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반지의 제왕> 제작자가 먼저 건넨 명함의 힘

[오마이 스토리] 김은의 '컬러풀 흑백필름' 6편

15.11.02 18:30최종업데이트15.11.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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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할리우드 유력 제작자 베리 오스본. ⓒ 김은 제공


홍보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PR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인터뷰다. 기자는 감독, 배우 등 작품을 만든 주요한 스태프에게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대신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풀곤 한다.

보통 비즈니스 관계의 첫 만남이 그렇듯이 인터뷰어(interviewer, 인터뷰하는 사람)는 인터뷰 시작 시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넨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 배우나 감독들은 명함 교환을 잘 하지 않는다. 아마 명함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소위 '얼굴이 명함'인지라 그렇게 통용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내겐 그 '명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모 인터뷰 자리에서 첫 장편을 끝낸 20대 중반의 젊은 신인 감독이 기자가 주는 명함을 공손히 받더니 자신의 명함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한 기자에게 내밀었다. 연차가 좀 있었던 국장급의 기자는 "이런 예절을 어디에서 배웠나"라며, "명함을 주어도 눈앞에서 챙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신통하다"고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는 그 명함 하나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가 내 이름의 뜻을 물었다

내게도 특별한 명함이 하나 있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프로듀싱 한 베리 오스본의 명함이다. 올해 초 명함 지갑을 잃어버리기 직전까지 항상 그의 명함을 내 명함과 같이 지갑에 넣어 다녔다. 그 정도로 중요한 명함이었다.

<워리어스 웨이>(2010)라는 영화를 맡았던 그는, 개봉 해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자신의 영화를 앞장서 홍보했다. 홍보를 시작하기 전, 그는 자신의 일정을 확인하는 국내 스태프들을 발견하자 먼저 명함을 내밀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함께 했던 홍보 스태프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가 그를 몰라봐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포스터. 유명 시리즈물을 제작했음에도 베리 오스본은 자신을 겸손하게 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뉴라인시네마


다행히 영문 이름이 담겨 있던 내 명함을 본 베리 오스본은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은자는 한문으로 銀, 즉 silver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신과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시간 나는 대로 암기하기 시작했다. 직접 손으로 한국어를 써가면서….

우리나라 언론 특성상, 수십 매체를 온종일 인터뷰해야 하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그의 몸 상태를 걱정하고 체크하는 나에게 틈틈이 내 이름을 부르며 괜찮다는 사인을 수시로 보내주었다.

"은~. 괜찮아요!"

그는 전문가였다. 그를 통해 작품을 대할 때 누구보다 겸손해져야 함을 느꼈다.

그 이후 신인 감독이나 배우들을 만날 때면 꼭 이야기한다. 단 몇 만원으로 수백 명에게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니 꼭 명함을 만드시라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거나 특별한 기억을 함께 전할 수 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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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김은 대표는 한 광고대행사 AE(Account Executive)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상품 광고가 재미없다며 박차고 나왔다. 이후 1997년 단성사를 운영하던 영화사 (주)신도필름 기획실에 입사해 영화홍보마케팅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 문화콘텐츠전문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를 설립했다. 홍보하면서 야근 안 할 궁리, 여직원이 다수인 업계에서 연애하고 결혼할 궁리, 상업영화 말고 재밌는 걸 할 궁리 등을 해왔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가 안 해 본 것들을 직접 또는 소수 정예 직원들과 함께 실험 중이다.
반지의 제왕 김은 베리 오스본 호빗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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