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는 쓰레기"라는 학생, 교과서 때문일까

[주장] 자랑스러운 역사는 식민 지배와 독재에 싸운 사람들이다

등록 2015.11.09 10:54수정 2015.11.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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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역사 왜 이렇게 쓰레기예요!"

얼마 전 필자가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들었던 소리다. 누군가는 어떻게 학생이 이토록 심한 말을 하게 내버려 두었느냐며, 야단을 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필자에게 따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든 솔직한 내 심정은 '미안하다' 였다.

학생이 이렇게 말한 것은 대한제국 말기 우리나라가 일본에 야금야금 먹혀가는 순간을 수업할 때였다. 일제가 한일의정서·제1차 한일 협약·을사늑약과 한일신협약 등을 강제로 체결하고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교과서에서 찾아 학습지에 쓰게 했다.

외교 고문과 재정 고문이 들어오고, 미국·영국·러시아가 우리나라에서 손 떼겠다 약속하며, 외교권을 빼앗기고 군대가 해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학생은 화가 나 이렇게 말했다. 다른 학생들이나 다른 반의 분위기도, 대놓고 쓰레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못마땅해 하고 짜증을 내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도 부강한 근대 국가로 발전할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 기회들을 모두 날려버리고 후손에게 가슴이 미어지는 식민지의 과거를 남겼다. 이런 역사인데 과연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교과서가 잘못되어 학생들이 과거를 부끄러워한다고 하지만, 이런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것은 아닐까?

해방 이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니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 우리는 독재의 시대를 살았다. 5공 시절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부른 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 비유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 아니기에 자유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독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교육받던 그 시절이 배부르고 등 따시니 무조건 자랑스러운 과거인 걸까?

그래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근현대사

지금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통치 방식과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먼저 실었다. 그다음부터는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신간회 등 일제에 대항한 국내 저항의 역사를 소개하고, 만주와 연해주 등 국외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시대로 들어가면 시대별 정치 상황과 민주화 과정이 전개된다.

학생들에게 100년 조상들은 식민지의 역사를 물려준 멍청한 조상들이지만, 너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가라고 말하기는 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이 자행되던 시절에 태국이나 에티오피아처럼 독립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식민지가 된 것이 우리 조상들만 유독 못나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부끄러운 일제 강점기와 독재의 시대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될 수 있다. 바로 그 시대에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가는 과정에서도 의병들의 적극적인 투쟁이 있었기에 식민지화가 늦어졌다. 35년간의 식민지 기간에도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의열 투쟁, 무장 투쟁 등의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대한민국 시대, 오래 지속되었던 독재의 시기에도, 수많은 이들이 민주화 투쟁에 나섰기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되었는데 아무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다가 미국의 원자폭탄 두 발로 광복을 당하고 해방을 선물 받기만 한 나라라면, 이보다 더 부끄러운 근대사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웬만큼 잘 살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면 이보다 더 부끄러운 현대사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와 독재를 겪었지만, 근현대의 독립 운동사와 민주화 운동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런데 정부가 만들 국정 교과서는 고대사를 보강한다고 한다. 교과서 분량에는 한정이 있으니 바로 근현대사의 이 자랑스러운 분량이 줄어들 것만 같아 우려된다.

"유관순은 알지만 김원봉은 모릅니다"

나는 김원봉을 모릅니다.

1919년 신흥 무관 학교 출신들을 모아 의열단 창단을 주도하고,
일제의 중요 기관을 파괴하며, 주요 인물 처단을 행동 지침으로 삼으셨지만,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1935년 중국 관내 다양한 성향의 독립 운동가들을 모아
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조선 의용대를 창립하셨지만,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1942년 조선 의용대의 일부를 이끌고 임시 정부의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셔서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윗글은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의 '유관순을 모릅니다' 광고 내용을 모티브로 교학사에 나온 김원봉 관련 내용만 가지고 만든 패러디 글이다. 영화 <암살>이 흥행에 성공하고 천만 관객을 돌파할 즈음 "새롭게 조명된 독립 운동가 김원봉", "우리가 몰랐던 독립 운동가 김원봉" 과 같은 제목을 단 기사를 여럿 보았다. '뭐야, 김원봉을 몰랐다고? 말이 돼?' 하며 어이없어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나이를 먹은 내가 김원봉을 아는 건 나의 특수한(?) 직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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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 중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 ⓒ 케이퍼필름


점심시간에 동료 교사들과 밥을 먹다가 영화 <암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들은 영화를 보고 김원봉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5공 시절에 다녔던 나는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역사 교사가 아니거나, 2000년대에 <한국 근현대사>라는 과목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김원봉을 모르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 일제 강점기 수업을 하고 있는데,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 김원봉에 관해서 물어보았더니 이구동성으로 중학교 때 아주 중요하게 배웠다고 말한다. 2000년대 근현대사 과목이 생겨나고, 드디어 교과서에 들어온 김원봉은 대강 헤아려 보아도 꼭 외워야 할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들도 김원봉의 업적은 주로 세 가지를 외운다. 첫째는 1919년부터 의열단을 만들어 친일파와 일제의 요인을 처단한 것이다. 1930년대에는 의열 투쟁의 한계를 깨닫고 조직적인 무장 투쟁, 즉 독립군 부대를 만들어 일본과 싸우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것이 바로 조선 의용대이고 우리가 달달 외우는 김원봉의 두 번째 업적이다. 여러 차례의 통합과 분열 등 복잡한 과정이 지나간 후 1940년대에는 조선 의용대를 이끌고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다. 이것이 김원봉에 대해 외우는 세 번째 내용이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도 김원봉의 업적은 이렇게 많다. 그런데 내가 배웠던 국정 교과서 국사 시절에는 이렇게 중요한 김원봉이 어디에도 없었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전혀 싣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당시의 국사책 속 독립운동사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답답하고 그저 한심하기만 한 역사였다.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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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 정상화 대국민담화 발표하는 황교안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왜 국정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사례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고자 이 글을 쓰는 거 같은데, 반대의 논지가 잘못되었다.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이유는 6.25 서술에 북한 책임을 명시하지 않고, 북한을 찬양하는 등 현대사 서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국정화 찬성 측이 반박할 것 같다.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교과서로 배우니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힐난도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은 6.25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혼동이 되어서, 대한민국이 독재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엊그제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가려는데 학생 한 명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독립운동가의 80%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해방 후 북한에 간 다음에는 많이 숙청당했다면서요?"
"응,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많이 제거당했어."
"그래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독립운동가로 기록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데 사실이에요? 김원봉도 그렇다던데..."

이렇게 말하는 학생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라는데, 뜬금없이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가르쳐서 그렇다며 한국사 책임론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학생들은 식민지와 독재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워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목숨 걸었던 사람들이다. 학생들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독립운동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공정하지 못한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인생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이를 홀대하는 나라가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조국이 될 수 있을까? 내게 질문한 그 학생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대통령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이유로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들었다.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려면 식민지 역사와 독재의 역사를 지워서는 안 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주려면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과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을 오히려 지금보다 더 자세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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