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맘에 쏙 든 교학사 <한국사>, 뭘 더하고 뭘 뺐나

'긍정의 역사관' 담은 검인정 통과 교과서... 국정 교과서의 미래

등록 2015.10.15 10:04수정 2015.10.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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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올바른 교과서'라고 명칭을 한 한국사 국정교과서 행정예고 발표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새 역사 국정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까?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이념 편향성이 배제된 최고 품질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지지했던 뉴라이트 사관의 '대안교과서'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등 우편향 논란을 빚었다. 이들 교과서를 통해 '박근혜 교과서'의 미래를 엿본다. - 기자 말

교학사-국정교과서, 그 탄생의 평행 이론

"7종의 교과서가 다 현대사 부분에선 부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였는데, 교학사에서 긍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를 발행하는 과정에 있다."

2013년 9월 25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이 이끌었던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 교실'에서 한 말이다.

"검정제 취지를 벗어나 대다수 교과서가 좌편향 성향에 물들고 있다... (국정제 전환은) 국론 통일을 위한 국민 통합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

역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이다. 정부 여당이 부정적 사관과 이념적 편향성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 검정 교과서의 대안은 2년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발행'에서 '국정 교과서 추진'으로 바뀌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3년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위원회를 최종 통과했다(관련 기사 : '5.16 쿠데타' 괜찮다던 박 대통령, 어디 갔나).


검정을 통과하기까지 교학사 교과서는 김무성 대표의 2년 전 발언처럼 정부 여당의 지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수백 건의 오류와 왜곡·과장이 드러나면서 많은 역사학자의 지탄과 학부모·학생들의 거부로 대부분이 서고에 갇혔다.

이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는 묘하게 닮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교학사 교과서의 장점으로 뽑은 '긍정적 사관'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 12일 국정 교과서 전환의 목적으로 꼽은 '한국사의 자랑스러운 역사 상기'로 바꿔 해석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부정적 사관' 대신 '긍정적 사관'을 강조하며 관철한 두 개의 '교과서 플랜'. 그 첫 번째 작품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과서)를 통해 앞으로의 국정 교과서를 미리 상상해 본다.

교학사 <한국사>로 그려본 국정 역사 교과서의 미래


[친일파 '탐구'하기]
교과서 262쪽에는 한 인물을 살펴보기 위한 '사료 탐구'가 나온다. "동아일보의 주필"이자 "조선청년회 연합회의 창립"에 이바지한 인물로 소개되는 '장덕수'라는 인물이다. 장덕수는 사실 지난 2002년 1월 28일 국회에서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3명 중 김성수, 방응모와 함께 친일 언론계 인사로 꼽힌 인물이다.

[이승만, 이승만, 이승만]
교과서 293쪽부터 294쪽, 이 한 면에 아홉 번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이승만'이다. 교과서는 "그러한 임시정부 승인 획득 운동의 주역은 이승만이었다. 그는 임시정부의 주미 외교 위원부 위원장으로서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임시 정부 승인을 획득"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 연구소는 지난 2013년 9월 10일 정리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토 자료집'(아래 검토 자료집)에서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임시 정부 승인 운동의 주체는 이승만이 아니고 임시정부"라고 비판했다. 또 이승만 정권을 다룬 단원에 대해 "이승만의 활동을 비상직적이라고 할 만큼 과도하게 부각"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미국이 '바로' 인정한 5.16쿠데타]
교과서는 324쪽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5.16 쿠데타를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했다"면서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고 쿠데타의 당위성을 언급했다. 이어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라고 쿠데타의 대내외적 지지를 상기하기도 했다.

검토 자료집에선 이 같은 서술이 '오류'라고 지적했다. 자료집은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곧바로 승인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쿠데타 발생 직후 미8군 사령관과 주미 대리대사가 쿠데타 진압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긴박한 분위기' 때문에 유신 단행]
"북한은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미국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을 통하여 아시아인의 방위는 아시아인이 책임질 것을 발표하고 주한 미군 1개 사단을 철수하기로 하였다."
"이 같은 긴박한 분위기에서 박정희는 1971년 12월 국가 비상 사태를 선언하였다."-325쪽

북한의 공산화 정책, 미국의 닉슨 독트린. 교과서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서막을 알리는 10월 유신 발표의 배경으로 제시한 부분이다. 위 마지막 문장 끝에는 "통제와 동원을 쉽게 하기 위하여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라는 문장이 따라 나온다. 참고로 '단행'의 사전적 의미는 '결단하여 실행하다'이다.

[숨은 편파성 찾기]
다음은 교과서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한 페이지 안에 함께 기술한 부분이다.

1998년에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야당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시장 경제의 원리를 보다 과감하게 도입하여 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대북 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도록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법치의 규범을 약화하였다는 비판도 받고, 국회에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밀어 붙인 행정 수도 건설 특별법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대북 유화책이 두드러져서 안보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2008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보다 확실히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경제를 선진화한다는 목표를 가졌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경제 위기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금융 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하고 금융 시장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2012년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들어가게 되었다. -327쪽

글자 수도 203자, 193자, 191자로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비판의 강도는 차이가 난다. 교과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엔 한두 문단의 긍정적 서술과 함께 비판점도 함께 제시한 반면, 이명박 정부는 경제 선진화를 중심으로 한 '위업'을 중심으로 문단을 채웠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대부분이 비판 일색인 것과 대조된다.
#교학사 #국정 교과서 #황우여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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