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좌경용공' 노선 걷는 박근혜 정부

냉전공안 세력이 벌이는 '사상 검증'이란 작태

등록 2015.10.15 21:19수정 2015.10.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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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편향의 역사를 국민통합의 역사로' 여당에 내걸린 플래카드 14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가 열린 국회 대표실에 '이념편향의 역사를 국민통합의 역사로'라고 적힌 문구가 내걸려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일선 학교 수업에 사용되는 자습서와 교사용 지도서는 정부 검정 과정도 없이 배포돼 편향된 역사수업이 이뤄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라며 금성출판사의 자습서 겸용 문제집에서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내용 등을 사례로 들었다. ⓒ 남소연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정신적 국유화 조치와 다를 바 없다. 한글사전에서는 국정교과서를 "교육부에서 교육내용을 일정하게 정하고 편찬하여 전국의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교과서"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동시에 국유화(國有化)를 "(국가 소유가 아닌 것을) 국가 소유로 함"으로 정의한다.

대체로 사회주의 체제의 근간인 국유화 과정에서는 의례껏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반민주적 강제조치가 수반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볼 때, 정부·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바야흐로 역사해석의 사회주의화의 길로 보무도 당당히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는 반 자유민주주의적인 행태다.

어느 정치학자는 <한국 정치학회>에서 주는 학술상을 수여받은 한 저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본 바탕을 개인적 자유의 신장에서 찾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고유 영역을 사적 영역, 곧 시민사회"로 간주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 시민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행동공간과 자기성취 가능성을 넓혀 나가지 않으면 안 되고, 그를 위해 "공적 영역, 곧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가능한 물리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이 저서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원칙의 하나로서, '관용'(tolerance)을 들고 있다. 한마디로 "관용은 국가, 사회, 또는 개인의 편에서 볼 때, 자신이 선택한 대로 믿고 행동할 수 있는 타인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비록 어떠한 행위나 신념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훼방놓지 말아야 할 의무"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공적인 일에서나 개인적 사안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신조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 태도가 곧 관용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다원론적 시각이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이 관용은 개인의 다양성으로부터 집단의 다양성으로, 강조점이 이동하게 된다. 다원주의(pluralism)에 의할 것 같으면, 사회는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이질적인 집단의 집합이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대립은 필연적이고, 그 가운데 어떠한 것도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하는 개별 집단 사이의 타협이 필수적인 덕목으로 등장한다.

이 경우 관용은, 대립적인 이해관계의 존재를 서로 인정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그 대립성을 풀어 나가려는 호혜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적 관용의 적(敵)은 광신(fanaticism)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며,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이 되는 것이다.

색깔론이 성화처럼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 국정화 밀어붙이기 만행과 어울리게 또다시 이러한 '광신'의 불꽃이 성화처럼 타오르고 있다. 색깔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지상의 어느 누구도 인간의 신념과 양심을 신(神)처럼 절대적으로 판정 내리고, 그리고 그 판단을 반드시 추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독단과 교조가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저 프랑스대혁명 이래 자유민주주의의 꽃으로 기능해왔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호를 그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음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헌법 제1조에서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제2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언론출판의 자유를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기본권으로 강력히 설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해석의 전권을 국가가 독점하려드는 국정화 정책은 반 헌법적이고 반 자유민주주의적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유화에서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듯이, 전체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정부가 그토록이나 매도하는 '좌경용공' 노선을 스스로 밟고자 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역사 퇴행적인 자가당착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자신의 모순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다시 전가의 보도인양 색깔론을 휘두르고 있다.

나는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색깔론을 '칼러리즘'(Colourism)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색깔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가령 위계적 신분질서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몸에 걸치는 관복의 색깔 차이로, 지위의 높고 낮음과 직책의 같고 다름을 구별하곤 했다.

그러나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화려하게 개막된,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색깔은 특정한 사상과 이념을 상징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빨간 색은 혁명이나 공산주의를 일컫는다는 식으로.

오늘날 같은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어떻게 국민대중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주고, 어떻게 그들을 특정의 이념체계로 끌어들이며, 어떻게 그러한 특정한 주의주장을 대중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것인가가, 항상 급박한 정치적 과제로 떠오른다. 서로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구호와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이 우리를 지지한다'고 외치며, 국민의 이름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난투극을 대하게 되면, 이런 가슴앓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은 지극히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이념적 입장을 압축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편이 무엇인지를 두고 골머리를 썩이곤 한다. 구호, 로고, 의상, 노래, 깃발, 색깔 등등이 그 방편의 주요 품목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대중동원 수단의 대표격은 역시, 무언지 모르게 늘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창공에 펄럭이는 국기와 하늘에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애국가라 할 수 있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청-백-적색의 프랑스 국기와, 처음에는 반 혁명군 타도를 외치는 군가였다가, 나중에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이에즈'라 할 것이다.

