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야자 안 가서 미안
딸내미는 광화문에 있었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①] 광화문 광장에 나선 청소년 1인 시위 후기

등록 2015.10.23 20:52수정 2015.10.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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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4일 오후 2시 37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 노원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민정(가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9일, 20일 저는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청소년인 제가 거리로 나간 이유를 여러분께 알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 선생님이 되지 않으려

저는 역사, 특히 근현대사를 아주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청소년 NGO 활동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대학생들과 함께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안내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첫 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활동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우리 역사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픈 역사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역사를 잘 설명할 자신이 있었고, 하나의 역사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수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알려온 우리의 아픈 역사를 왜곡하는 행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종군여성으로 만들어 버리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학살 등 아픈 역사 문제들을 빛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장차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시국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기록될 오늘의 역사에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어른이,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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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서 1인시위를 했습니다 ⓒ 김민정


그래서 저는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괜히 시위를 하러 간다고 했다가 유난떤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선생님께는 다른 핑계를 댔습니다. 또 괜히 해코지 당한다고 걱정 하실까 봐 엄마께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빼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학교를 나서자마자 문구점에 가서 가장 큰 하드보드지를 사고, 매직으로 저의 생각을 바로 써내려갔습니다. "역사에 '중립'은 없습니다" 정부에서 말하는 그 '중립'도 결국 편향된 역사인데 그 편향된 역사를 '진리'라고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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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 후 시민들에게 많은 응원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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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에 응원메시지를 적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 김민정


알바비 받느냐던 말... 그래도 사과를 더 많이 받았어요

사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무서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이야기만 하면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가는 세상에서 '이 종북 빨갱이년이 어디서! 북으로 꺼져!'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 3시간 서있는 동안 그런 이야기보단 어른들의 응원과 사과가 훨씬 많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
"학생 미안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고."
"고마워요. 쉽지 않은 일 일텐데 이렇게 용기내줘서."

쌀쌀해진 날씨에 어느새 차가워진 제 손을 아무 말 없이 잡아주시던 손길에, 꼭 안아주시며 미안하다고 거듭하던 그 응원과 격려를 받을 때 마다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느라 애썼습니다. 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저 부끄러운 국민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요.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한 시간이라도 더 서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인 시위를 마치고 돌아와 제 소감을 페이스북에 남겼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혹시나 1인 시위했던 사진이 나가서 괜한 해코지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습니다. 둘째 날 일인시위를 할 때 "너 혹시 알바비 받고 지금 1인 시위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지나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칭찬도, 손가락질도 모두 감사합니다. 제가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역사에서 보여진 것처럼 청소년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부끄러운 역사는 반성하고 더 나아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그 정신을 계승해 본받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사에 중립은 없습니다. 정부가 정하는 단 하나의 관점은 균형 잡인 시각이 될 수 없습니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역사를 배우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저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빨리 일어서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국정화 #교과서 #한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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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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