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고구마' 만들어 먹던 달콤한 겨울

고구마 캐는 날의 추억... 고구마 수제비, 고구마 칼국수, 눈고구마가 생각난다

등록 2015.11.06 17:15수정 2015.11.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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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먹다 남은 개죽처럼 거무죽죽한 내 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옆자리 친구가 볼새라 얼른 뚜껑을 닫았지만 친구 도시락에는 하얀 쌀밥에 노른자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계란프라이가 얼굴을 드러냈다. 도시락 뚜껑을 세워서 얼굴 아래쪽을 반쯤 가리고 밥을 먹었는데 맛은 꿀맛이었다. 물기도 많아 먹기도 편했다. 바로 고구마 밥이었다.


"개가 먹던 거 뺏어 왔냐?" 고구마 밥에 얽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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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도시락 고구마와 같이 한 밥 ⓒ 전새날


햇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1974년이다. 계절은 10월 중순 무렵이 정확할 것이다. 20리가 넘는 읍내로 유학을 가서 자취를 하던 때였는데 석유곤로는 부잣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고급 주방용품이라 나는 아궁이에 솥을 걸고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으면서 중학교를 다녔다.

타작은 늦고 쌀은 모자라 어머니가 고구마 밭에서 서리하듯 때 이른 고구마 몇 개를 캐서 모자라는 쌀 대신 싸 주셨는데 그걸 얹어 밥을 했다. 솥에서 아예 주걱으로 으깨가지고 도시락을 담았으니 식어 버린 도시락밥이 거무죽죽할 밖엔.

어머니가 잔챙이 감자를 자잘하게 썰어서 솥 바닥에 깔고 밥을 하던 것을 보고서 어설프게 흉내를 내다가 밥도 죽도 아닌 도시락을 만든 것이다. 친구들이 몰려들어 뭐냐고 한 숟갈씩 퍼 먹다가 한 놈이 "개가 먹던 거 뺏어 왔냐?"고 했을 때 사춘기 소년은 크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뒤로는 어머니가 겨울철에 고구마 밥 먹을래 감자 밥 먹을래 물으시면 늘 감자밥을 선택했다. 한동안 고구마는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요즘이야 피로회복에 좋고 껍질에 있는 베타카로틴은 노화예방에도 좋다며 고구마 인기가 상당하다. 특히 알칼리성 식품으로 몸속의 나트륨을 배출시켜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고구마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1/3 지점을 칼로 탁 잘라보자. 그러면 고구마가 어디서 온 식품인지 알 수 있다. 일본 대마도와 꼭 닮았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농서를 뒤져보면 그리 오래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농사를 축으로 해서 의학과 예술까지 실생활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임원경제지>에도 고구마는 없다. 총 113권 54책에 달하는 이 책의 '본리지'2 권7의 곡식이름 난을 다 뒤져도 없다. 논곡식, 밭곡식, 야생곡식 어디에도 없다. 이 책은 언제 나왔을까? 1800년대 초에 나왔다. 저자인 서유구가 태어나던 해에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1764년이다. 300년이 채 안 된다. 감자보다도 일찍 들어 왔다.

달큰하면서 부드러운 고구마 수제비, 고구마 칼국수

조선조 예조참의 '조엄'이 일본을 다녀와서 <해사일기>라는 기행문을 썼는데 거기에 최초의 고구마 기록이 나온다. 그 자신이 대마도에서 가져 온 것이었다. 일기에 보면 고구마는 무 뿌리처럼 생겼는가하면 토란이나 오이와 같고, 굽거나 삶아 먹을뿐더러 떡을 만들거나 밥에 섞을 수도 있으니 흉년을 지낼 재료로 안성맞춤이라고 적고 있다.

고구마의 본이름은 '효자마(孝子麻)'인데 일본어로 발음하면 '고오시마'이고 한자로 표현하면 고귀위마(高貴爲麻)이니 눈치만으로도 고구마의 어원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들어 온 고구마는 외지고 비탈진 밭에서도 잘 자랐다. 생명력도 강해서 순을 잘라서 땅에 묻어만 두면 자랐다. 종자 값도 많이 들지 않고 병충해도 별로 없다. 생육기간도 짧아 심었다 싶으면 캘 때가 된다. 불리한 기상조건에서도 잘 자라다보니 이보다 더 흉년 대비 작물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흉년 들 때 큰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구황작물 또는 비황작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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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고구마 고구마에 얽힌 애환. 함평고구마 사건 ⓒ 전새날


조선 시대에는 쌀농사를 할 수 없는 백성들이 수두룩했었다. 자기 논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남의 논일망정 부쳐짓는 것도 힘들었다. 한계지역에서 날씨가 안 좋아도 재배가 가능하니 고구마는 서민들의 식품이었다. 거름기 없는 황토밭에서 잘 자라다보니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체험행사로 고구마 밭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1970년대에도 고구마를 삶아서 밀가루 반죽에 버무려 칼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산간지역 사람들은 거의 주식처럼 먹었다. 칼국수로 만들어 먹었던 기억도 있다. 만약에 서울 어느 지점에 고구마 칼국수 집을 연다면 인기 짱일 것이다. 달큰하면서 부드럽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희석식소주를 만드는 주정의 원료로 고구마가 쓰였다. 고구마를 삶아서 발효를 한 다음에 증류해서 만들었다. 고구마는 주성분이 녹말이기 때문에 당분으로 변하고 다시 알코올로 될 수 있다.

