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쓸 수 있습니다

[제'법'이네13-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 개선

등록 2015.11.04 17:56수정 2015.11.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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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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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임신 3개월째인 직장인 김아무개(28)씨는 요즘 퇴사를 고민 중이다. 임신 소식을 접한 사장이 '우리 회사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 육아휴직을 쓸 수 없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동시에 신청해 총 6개월 동안 아기를 돌볼 계획이었다.

"100일도 안 된 신생아를 떼어놓고 직장에 돌아간들 일이 손에 잡히겠어요? 경력단절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일을 그만두고 아기를 키우는 게 우선 아닐까 싶네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현행법으로 보장된다. 사업주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주지 않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법적으로 처벌받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처벌과는 별개로, 노동자가 허가 없이 일을 쉬면 무단결근으로 처리된다. 회사가 반대하면 사실상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는 셈이다.

김씨는 "법으로 보장된다고 해서 당연히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현실에서는 '그림의 떡'이었다"라고 하소연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고충을 겪는 직장인은 김씨만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 6422건 가운데 68.1%(4379건)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관련 내용이었다.

회사 상관없이 사용 가능... 복직 후 불이익 문제 남아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서울시와 협력해 제도 개선에 나선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현역의원 최초로 임기 중 임신과 출산을 겪은 장 의원은 지난 23일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주의 허가 없이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이를 위해 출산 휴가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근로자가 통보한 출산휴가 개시 예정일에 사용자가 휴가를 주지 않으면 근로자가 통보한 예정일에 휴가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육아휴직 관련 내용이 담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에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청에 따라 육아휴직을 허용한 것으로 본다"라는 조항을 추가했다.

장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회사의 결재나 허락과 상관없이 노동자가 원하는 날부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되므로 무단결근 처리 등의 문제가 사라지게 된다"라며 "제도의 실효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개호·우원식·정청래·이미경·전순옥·김춘진·임수경·노웅래·이목희·남인순·김기식·진성준·김성곤·유은혜·김경협·박광온·진선미·강동원 새정치연합 의원과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참여했다.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와 여성단체들 역시 제도 개선 과정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장 의원과 함께 지난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모성보호와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서라도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행 제도상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급여는 회사의 확인서 등이 있어야만 지급받을 수 있다. 사업주의 판단 없이 휴직에 들어가더라도 결국 급여를 받으려면 회사의 협조가 필요한 구조인 것이다. 또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한 노동자가 복직 후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장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출산휴가·육아휴직 급여 관련 제도 개선도 후속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사회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입법과 캠페인도 동시에 지속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임기 중 출산한 장하나, 개정안 발의한 이유는...
다음은 30일 장 의원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 관련 개정안을 발의한 계기가 무엇인가.
"지난 2월에 딸을 출산해 일·가정 양립 문제를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인데다가, 주변 친구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제도 개선에 나섰다. 특히 '직장맘'들의 주요 고충이 출산휴가·육아휴직 관련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법 개정을 모색하게 됐다."

-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업주의 결재와 도움 없이도 노동자 개인이 출산휴가·육아휴직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건가.
"현행 고용보험법에 따르면, 노동자는 출산휴가·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할 때 사업주가 발급한 휴가·휴직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즉 회사가 확인해주지 않으면 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법률이 개정되면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제도 개선을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노동자가 고용센터에 통지하면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노동자가 복직 후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사회적 인식수준 문제다. '모성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 분담이 필요하다'는 인식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 발의도 처벌 강화보다는 인식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앞으로도 모성보호를 위한 다양한 입법과 캠페인을 동시에 지속해 나가겠다."

- 이번 법률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대되는 실효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허락하지 않는 회사를 처벌할 일도 사실상 없어질 것이고, 해당 제도가 보다 보편적인 권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 현역의원으로는 최초로 임기 중 임신과 출산을 겪었고, 현재는 의정활동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모성보호와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을 위해 앞으로 개선하고 싶은 제도가 있나.
"모성보호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해버릴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한, 모성보호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이 기간제근로자의 계약기간 연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해보고자 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출산휴가 #육아휴직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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