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하대', '부꼉대'? 우리나라 대학 맞나요?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①] 통하면 즐겁습니다

등록 2015.10.19 15:50수정 2015.10.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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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진지한 모습으로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한국에 어떻게 왔어요?"
"스터디 왔어요. 유하대학교"
"유하? 어디에 있는 대학이죠?"
"이우~하 대학교. 서울이요."
"이화대학교요? 거긴 여자 대학인데요"
"맞아요. 여자 대학이요. 남자 많아요."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갈 방법을 찾던 아지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해외봉사단원을 통해 한국어학당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학당 어학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 온 아지드는 석 달 동안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한국어 공부보다는 돈을 벌 생각이었던 그는 입국 석 달 뒤부터 공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탓에 대학에서 배웠다는데도 발음이 어째 이상합니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한국 발음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이화(梨花)'가 중국어로 '돈이 불어나다'는 뜻인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해서 한 번쯤 찾는 곳이 되었답니다. 아지드는 '이화'의 영문자, 'Ewha'를 '이우화'로 읽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글을 배웠다면서 발음이 좋지 않은 건 분명하네요. '이화' 발음이 어려운가요?

쉽지 않은 우리말 발음, 말하는 사람·듣는 사람 모두 힘들다

발음이나 문법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외국인들에게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나도 어려서부터 한국어 배우느라 고생 엄청나게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깔깔대고 웃고는 합니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발음이 원어민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국어가 아닌 마당에 발음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원어민인 한국 사람들도 발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흔한 예로,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놓는 방화(放火)는 발음을 길게 [방:-]이라고 내야 합니다. 반면, 불을 막는다는 방화(防火)는 단음입니다. 이처럼 발음을 길고 짧게 함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부상, 여당, 여론, 사고, 선물'과 같은 단어들은 외국인들에겐 머리를 쥐어짠대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한글을 모르거나 서툰 사람들의 경우 로마자로 옮겨 쓰면서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로마자에 얽힌 발음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회문화연구원 소속으로 동경대에 파견되어 국제이주에 관한 연구를 하던 리완또 교수입니다. 몇 해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느릿한 말투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만나자마자 질문을 쏟아 부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 안이었는데도 사무실로 가는 동안 내내 한국의 외국 인력 정책과 그와 관련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외국인이주노동자 공동체 현황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저는 그런 그에게 나중에 사무실에 가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리완또 교수는 일정이 빠듯해서 부득불 조급하게 굴었다고 했습니다.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는 오후에 창원에 내려갈 일이 있고, 다음날은 '북경 유니버시티'에서 국제이주노동 관련 강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리완또 교수가 일본에 있다 보니, '베이징대'를 '북경 유니버시티'라고 말하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한국 내 외국인이주노동자 관련 자료들을 뒤적이던 그는 강의와 관련하여 '북경 유니버시티'에 있는 인도네시아인 교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며 전화를 써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화번호를 받아들고는 번호와 함께 적혀 있던 주소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주소를 보고서야 리완또 교수가 '북경 유니버시티'라고 말한 대학이 부산에 있는 국립 '부경대학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K발음을 'ㅋ'로 하지 않고, 'ㄲ'로 해서 리완또 교수가 '부꼉'이라고 말했지만 '북경'으로 듣고, 저는 그것을 '베이징대'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발음 하나 때문에 나라가 바뀌는 일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다 보면 종종 겪는 일입니다. 이처럼 발음상의 문제로도 엉뚱한 이해를 하는데, 한국어가 서툴러 단어 자체를 모르거나 도통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통역 없이 대화할라치면 오죽하겠습니까? 자신의 임금체납 문제나 여러 가지 문제로 찾아왔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듣는 입장에서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거나,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위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서 한국어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교실 운영이 제대로 된 곳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재정적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역시 일을 하다 보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애환도 듣고 그들의 문화도 접하면서, 우리 문화도 나누고,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와 이웃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한국어교실에 있습니다. 발음이야 조금 이상하면 어떻습니까? 통할 수 있으면 그만인 걸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고기복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princeko/4)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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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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