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 된 노동자의 부활, 더 끔찍해졌다

[서평]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등록 2015.10.14 16:38수정 2015.10.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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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한 장면 ⓒ 오마이뉴스


다섯명이 둘러앉아 산적 꼬치 끼우는 일을 하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친구 반찬가게를 돕기 위해 모인 친구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일을 하고 있다. 음악도 들으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꼬치를 끼우니 더 재미있다.

꼬치는 맛살-고사리-마늘쫑-햄-고사리-마늘쫑 순서로 끼운다. 작업 중반 쯤에 친구들은 작업하는 방식을 바꿔보기로 한다. 다섯명이 재료 하나씩만을 맡아 꼬치를 돌려가며 끼우는 방식으로 바꾼다. 산적 꼬치 끼우기의 분업화다.


이리저리 재료를 찾지 않고 자기 것만 신경쓰면 되니까 작업은 단순하고 빨라졌다. 대신 오고 가던 대화는 끊기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느 한 공정에서라도 어긋나면 전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말이 없어졌다.

이전에는 내 손에서 완성된 꼬치 하나를 얻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이제는 꼬치의 전체 모양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돌아오는 대로 내 것만 끼우면 된다. 꼬치를 끼우는 손이 마치 기계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일은 빨리 끝났지만 허탈감과 피곤함이 몰려왔다.

후배 녀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이 웃지 못할 경험담을 보면서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 소외'를 떠올렸다. 마르크스는 공장제 기계공업이 가져온 분업화로 인해 노동자가 기계에 종속되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노동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헤겔 또한 대공장 기계공업이 불러온 폐해를 보고 "공장이 노동계급의 불행 위에 세워지고 있다"라고 했다. 과연 이것이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21세기 노동 현장, '테일러리즘'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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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표지 ⓒ 책세상

독일의 의학박사 요하임 바우어는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라는 책에서 21세기 노동세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테일러리즘'이 부활하는 것의 위험성과 이것이 노동자 건강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경고한다.


미국 출신의 기술자인 프레데릭 테일러에 의해 창안된 '테일러 시스템'은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려는 '과학적인' 시도였다. 각 공정마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움직임을 찾아내 표준화하고 초시계를 이용해 작업시간을 일일히 계산했다. 이 방법에 따라 노동자들은 규정된 방식에 정확히 정해진 시간 단위로 일을 해야 했다.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배경에서 볼 때 테일러 전략은 인간의 욕구가 무시되었을 때 자폐증적인 이상행동을 어떻게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당연히 테일러 시스템이 도입된 작업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폭동과 파업,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미 의회 조사위원회는 테일러 시스템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고 1916년 작업장 내 초시계 사용이 금지되었다(137쪽)고 한다.

저자는 업무현장에 새롭게 도입되는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기업 구조조정의 결과로 노동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자의 업무는 점차 파편화되고 장기간의 숙련보다는 단기간의 신속한 업무처리와 '멀티태스킹'이 등장한다. 직업은 저임금 임시 노동을 상징하는 '맥잡'(McJobs, McDonald's Jobs)의 형태로 점점 교체되고 필요할 때마다 짧은 수습기간을 거쳐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단기간으로 투입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변화를 '천박함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이런 '천박함의 승리'(Triumph der Oberflachlichkeit)는 업무 경력의 단기화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집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동료 의식과 사회적 귀속감의 가능성까지도 침해한다. 직장 내 개인 관계는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소멸할지도 모른다. 또한 신경생물학과 의학의 관점에서 이 같은 변화를 보면 동기체계와 공감체계 모두 노동자들의 뇌에서 작동할 기회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 놓인 직장인은 소위 'ADHD 노동 모드'로 전환된다.'(145쪽)

오늘날 기업의 많은 경영자들은 노골적으로 테일러리즘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새로운 테일러리즘을 도입하는 시도들은 이제 산업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비스 분야와 간호, 노인 간병 등 의료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테일러리즘을 적용한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어느 시간대에 어떤 의료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지를 분 단위로 지시한다. 또한 모니터 화면이나 다른 기계 장치가 일을 시키는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수치가 말해주듯이 끔찍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업무가 가중되고 성과나 일정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곳은 어디든 새로운 테일러리즘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인간성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테일러리즘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217쪽) 강조한다. 특히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노동의 질적인 측면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의 실제적인 적은 일하는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고 인간이 의미를 상실한 채 일하고 비인간적인 강압에 처하고 낮은 임금을 받거나 영혼이 없는 기계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노동을 논해야 한다. 사람을 적합하지 않은 노동 조건으로 밀어 넣으려는 사람들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런 노동 조건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노동이 주는 행복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더불어 노동을 강압적인 어떤 것으로 내면화한 사람들, 또는 이미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그러한 행복의 가능성을 파괴한다.'(228쪽)

노동자 파괴하는 '번아웃 증후군' 예방하려면

저자는 "건강과 일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는 일 그 자체뿐만 아니라 경제를 작동시키는 여러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현장에 배치되고, 고용주와 상사에게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거론해야 한다"(15쪽)고 주장한다.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은 '우울증'과는 다른 개념인데 이는 '노동'과 직접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에 따르면 직무상 번아웃은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 비인격화(depersonalization), 자아 성취감 저하(low personal accomplishment)라는 세 가지 하위 요소로 구성된다.

직무상 번아웃 현상은 공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구조 변화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은 지속적인 정서적 소진, 일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전에 없는 감정적 혐오나 냉소, 일에 대한 심리적 이탈감이나 내적 거리감, 업무 효율성 상실의 증상을 보인다.

직장에서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요구하지 말고 업무의 분담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노동자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업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또한 업무에 대해 정당한 인정과 보상,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료애와 정보공유,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직무환경도 중요하다. 기업은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노동자에게 수행하는 일의 도덕적 가치를 설명해야 한다.

번아웃 예방을 위해 개인 스스로 일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번아웃 증후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이 보조를 맞추어 균형있게 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균형을 이야기 할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업무와의 동일시'(Identifikation)다. 즉 '이 일에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가?'와 '어느 정도까지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일터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감과 거리 두기 능력 간의 균형이다. 업무 중에는 완전히 일에 몰입하고 틈틈이 휴식을 취하고 과도한 업무 부담을 떠안지 않고 초과 근무 시간의 한계를 정하고 필요하다면 NO라고 분명히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퇴근 이후에는 업무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업무 태도다. 무리하게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건강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순환계나 심장 장애,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일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198쪽)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건강권'은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사회권'이다. 따라서 건강은 정의, 민주주의 가치와 떼어놓고 논할 수 없다. 번아웃 시대,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자살률 1위의 '헬조선'이다.

이 책은 일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새로운 생각,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은 생산 자원이면서 창의력 발현의 공간이자 자존감과 사회적 연대감의 원천이다.

저자는 노동의 본원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날 변화된 노동 환경에서 동반되는 여러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노동은 여전히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일하는 방식에서만큼은 옛날에 비해 그다지 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요하임 바우어 지음 / 책세상 펴냄 / 2015. 9.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요아힘 바우어 지음, 전진만 옮김,
책세상, 2015


#번아웃증후군 #테일러리즘 #노동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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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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