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장병 '전액 지원', 왜 말 바뀌나 했더니

[주장] 현실적 치료 지원조차 힘든 규정, 예산 아끼려다 병사 사기 꺾는다

등록 2015.11.09 17:00수정 2015.11.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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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부상자 보상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과연 군대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조직인가. 무엇보다,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 본질적인 접근을 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육군 홈페이지의 <육군 목표>를 간추리면, 군이란 1) 전쟁을 억제하고 2) 유사시에 승리하는 전투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쟁 억제는 전투력 강화에 자연히 수반되는 현상이며 정치·외교 등 여타 분야의 다소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는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순수한 군 조직의 실질적 지향점은 유사시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다. 전·후방의 모든 작전과 교육훈련의 궁극적 목표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가.

'현대 무기가 아무리 발전되어 싸움이 미사일전이 되어도, 결국 전쟁을 종결짓는 것은 고지를 점령하고 깃발을 꽂는 육군이다.'

보병 엘리트 장교들을 중심으로 뭉친 육군은 이 간명한 논리를 앞세워 지난 수십 년간 군의 수뇌부를 배타적으로 점유해왔다. 그러나 좁은 면적과 매우 높은 인구밀도, 끝없는 산악 지형이라는 전술적 위해요소를 고루 갖춘 한반도 전구(戰區)에서 이 말은 꼭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뿌리내린 중·소대전투 중심의 전술교리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접전 지역에서의 모든 군사작전은 휴전 상황에서조차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성을 수반한다. 실제 전쟁 상황의 최전선 작전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이 유사시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평시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사지로 들어가라'는 작전 지휘체계의 원활한 작동 여부이다.

지휘관의 명령대로 했다가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자신이 죽어 나가도 지휘관이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선의 장병이 미리 가지고 있다면 그 부대는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 어느 선까지는 전투가 수행될 수 있으나, 장병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점에서부터는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상 당한 군인, 국군은 어떻게 대했나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전시에 군인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즉 진정한 '싸우는 군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참모총장 시절 청와대 비서실과 권한 다툼이 생기자 "지휘관이 소신대로 인사를 할 수 없다면 부하가 과연 명령에 복종하겠는가"라는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미루어 볼 때, 각 군 본부의 고위 장성들은 이 '인화단결의 첩경'이 인사권에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진급 심사에서 누구를 구제하고 누구를 잘라냄으로써 발생하는 개별적 충성은 인사권 자체에 대한 복종 행위일 뿐이다. 지휘관이 소신대로 인사를 하더라도, 인사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다수 부하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군인에 대한 적절한 처우가 뒷받침되면 된다. 일선 전투원이 단순한 부속품으로서가 아닌 인격적으로 적정한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전시 지휘계통을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평소의 군 생활을 통해 느끼기도 하지만, 주로 국가를 위해 희생했던 군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보고 판단하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은 이제까지 부상 군인들에게 올바른 대우를 해 왔는지, 한 번 들여다보자.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3군단 정보처 정보분석 장교였던 이종갑 예비역 소령은 대간첩 작전의 막바지에 3발의 총상을 입었다. 이 중 한 발은 왼팔을 관통했다. 오른쪽 정강이뼈를 잘라서 붙이고 혈관도 이식했지만, 결국 그는 현재까지도 왼팔은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자 군은 이 소령을 관사에서 내보냈고 치료비 900만 원 중 절반의 선납을 요구했다. 그는 직접 건강보험공단 등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설명하고 그 할부금을 받아내야 했다. 고급 장성들은 빛나는 훈장을 받았지만 그는 참모총장 표창에 그쳤고, 이듬해 중령 진급심사에서 떨어진 후 바로 전역했다.

2010년 11월, 해병 연평부대의 공병소대 운전병이었던 박봉현 당시 일병은 소대장의 명령으로 굴착기를 이동시키다가 포격으로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 십자인대와 무릎 연골이 파열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과 군 수뇌부가 앞다투어 병원을 찾아 끝까지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몇 달 뒤에 유공자 판정이 나왔는데 결과는 기준 미달이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이유는 박씨가 잘라낸 무릎 연골의 길이가 6mm로 기준인 10mm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년이 지나서도 다리를 절었고 뛰지 못했으며 무거운 것을 들지도 못했는데,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보훈병원의 무료 진료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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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지뢰폭발 당시 영상 지난 8월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폭발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영상에 지뢰가 폭발한 뒤 연기와 흙먼지가 솟구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 8월, 1사단 수색대대의 하사 두 명이 작전 간에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 대통령과 장관, 군 수뇌부는 또다시 줄줄이 병원을 찾아 국가의 책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민간 병원에 입원한 지 30일이 지난 후부터는 치료비를 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국방부가 전액 부담하기로 뒤늦게 발표했다.

