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폐허에서 왔다

[사진과 시로 만나는 세계의 도시 ⑩] 몬테네그로 코토르

등록 2015.11.09 10:53수정 2015.11.0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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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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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서유럽의 부자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는 도시.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코토르 사람들은 가난하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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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사를 알려주듯 코토르에는 중세시대 건축물이 꽤 있다. 1500년 전쯤에 큰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고 했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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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의 풍광은 아름답다. 깎아놓은 듯한 바위산과 고성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빈 듯한 느낌이 든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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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코토르. 폐허 뒤 더없이 푸른하늘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 홍성식


폐허를 덮은 폐허


1500년 전과 꼭 같은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웃 소년을 구하다 기둥에 깔렸다
못 마시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 해였다

티토*의 별장은 유리창 하나까지 성한 게 없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별장을 수리하던 아버지는 해고됐다
못 마시던 술은 더 늘었다

소녀와 엄마는 빈 방을 걸레질 해 여행객을 받았다
싸구려 소시지와 주워온 양파로 수프를 끓여 팔았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영어를 배워야한다고 했다
팔게 없었던 소녀는 몸을 팔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소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1500년 전과 꼭 같은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
멀쩡한 건 마을을 둘러싼 산 위의 고성(古城)뿐
소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무너졌다

두브로브니크발 코토르행 막차를 기다리는 소녀
서툰 영어로는 흥정이 쉽지 않고
엄마의 울음 곁으로 아버지의 술병이 뒹굴었다

폐허를 덮은 폐허
우리는 모두 폐허에서 왔다.

* 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정치가. 크로아티아 공산당 지방위원과 당 서기장을 지냈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서 인민해방군 총사령관과 해방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이후 몬테네그로를 포함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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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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