 통해 승리할 수도 패배할 수도 있으며 서로에 대한 신뢰나 불신을 가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다루는 체제이며,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하는 게임이다. 학생들은 협상에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모두가 1등 하기만 바라서 그렇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다시 하면 협상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모든 갈등은 정치를 통해 협상이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조정·타협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학생들의 강의 소감 "정치도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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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 박선민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도록 하였다. 바뀌었으면 좋겠는 것, 현재의 바람과 꿈을 포스트잇에 적어보라고 했다. 아이들의 꿈은 "학원에 안 다니고 싶다" "늦잠자고 싶다" "방학이 길었으면 좋겠다"와 함께 "세금 늘리고, 복지 확대하자"도 있었다.

꿈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를 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정한 당명은 '꿈의 당'이다. 자신들의 꿈이 정치를 통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권한이 국회에 있고, 그 일을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고, 국회의원을 돕는 사람이 보좌관이다. 이제 수업이 끝났다.

"질문해도 돼요?"
"그럼"
"보좌관 일의 매력은 뭐예요?" "보좌관 일을 하면서 보람은 뭐예요?" "월급은 얼마예요?"

악, 하나씩 물어봐. '법과 제도가 바뀌어서 사회가 좋아졌을 때 보람을 느껴요.' 내 말을 수첩에 또박또박 받아 적는다. 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을 통해 청소년 일곱 명과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부디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보좌관이라는 직업의 세계에 호의적 관심을 갖게 되었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청소년기 정치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민주적으로 훈련되고, 정치적으로 단련된 청소년들이 좋은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참고로, 정치발전소에서는 '청소년 정치 책 읽기 모임(청사과)'을 진행하고 있다. 1기 모임이 끝나고, 2기에 함께 할 청소년들을 모집 중이다. (http://politicalpowerplant.kr/archives/1686)

<동물농장>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당의 발견>을 함께 읽고 토론한다. 학교에서, 지역에서, 마을 곳곳에서 이런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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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보자마을학교'의 <사람책> 수업 ⓒ 박선민


학생들과 헤어지기 전 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여러분, 우리 수업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소문내는 거 잊지 말아요."
"큭큭. 정말 재미있었어요. 정치도 재미있네요."
"음, 선생님은 저 아래 골목에 살아요. 길에서 마주치면 아는 척해요. 다음에는 동네에서 오가다 만나요."
"네, 안녕히 가세요."

마을과 학교, 정치의 조화.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박선민 기자는 정의당 박원석의원실에서 일하였으며, 현재는 정치발전소 사회정책연구센터에서 일합니다.
#또보자마을학교 #정치발전소 #청소년정치책읽기모임 #청소년정치교육 #정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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