이것들은 물론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 산물이며, 혁명과 공화국을 수호하려는 프랑스 인민들의 피 끓는 열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도 이미 색깔이 등장했다. 어쨌든 정치적 목적으로 색깔이 활용될 경우, 그것은 본래부터 특정적인 사상, 이념, 노선과 직결되었던 것이다.

정치적 색깔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나라는 뭐니뭐니해도 우리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불어오는 색깔 선풍은 특이한 색조를 띤다. 우리의 색깔론은,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옛말처럼, 스스로 구린 사람이 오히려 선수를 쳐서 보무 당당히 한번 면피해보고자 하는, 계산된 정치적 술수에서 비롯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은 스스로 검증 받고 탄핵 당해야 마땅할 수구적 공안 집단들이 솔선 수범하여 색깔론을 연출함으로써, 자신은 마치 '백의의 천사'며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위세를 떨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가공할 '위장취업'이다.

'색깔론'이 우리나라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음험하고 공포스러운 색조를 띠는 이유는,  사상의 자유와 이념에 대한 판정이 지금껏 항상, - 특히 현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시대에 유별났듯이 - 지배세력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어 왔던 전통 때문이다.

"당신, 색깔(사상)이 수상해!" 하는 한마디 말이, 당사자의 가슴을 얼마나 무거운 바위로 짓눌러 왔던가. 왜냐하면 이 말은 곧 "당신, 맛 좀 봐야 되겠어"로 통했고, 곧 이어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도, 소위 '연좌제'에 의해 처절한 박해와 참담한 고난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색깔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는 세력들은,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굽힘없이 싸워온 개인이나 집단들을 색깔을 빌미로 혹독히 탄압해본 전력이 있는, 냉전공안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수구 세력들이 벌이는 소위 '사상 검증'이란 작태는 '방귀 뀐 놈-이데올로기'의 발로이며, 또한 자신의 불순과 무지를 스스로 폭로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방적 '좌파' 타도만이 절규되어 오지 않았던가. 요컨대 '좌익수'만 있고, '우익수'는 단지 야구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이러한 색깔론은 어쩔 수 없이 대단히 폭군적이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이고, 흑백 논리적인 독선적 자의식에 뿌리내릴 수밖에 없다.

그에 걸맞게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저급한 정략적 이해판단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역리 현상을 빈번히 조작해내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색깔론'이, 기회 있을 때마다, 올림픽 성화처럼 불타오른다. 그것은 어른스러운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어린애 불장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불통령'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는 색깔론이 '종북주의' 등으로 더욱 더 절묘하게 다변화해가고 있다. 결국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가 일상화하게 되었다.

빨리 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성스러운 목적의식에 부합하게끔 만들어지는 '국정화 교과서'야말로 "올바른" 교과서이자 "균형" 교과서이며 "통합" 교과서가 되리라 자화자찬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정반대로 '그릇된' 교과서, '편향' 교과서, '분열' 교과서로 전락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올 11월에 집필에 착수해서 1년 이내에 완료하고, 내년 12월 한 달 안에 감수와 적합성 검토를 끝내고, 2017년 3월에 배포하게 되리라 큰소리친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왜 정권 임기 내에 이 작업을 끝내려고 서두르는가 비판하며, 그 졸속성에 깊은 우려를 표할 정도다(조선일보 2015.10.13 사설).

8․15 이후 우리 사회를 줄기차게 지배해온 통치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빨리 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정신일 것이다. 말하자면 '대충대충', '후딱후딱' 이데올로기가 바로 기득권집단의 정치이념이자 생활철학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졸속의 원리'는 조그만 도로공사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나라 구석구석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예컨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그 귀엽고 조그만 사례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일본 사람이 만들어놓은 한강대교는 아직도 끄덕 없이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각광받는 나라가 또 대한민국이다.

4대강 사업에 이어 또다시 국정화라는 '졸속'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을 '졸속 공화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역사 교수 및 교사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사회와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면서, "40년 전 유신 정권이 단행했던 교과서 국정화의 묵은 기억이 2015년의 한국 현실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개탄한다. 결코 집필에 동참하지는 않겠노라고 결의하는 학자들도 나날이 늘어만 가는 실정이기도 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국정화는 반 교육적, 반민주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사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번에도 역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내 눈에 티가 들어가면 견딜 수 없어 하고, 이빨 사이에 조그만 찌꺼기 같은 게 끼어도 참을 수 없어 안달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속에 돋아난 그 많은 가시를 두고서는 오히려 태연하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스스로 준엄히 물어볼 일이다.

줄기차게 색깔론을 제기하고, 나아가서는 국보법 수호를 절규하는 우리나라의 수구 냉전 세력들이 충심으로 흠모해 마지않을 미국에도 버젓이, 공산당이라는 것이 있다. 허나 우리는 아직도 현대판 분서갱유나 일삼으려 하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질적인 사상과 신념에 대한 폭력 또한, 철저히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이들, 구시대적 만행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오로지, 양자택일의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되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든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박물관용으로 자신들을 박제화 시켜버리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덧붙이는 글 박호성 기자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국정교과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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