군의 자체적 조치가 아닌 외부 여론에 등을 떠밀린 모양새였다. 지난 6월, 21사단의 곽아무개 중사 또한 작전 도중 지뢰 폭발로 다리를 다쳐 민간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모친의 투서로 사연이 세상에 알려져 군이 전액 지원을 약속했으나, 한 달여 만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며 전액 지원 개정안의 소급 적용이 불가함을 밝혔다.

2015년 9월, 50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불량 수류탄의 조기 폭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손아무개 훈련병은 오른손과 치아 3개를 잃었고 각막과 고막이 손상되었으며 얼굴과 목 부분에 수십 군데의 파편상을 입었다. 손씨 지휘계통의 가장 윗사람인 2작전 사령관이 즉시 병원을 방문하였고, '모든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치료비를 소재로 훈련병 측과 갈등했다. 군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손씨를 옮길 것을 종용했고, 손씨의 모친은 군 병원의 분위기 문제와 간병인 문제, 지나치게 먼 통원 거리 문제 등으로 경북대 병원 입원을 고수하고 있다. 의수 구매에 관한 갈등도 있다. 세 손가락 의수가 2100만 원이고 다섯 손가락 의수가 3600만 원인데, 현재 군의 의수 보상 규정은 800만 원이다.

다행히 국방부는 9일 훈련이나 작전 중 부상을 당한 군 장병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개선을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달 하사 이상 군 간부가 전투나 고도의 위험직무 수행에 따른 질환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 군인연금법상 공무상 요양비 지급기간을 현행 최대 30일에서 '최초 2년 이하, 필요할 경우 1년 이하' 기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도록 군인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곽아무개 중사와 손아무개 훈련병의 치료지 비원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20여 년에 걸친 다수의 사례를 취합해 본 결과, 대한민국의 군 수뇌부와 국방부가 대부분의 군내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만 고위급 인사가 방문하여 책임과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서 관심이 사그라들면 사고 피해자에 매우 불리한 규정을 앞세워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상 군인들은 초기 한없이 따뜻했던 이들의 믿을 수 없이 차가운 태도에 절망하고 국가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지난 60여 년간 꾸준히 축적되어 '군대에서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말로 이제 국민적인 합의가 되었다.

입대를 앞둔 후배에게 예비역 선배는 '군대에서는 절대 앞서나가지 말고 중간만 해라', '위험하면 뒤로 빠져라. 다치면 아무도 안 돌봐준다' 따위의 이상한 말들을 조언이랍시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비겁하게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위의 수많은 사례에서 나타난 지극히 무의미한 희생의 당사자가 되지 말라는 자조 섞인 고언이다. 이렇게 미리 좌절을 학습하는 군대는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군인은 소모품? 군 수뇌부 인식 변해야

사회에서 국방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군인들의 노고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언행을 할 때, 군인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동병상련의 군인들끼리 모여 웃으면서 욕 한 사발 하면 그만이다.

정작 같은 운명 공동체라고 여겼던 군의 수뇌부와 국방부가 자신을 다치거나 죽어도 상관 없는 소모품으로 여긴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군인은 전투 의지를 상실한다. 수조 원 대의 거대 방산 비리보다, 일선에 보급되는 피복이나 장구류, 침구류, 탄약 등에 손대는 (한민구 장관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생계형' 군납 비리에 장병들은 더 서럽다.

치료비 지급을 요구하는 권 중사의 모친에게 '왜 공무상 요양비를 신청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징집되어 온 의무복무 병사에 '10mm와 800만 원의 규정'을 들이미는 군의 처사가 견딜 수 없이 허망하다. 안보 환경의 엄중함과 무력 보유의 특수성을 이유로 모든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군이 어째서 이런 상황만 오면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규정대로 일하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이냐'고 그들은 되레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어떠한 차등도 없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해야 할까. 그렇다면 예외적으로 전액의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군인은 단지 운이 좋았을 따름이었는지.

결국, 국가와 군 수뇌부의 인식이 문제이다. 군인을 단순한 소모품으로 생각하여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지출을 아깝게 여기는 현재의 무의식적 풍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정예화된 선진강군'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케케묵은 국가주의적 규정을 앞세워 희생 군인을 '나 몰라라' 하는 군대는 부하를 사지로 들어가라고 명령할 자격이 없다.

'예산 몇 푼을 아끼려고 이들을 홀대하는 것은 장병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는다'는 공감대를 고위 장성들이 가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싸우는 군대, 이기는 군대'를 건설하는 가장 중요한 밑돌이 될 것이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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