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 해결하려면 교육문제 풀어야”

[현장] 하종강 교수 노원노동복지센터 인문학 특강

등록 2015.10.16 11:51수정 2015.10.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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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하종강 교수의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인문학 특강이 진행됐다. 10월 특강의 첫 주자인 하 교수 강의에는 전화로 사전예약을 한 4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 어고은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노동운동가로 40년을 살아온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복잡다단한 노동문제의 해법을 교육에서 찾자고 제안했다.

지난 14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하종강 교수의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인문학 특강이 열렸다. 하 교수는 "학생들이 저 엄청 좋아해요. 제 이름이 종강이잖아요"라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20살 때 노동운동에 뛰어든 뒤로 노동 상담·교육이란 한 길을 걸어 온 '진짜' 노동전문가다.

"여러분은 신라시대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대부분 김유신, 김춘추를 말할 겁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누구를 답할까요. 주종대박사(鑄鐘大博士) 박종일을 답합니다. 바로 에밀레종을 만든 기술자입니다. 사회지도층 중심의 역사를 배우는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민중 중심의 역사를 배우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역사교육으로 서두를 연 하종강 교수는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 중심으로 노동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지도층, 특히나 보수·우파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지난달 2일 국회연설 및 기자간담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으면 국민소득 3만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노동·친자본적 정서를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발언을 해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기에 가능했다.

"대부분이 노동자가 되는데도 경영자가 되리라 착각해"


문제는 이러한 시선이 비단 일부 계층의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노동·친자본적 정서와 노동자를 하대하는 시선은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져 있다. '노동자' 대신 애써 '근로자'라는 말을 쓰려는 것부터가 노동자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걸 방증한다.

어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종강 교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노동자는 OOO이다'란 문구를 채우게 했을 때 '가난', '거지' 등의 단어가 등장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하 교수는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가 되는데도 경영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자란다"며 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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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자는 OOO이다’ 문구를 채우게 한 결과 ‘거지’라는 답변을 한 사례를 하종강 교수가 소개하고 있다. ⓒ 어고은


외국에서 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은 어떨까. 하종강 교수는 한국의 시선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해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영국엔 교장노동조합이 있습니다. 프랑스엔 판사노조, 변호사노조도 있습니다. 유럽에선 차관이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인식하며, 노조에 가입합니다. 한국이라면 꿈꿀 수 없는 상황이죠. 우리나라에선 학벌 좋고 고액연봉을 받으면 스스로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면 오히려 불쾌감을 표출합니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기까지 하는 거죠."

한국과 외국의 상황이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 데에는 교육에 원인이 있다. 하종강 교수는 차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동영상 하나를 틀어줬다. 실제 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해변에 여러 마리의 꽃게가 모여 있는데, 크기가 작은 게가 갈매기에게 먹힐 위험에 처하자 다른 꽃게들이 그 게를 둘러싸 갈매기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10초 안팎의 동영상이 끝나기 직전에 'Union is strength'라는 문구가 선명히 떠오른다. 학생들은 사회적 배려와 연대의 가치를 초등학생 때부터 학습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하종강 교수는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단체교섭'을 교육과정에 포함 시켜놓았다"고 말하며 노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일의 초등학교에선 1년 동안 6번 가량 '모의 단체교섭'을 진행하는데, 학생들은 노동자와 경영자 역할을 번갈아 맡아 토론과 논쟁을 벌인다. 강의식·주입식 방법이 아닌 토론식·체험식 방법으로 노사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노사관계는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

이러한 교육과정은 독일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독일에서는 노사관계제도가 노동세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조형하고 있는 근본 제도들 중의 하나로 인정,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독일 노동교육의 기본철학 또한 "노사관계를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 <독일의 학교노동교육: 교실-일터 연계한 직업진로 지도에 역점>, 박장현, 한국노동교육원, 2004, p.5

독일에선 노동교육을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한 권리'로 이해함과 동시에, 이를 교육을 통해 대중의 정서로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총리가 된 뒤에도 가능하다면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 계급을 유지한 채 노동 조합비를 계속 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장관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독일사회에서나 가능한 수준의 발언이죠. 노동자를 '역사의 주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총리부터 일반 시민에까지 널리 퍼져있는 대중의 정서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교육 실태는 어떠할까. <한겨레>는 '주요 생존권인데… 교과서 '노동자의 권리' 내용 2%뿐(2015.04.19)'이란 기사에서  "일반고 사회과 교과서 17종을 분석한 결과 전체 4612쪽 중 노동 관련 내용이 83쪽(2%)뿐이었다"고 보도했다. "사회과 가운데 노동기본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다룬 교과서는 <사회>와 <법과정치>"인데, <한국사>를 제외한 사회과는 선택과목인 탓에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은 이마저도 배울 기회가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교과서에 노동교육 2% 밖에 안 돼

국내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011년 1월 특성화고교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노동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노동시장에 무방비 상태로 나가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고,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게 될 공산이 크다.

청소년들이 부당한 노동환경에 처했을 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추진한 정책이었음에도 곽 전 교육감의 발언 이후 안형환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동교육을 "시대착오적 이념교육"으로 규정지었다. 이념논쟁의 틀에 가둬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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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2013년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된 교과서로 노동 관련 현안이 포함돼 있다. ⓒ 전북교육청 블로그


노동교육을 이념논쟁의 무대 위에 세우려는 보수진영의 움직임에도 진보진영에선 노동교육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2013년 전국 최초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발간한 게 대표적이다. 이 교과서는 초등학교 3~4학년용, 초등학교 5~6학년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 등 4종으로 이뤄져 있으며 노동인권을 포함해 다양성·평화·환경·민주주의 등 주요한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용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총파업 사례가 수록돼 있다. 사회에서 실제로 논의되는 현안을 학생들 스스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고 사회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교재는 서울, 광주, 강원, 충남, 전북도교육청도 이용할 수 있도록 파일형태로 보급됐다. 하종강 교수는 "사회는 조금씩 진보적 방향으로 변화한다"며 민주시민 교과서의 등장을 적극 지지했다. 

하 교수의 말대로 우리사회는 속도는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노동이란 행위 자체를 천시하고, '노동자=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대중의 정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교육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의 정서가 변하지 않는 한 노동자를 위한 '진짜 노동개혁'을 이뤄내는 것 또한 요원해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 교수는 "여러분이 여기 모여있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며 영화 <쇼생크탈출>의 주연배우 팀 로빈스의 말을 인용해 강의를 마쳤다.

"노예제를 폐지하는데 백년 이상 걸렸고, 아동노동을 종식시키는데 백년이상 걸렸으며,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데 백년이상 걸렸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이러한 운동들은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 파티나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변화를 낳은 것은 바로 풀뿌리운동입니다. 넘어서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문지방이지만 정말 멋있는 일입니다." (팀 로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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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는 팀 로빈스의 말을 인용해 "여러분은 방금 문지방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 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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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인문학 특강 포스터 인문학 특강은 매달 혹은 분기별로 열리며, 참가비는 무료다. 21일에는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문제 해소할 수 있는가?’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 어고은


#하종강 #노원노동복지센터 #인문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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