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말 한마디에 몸살 앓는 은행들

운영시간 연장 검토... 노조 "정치권에서 은행 마감 시간 간섭은 관치" 반발

등록 2015.10.16 19:01수정 2015.10.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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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런 최경환 부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남소연


국내 은행들의 '4시 마감 시간'을 지적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연일 논란이다. 최 부총리의 질타에 은행들은 눈치를 보며 마감 시간을 늦추는 방안을 부랴부랴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 그러나 정부가 은행 폐점 시간까지 관여하는 것은 또 다른 '관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우리, KEB 하나, NH농협, 신한 등 시중은행들은 은행의 영업시간을 연장하거나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변형근로시간제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형근로시간제는 법정 근로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제도다.

이미 대부분 은행은 사무실이나 공장, 외국인 근로자 밀집 지역 등에서 평일 오후 7시까지 문을 열 거나, 주말에 문을 여는 '탄력 점포'를 운영 중이다. 이는 고객 수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노사 간 협의에 따라 진행돼왔다.

그러나 최근 최 부총리가 "국내 은행의 수준이 우간다보다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마감 시간 4시'로 돌리자 은행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수요조사를 통해서 탄력점포 운영을 검토해야 하지만, 경제수장의 질타에 은행들은 눈치를 살피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11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오후 4시에 문 닫는 은행이 어딨느냐"고 금융권을 질타한 바 있다.

이어 그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많으니 우리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며 "노조 힘이 너무 강해 금융개혁이 역동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탄력점포 확대, 긍정적으로 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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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소재 KEB하나은행 본점 영업부에서 김정태 하나금융회장 등 그룹 CEO 11명, 박세리 선수 및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등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년구직과 일차리 창출 지원을 위한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가입 행사를 가졌다. 김정태 하나금융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가입 후 통장을 들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김정태 하나금융그룹회장, 박세리 선수,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 KEB하나은행


가장 먼저 최 부총리의 발언에 반응을 보인 곳은 KEB 하나은행이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하며 탄생한 KEB 하나은행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를 가장 먼저 출시하기도 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영업점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부총리의 발언은 변형시간근로제를 확대 도입하자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고객이 편하다면, 직원들과 상의해 공단과 상가 등 일부 필요 지역으로 확대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이미 지난 2003년부터 외국인들이 많은 안산 원곡동출장소와 서울 구로구 구로동지점, 대림역 출장소, 을지로6가, 퇴계로 등 17곳에서 평일 7시까지 문을 열 거나, 일요일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통합을 했기 때문에 점포 관리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면서 "회장님의 뜻도 있고 탄력점포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NH농협을 제외하면 1155개로 가장 많은 점포 수를 가진 KB국민은행도 눈치를 보긴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은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여는 '애프터 뱅크'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 서울 금천구 가산동 지점 등 5곳이다.

또한, 외국인 고객이 밀집된 안산 단원구 원곡동에서는 오후 7시 30분까지 문을 열고, 서울 중구 쌍림동, 경남 김해 등 점포에서는 일요일에 정상 영업을 한다. 이렇게 탄력 근무를 적용한 영업점은 모두 12곳이다.

이미 54곳 연장 영업하는 우리은행 "최 부총리, 현실 잘 모르고 있다"

우리은행도 전국 점포 974곳 중 무려 54곳에서 이미 탄력점포를 운영 중이다. 법원, 시청, 구청 출장소에 입점한 우리 은행 점포들은 대부분 6시 이후까지 영업하고, 서울 동대문의 두타지점, 원곡동, 김해 등에서는 7시 30분까지 근무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많이 근무하는 공단 쪽 해당 영업점의 의견을 수렴해 탄력근무가 가능한지 검토하고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 고위관계자는 "폐점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수익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어느 은행에서 탄력점포를 확대해가면 다른 은행들도 필요와 관계없이 눈치를 보며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부총리가 현실을 잘 모르고 말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내 최대 점포망을 갖춘 NH농협은행도 탄력 점포 확대를 두고 다른 은행들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이미 NH농협은 1176곳 중 222곳에서 탄력 점포를 운영 중이다. 경기 과천시 마사회 지점, 부산 경마공원, 제주 경마공원 등은 주말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또한, 대전시청 점 외 218개 지점에서 평일 오후 6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이미 지자체 시군구를 관리하는 영업점들은 대부분 6시까지 근무하고 있다"면서 "다만 최 부총리의 발언이 있어서, 다른 은행들의 추이를 봐서 근무시간 변경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신한은행도 법원 지점, 동사무소 지점 등 모두 69곳에서 탄력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로 탄력점포를 확대할지에 대해선 고심 중이다.

금융노조 "정치권에 따라 은행 운영시간 늘리기는 관치" 반발

최 부총리의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자 지난 1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한 나라의 경제수장이라는 사람의 인식이 이 정도라는 것이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노동자와 사용자,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가 금융개혁의 1순위 과제로 꼽는 것은 관치금융 근절"이라며 최 부총리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노조 관계자는 "최 부총리 말 한마디에 부화뇌동해서 은행들은 지금 경쟁하듯이 탄력점포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면서 "대부분 은행이 운영하고 있는데도 경제수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고 이것이 바로 관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들의 불편이 있다면 지역의 수요에 따라, 시장 논리에 따라 탄력 점포 운영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정치권에서 은행 운영시간을 늘리라고 간섭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은행 마감 시간보다는 대출 담보 관행 등 중요한 요인들이 많다"면서 "최 부총리가 정확한 지적을 한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인터넷, 스마트폰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점포 자체는 줄이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은행 마감 4시 #최경환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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