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세월호와 우리 삶, 함께 끌어올려요

[현장]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 후기

등록 2015.10.28 11:53수정 2015.10.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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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쫓겨난 적 있는 사람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모여 존엄과 안전의 권리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난한 이의 존엄과 안전,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

지난 14일, 인권재단 사람 대회의실에서 작은 토론이 열렸다. 좀처럼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 주최의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를 연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에 304명을 실은 채 가라앉는 세월호를 지켜보았던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반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똑똑히 보았다. 살면서 자신의 세계 전부가 내동댕이쳐진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바닥을 보았으므로 그 바닥을 둘러싼 울타리에 대한 강한 불신을 품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면 그래도 실체를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국가와 사회라는 테두리는 뻥 뚫린 구멍으로 존재했고, 법과 제도라는 울타리는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은 4월 16일의 참사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었다. 반 빈곤운동이 매년 10월 17일에 빈곤 철폐의 날 투쟁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416 인권선언을 함께 만들기 위한 토론을 진행했다. 주어진 선언의 문구를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선언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원탁회의의 형태로 토론을 준비했다. 삶의 문제와 세월호를 함께 고민하는 416 인권선언운동의 정신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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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가 주최한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 모습 ⓒ 4.16연대


나의 존엄과 안전은?


살면서 겪은 존엄 박탈과 인권 침해 경험에 관해 묻고, 세월호 참사와 내 삶의 연관에 관해 물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존엄과 안전이 지켜지는 데 필요한 권리를 물었다.

성동공고 노점상 주성근씨는 지난 여름 성동구청이 발주한 용역에 의해 행정대집행 철거를 경험했다. 당시 본인의 모든 것인 매대와 물건이 구청 집게 차에 의해 박살 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0월 6일 성동공고 앞 세월호 촛불 문화제와 풀뿌리토론을 하면서, 침몰한 세월호와 박살 난 나의 매대가 같은 신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홈리스행동' 회원 김종언씨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고 건설일용직을 전전하다 거리생활자로 전락하게 되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 지난 10월 8일에는 홈리스행동 회원들이 함께 모여 416 인권선언 풀뿌리토론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홈리스 당사자들은 위기에 처한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드러냈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자신들에게 사정없이 가해진 차가운 시선과 폭력의 경험들이 공통으로 있었고, 겨우 일어서려 했을 때 한계와 허점투성이인 사회복지 제도와 일자리 정책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현실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을 불안 속에서 떨게 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 속에서 이해했다.

최후의 주거지, 쪽방 주민의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일방적인 강제퇴거에 맞서 싸워왔던 동자동 9-20 비상대책위 위원장 김병택씨는 세입자의 거주권보다는 건물주의 재산권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던 서울시와 용산구 등의 잘못된 행정의 실체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에서 오랫동안 묵은 부정부패, 정부조직과 돈 많은 사업가의 결탁을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씨는 올해 7월 국립의료기관을 정부가 '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지정하면서 그곳에서 치료받고 있던 에이즈 환자 11명이 쫓겨난 사례를 이야기했다. 특정 질환의 환자라고 해서 치명적인 질병이 창궐하는 때 대책 없이 환자의 생명을 내팽개치는 정책을 비판했다. 바닷속에 빠진 세월호에 갇힌 304명을 눈 뜨고 구경만 한 정부, 모든 요양병원이 거부해 갈 곳 없어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운 에이즈 환자를 눈뜨고 구경만 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에 책임 안 지려 정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 에이즈 환자 요양병원 거부 문제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떠넘기기. 이 모든 상황이 한 맥락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비롯한 복지제도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장애인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장애인들은 집안에서조차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곤 한다. 도움조차 청하지 못한 채 화마 속에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이 있었다. 세월호를 보면서 '국가라는 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장애인이자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 불안과 생존의 위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홍대에서 삼통치킨을 운영하는 맘상모 회원 이순애씨는 '골목 상권을 일궈온 것은 건물과 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한 우리인데'라며 돌연 세입자를 내모는 것을 정당화하는 법과 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내가 살아갈 권리보다 건물주의 탐욕이 우선인 사회가 지금과 같은 임대차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인식했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에는 아직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포함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았지만 친구들을 잃은 채 고3 수험생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생존자들, 이사를 가던 짐, 유일한 생계수단인 화물차를 잃는 등 삶의 전부가 망가져 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색과 구조활동에서 죽어간 잠수사, 막대한 피해를 호소할 길조차 없는 진도 어민 등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속절없이 가라앉은 세월호를 지켜본 우리는 이웃 죽음의 진실을 알고자 했다.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법. 제도와 무지막지한 공권력, 피해 배·보상을 둘러싼 인격모독 속에서 참상은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모두 피해자로서 세월호 참사에 연루되어 버렸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의 몫이 되었다. 가라앉은 내 삶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일과 세월호의 진실을 끌어올리는 일은 다르지 않게 되었다.

가라앉은 우리의 권리를 함께 끌어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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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회의 참가자들이 함께 만든 권리의 배 모습 ⓒ 4.16연대


존엄·안전·인권. 빼앗기는 것이 일상인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단어들이다. '그 누가 노점상을 하고 싶어 하느냐'는 가사처럼, 노점상, 철거민, 홈리스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수이되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법과 제도는 한 번도 내 편인 적이 없었기에 무작정 싸우는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는 이들을 '떼잡이'라 불렀다. 몇 해 전 한 유명인사가 '노숙인은 수치심이 마비된 존재'라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수치심이란 어떤 수준 이상의 인간 생존 조건 위에서 갖춰질 수 있는 것이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 바닥에 내던져져 아무런 가림막 없이 밥을 먹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수치심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라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진은영 시인은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고 말했다. 그 수치심을 다른 말로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 표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그 품위의 범주는 이 사회가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법과 제도에 의해 도저히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 행하는 저항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견제하기도 한다.

법과 제도를 제 맘대로 바꾼 이들에 대해서는 인심이 후하다. 또한 법과 제도가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선박의 연령 제한을 늘리고 운항관리 업무 예산을 줄이고, 선박 회사의 책임을 줄이고, 과적을 묵인해 온 지난 시간 동안 세월호는 그토록 위험한 배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실은 무거운 배가 바다 위를 달리면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자연의 섭리마저 넘어선 탈선이 있었다. 탈선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키도록 강요되는 법과 제도를 누군가가 제멋대로 뜯어고치면서 이루어졌다. '수치심'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향해야 하는 것일까. 발 딛고 선 땅, 나를 둘러싼 울타리 그 모든 것이 의심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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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회의 참가자들 모습 ⓒ 4.16연대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416 인권선언 원탁회의'에 모인 사람들은 가라앉은 세월호를 끌어올리기 위한 과제와 나의 삶을 끌어올리기 위한 요구를 함께 고민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도 발 딛고 일어설 땅이 있다. 이렇게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 있기에, 진도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끌어올리고 세월호의 진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끌어올리기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 참가자는 세월호와 우리의 삶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나의 권리, 당신의 권리,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의 우리의 권리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인권선언'이 준비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최예륜 시민기자는 4.16 인권선언 추진단이자 빈곤사회연대 소속입니다. 이날 원탁회의 자료는 416연대 홈페이지에서 '인권선언 -> 풀뿌리토론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416 #인권선언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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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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