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정부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하였다.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 유엔에서는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인식만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도 역사교육은 국정보다는 검인정을 통해서 다양한 역사인식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역사를 국정화하는 것은 전제정부나 독재체제에서나 행하는 일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편찬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인식과 창의력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능력의 성장을 저해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국정'과 '검인정'을 넘어서서 '자유발행'을 선택하고 역사교육을 학계의 전문가들에게 맡겨 수행하는 이유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청년일자리 문제, 남북문제, 정치개혁 문제, 복지 문제 등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지속되는 이념논쟁 속에서 이러한 현안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치열한 학문연구에 기반한 역사교과서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인식만을 강요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강조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국가권력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농단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고 독점하려는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서울 시내 주요대학 사학과 교수들은 국정교과서의 집필참여를 거부할 뿐 아니라, 국정교과서 제작과 관련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정부당국은 시대착오적인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조치를 시급히 철회하고 역사교육을 정상화시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2015년 10월 15일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7인 김종섭, 배우성, 신희권, 염복규, 염인호, 이우태, 이익주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0인 구태훈, 김택현, 박기수, 박재우, 오제연, 유정애, 임경석, 정현백, 조성산, 하원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5인 전원 박경하, 손준식, 육영수, 장규식, 차용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7인 전원. 김상범, 노명환, 반병률, 여호규, 이근명, 이영학, 임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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