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제 갈 길로 가기 마련

'국정교과서'로 역사와 교육을 함부로 농단하지 말라

등록 2015.11.09 10:46수정 2015.11.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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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국정화'는 두 측면에서 엄청난 반역이다. 무엇이 그 반역인가? 하나는 역사의 반역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의 반역이다. 역사에 통설(通說)은 있으나, 정설(定說)은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한국사를 국가통치 기준으로 표준화-즉, 정설화-하겠단다.

민주사회에서 어찌 이런 발상이 국가정책으로 버젓이 공표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땅에 민주시민이 과연 실존하는가? 자유민주주의가 살아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역사는 역사로 하여금 말하게 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살아난다.

게다가 '교과서정책'으로서의 '국정화'는 정책의 ABC에 어긋나는 반역이다. 교과서정책 기조는 국정화에서 검인정으로, 검인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나아가는 게 원칙이자 제 갈 길이다.

지금 우리는 검인정제인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하면 자유발행제로 바꿀 건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교사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교과서를 골라서 채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역사도 살고 교육도 산다. 이참에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카드로 역사도 잡고 교육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부당이다. 두 마리 토끼 다 놓치기 십상이다.

지금 정부가 하는 형국으로 봐서 어떤 무리수를 감수하고라도 국정화는 계획대로 밀어 붙일 게 뻔하다. 그간의 좌파종북 몰이에서 손해 본 게 없다는 전략적 계산이 나름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일 터.

정치는 정(正)이라는 데, 이번 교과서정책은 정책의 이반이자, 교육의 재앙이다. 오늘의 학교교육은 교육이 있어야 할 제자리를 잃어버린 데서 실패와 난맥상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교육은 역사 이래로 고색창연한 전통을 이어왔고, 마침내 근대국가에서 공교육으로 그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나 교육은 국가의 통치도구가 아니다.

교육의 본래 모습은 약 2500년 전 <중용> 첫 구절에서 명쾌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교육은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모든 인간에게 품부된 본래성-즉,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란다. 하여 교육은 우리가 임의로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하늘의 지엄한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본질은 '본성회복' 혹은 '심성함양'에 있다. 여기 '함양'(涵養)은 본래 있던 것을 복원하자는 것이어서, 심성함양은 곧 본성회복이다. 모든 교육은 심성함양 혹은 본성회복에 관여하는 만큼 교육적이다.

노자는 되돌아봄이 도(道)의 움직임이랬다. 과연 교과서 '국정화'가 가야 할 바른 길인가, 나아가 교육본질 복원에 어떤 보탬을 주는가? 엄중히 되물어 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국정화'는 공연히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국론만 분열시킬 뿐, 얻어 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교육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열쇠는 교사의 손에 쥐어져 있다. 

교과서는 물론 모든 교육과정 자료는 교사에 의해 채택되고 구안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바로 선다. 따라서 교과서 국정화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권이 문제다. 행여나 국정화로 교사들 마음까지 '국정화'되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행여나 국정화 빌미로 교사들이 다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이 점이다.

교육부가 국정화 집필 일정을 확정 고시하자, 역사학계에서 그에 대응한 '대안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온당하다. 그리고 교육감 가운데 '보조교재' 개발을 제의한 것 역시 시의적절하다. 사실 문서로 확정된 교과서-더욱이나 그것이 국정인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는 어찌 보면 '죽은' 문서나 다름없다.

왜 그런가? 원칙적으로 살아 있는 교과서는 오직 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일 뿐이다. 단 여기에 엄중한 전제가 따라 붙는다. 교사 자신이 교과의 화신으로 서고자 해야 한다. 즉, 교사의 삶은 교과적 삶이고, 교과가 자신의 몸속에 내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수준에서 완벽한 교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게 교사의 운명이다. 교사가 교과적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교육과정 자료가 다양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자료를 교사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죽은 교과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교육과정 자료를 매개로 교사의 열정과 마음이 함께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이것을 교육학(교육과정론)에서는 '간접전달'이라고 한다. 이 간접전달이 마침내 학생들의 마음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교육이 심성함양 혹은 본성회복에 직접관여하게 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이때가 교육이 제자리를 찾는 때다.

교과서 국정화가 학생들 점수관리에는 다소간 지침이 될지언정 마음관리와는 무관하다. 누구든지 정치적 의도로 교육을 함부로 농단하지 말라. 교육은 지엄한 하늘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제 갈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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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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