그래서 농협에서 주정회사를 끼고 대량 수배를 했었는데 부정사건이 터진 것이 그 유명한 1976년의 '함평고구마사건'이다. 가톨릭농민회 중심으로 가톨릭신부들까지 떨쳐나서서 3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보상금을 받아 내는 승리를 거뒀던 대표적인 농민운동으로 발전했었다. 박정희정권은 긴급조치 위반 혐의를 걸어 길거리에서 울부짖는 농민들을 탄압했다.

사각사각 달콤한 '눈고구마'가 생각난다

지난해에 고구마를 캤는데 잔챙이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 컸었다. 삶아먹다 남겨 뒀던 고구마가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는데 그걸 먹어 봤더니 쫄짓쫄깃 하고 달달했다. 아예 가마니 째로 가마솥에 삶아 말렸더니 더할 수 없는 겨울 새참거리가 되었다. 이때 약간의 기술이 필요한데 첫째는 삶을 때 살짝 삶아야 한다는 점이다. 푹 삶으면 흐물흐물해져서다. 두 번째 기술은 햇볕에 말리는 데 2/3쯤 말려야 한다. 그래야 쫀득쫀득하게 먹을 수 있다.

다른 어떤 농작물보다 고구마는 잘 언다. 얼었다하면 바로 썩는다. 감자는 썩어도 분말을 내서 먹을 수 있지만 고구마는 썩으면 돼지도 안 먹어서 다 버린다. 아마 0℃에서 썩는 음식은 고구마뿐일 것이다. 함평고구마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런 특성 때문에 빚어졌다고 할 수 있다. 농협이 수매 돈을 딴 데로 빼돌려서는 11월 하순이 되도록 고구마를 들판에 쌓아두게 했으니 썩는 냄새가 산천을 진동했고 농민들은 속이 문드러져버렸다.

그래서 수확을 하면 바로 흙을 잘 털어내고 공기 잘 통하는 12~15℃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얇게 펴 널어서 10~15일을 예비저장 과정을 통해 방열 처리 한 뒤에 저장하면 더 좋다. 방열처리를 하는 것은 고구마는 자체 호흡으로 열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도 주의할 게 있다. 고구마를 캐면서 상처가 났거나 껍질이 까진 것은 골라내야한다. 이런 것들은 30℃의 약간 높은 온도에서 4-5일간 아물이처리를 하고 장기보관 체제로 들어가는 것이 썩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따로 저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방 윗목으로 고구마를 손님처럼 모시고 한 겨울을 나는 일이 예사였다. 고구마 뒤주는 짚으로 엮어 만들어 공기가 잘 통했다.

원래 고구마 잎은 나물도 해 먹지만 소 먹이 여물로 최고였다. 볏짚만 끓여주다가 말린 고구마넝쿨을 작두로 썰어 한 줌 넣어주면 누워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여물통으로 달려오곤 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구마 순을 걷어 말리는 일이 일소 키우는 농가의 겨우살이였다. 요즘은 공짜로 갖다 줘도 소 먹이로 안 준다. 배합사료 대신 그걸 먹였다가는 소의 성장 속도가 떨어져 망해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좋은 분은 흰 눈이 펄펄 오는 겨울철에 문득 고구마를 떠 올릴 수 있다. 쇠죽을 끓여준 가마솥 아궁이에 고구마를 묻는 한편, 동시에 쌓인 눈 속 깊숙이에도 고구마를 묻어 둔다. 밤이 이슥하도록 아랫방에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다보면 이놈 저놈이 코를 벌렁대며 고구마 다 탄다며 군고구마 꺼내 먹자고 하는데 아무도 눈 속에 있는 고구마는 눈치 채지 못한다.

군고구마는 고소하고 달지만 눈고구마는 사각사각하고 달콤하다. 눈 속에서 탱탱 언 고구마는 얼음과자처럼 차고 바삭거린다. 언 고구마가 더 단 이유는 왜일까? 얼었다고 당도가 높아진 것일까? 어쨌든 보통 고구마보다 훨씬 달아서 눈고구마를 만들어 먹던 겨울이 더 달콤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살림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농업 #전새날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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