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CEO도 호칭에 걸맞은 책임감과 태도를

바뀐 호칭이 사람도 바꿀 수 있을까?

등록 2015.10.23 15:46수정 2015.10.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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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는 지난 8월부터 6급 공무원의 호칭을 담당에서 팀장으로, 무보직 6급과 7급 이하 공무원의 호칭을 주무관으로 일원화했다. ⓒ 경주시 제공


담당에서 팀장으로, 주사에서 주무관으로, 주방장에서 셰프(chef)로, 대표이사에서 CEO(Chief Executive Officer)로, 재무책임자에서 CFO(Chief Financial Officer)로. 직책의 호칭이 달라지면 그 사람이 직무를 대하는 태도와 삶의 자세도 바뀔까.

경상북도 경주시는 지난 8월부터 6급 공무원의 호칭을 담당에서 팀장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보직이 없는 6급과 7급 이하의 공무원 역시 주사, 서기 등으로 호칭하던 것을 주무관으로 일원화시켰다. 대민업무 진행에 있어 혼선을 방지하고, 공무원 사회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호칭 변경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은 유사한 호칭 변경작업을 이미 완료한 바 있다.

새로운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경주시의 6급 이하 공무원들. 2개월이 지난 지금. 시의 의도처럼 대민업무에서의 혼선이 줄고, 공무원들의 사기는 진작됐을까? 경주시청 공보담당관 최정환(58)씨가 내놓는 평가는 긍정적이다.

"예전엔 민원인이 시청을 찾았을 때, 누가 자신의 일을 도와줄 담당인지 누가 책임자인 팀장인지 호칭에서부터 혼란이 있었다. 이제 그런 부분이 해소됐고, 팀장은 한 부서의 리더라는 자각이 생겨 업무에도 보다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이 최 담당관의 설명. 이에 덧붙여 "일제강점기부터 부르던 호칭을 바꿈으로써 사기도 올라갔고, 자부심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직급에 따른 공무원의 호칭 변화... 내외부의 긍정적 평가

최 담당관의 견해가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 나온 자평이라면, 바깥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양대 국문과 유성호(51) 교수는 "구성원 간의 원만한 합의가 있었을 경우엔 포괄적으로 합의된 명칭을 불러주는 게 좋다"며 "팀장이나 주무관이란 새로운 호칭이 지난날 서열에 따른 모호한 명칭보다는 새로움이 있고, 팀장이라고 불리는 때부터 책임의식도 고무되고 사명감도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유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직급에 따른 경주시 공무원의 호칭 변화'는 외부적으로도 후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CEO, CFO, 오너셰프(OwnerChef) 등 직책이나 직무에 따른 호칭을 영어 약자로 만들어 부르는 최근 세태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 것들을 무조건 언어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입을 뗀 그는 "다만 생소한 언어나 호칭을 사용하게 될 경우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정착되는 것이 있고, 잠시 사용되다 사라지는 호칭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CEO 정도는 이미 사람들의 입에 붙었지만, CFO나 CHO(Chief Human resource Officer·최고 인사책임자), CTO(Chief Technology Officer·최고 기술책임자) 등의 호칭은 아직 일반화됐다고 말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이에 관해 유 교수는 "호칭이란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간의 균열이 적어야 받아들이기 용이하다"며 "지나치게 생소하고 낯설거나, 구성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언어나 호칭은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관계맺음과 상호간 교류는 '호명'에서 시작되기에...

"호칭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어는 역사적·사회학적 맥락 안에서 해석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유 교수의 말은 셰프 혹은, 오너셰프라는 호칭이 단시간 내에 사람들 사이에서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 현상을 설명하는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인기 높은 TV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셰프나 오너셰프 등의 호칭이 자주 사용된다는 건 이미 동시대 사회구성원들이 이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주지주의(主知主義) 시인 김춘수(1922~2004)는 이미 오래전 '꽃'이라는 시를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인간의 관계맺음과 상호간의 교류가 '호명'(呼名·이름을 부르는 것)을 통해 시작된다는 것을 설파한 시인의 직관은 예술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다.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호칭은 변한다. 그러기에 더욱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직책을 불러주는 호칭에 걸맞은 책임감과 태도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삶을 꾸려가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호칭 #경주시 #공무원 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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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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