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 광부 살린 청년 노무사, 그의 성공 비결

강원도 태백으로 하방한 김정현씨, 꿈은 '직업병 전문노무사'

등록 2015.11.12 08:06수정 2016.01.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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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대조봉 산기슭에 위치한 산업전사 위령탑에 있는 광부 작업 모습. ⓒ 조호진


"방진 마스크? 그런 거 없었어요. 그냥 수건으로 입을 동여매고 일했습니다. 갱내(광산) 사고로 동료들이 많이 죽었고, 죽은 동료들을 광차(캐낸 광석을 운반하는 화차)에 실어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난 막장은 아비규환,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나도 몇 번이나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뻔했습니다."

1968년 장성광업소에서 광부생활을 시작한 김길선(77, 강원도 태백시)씨는 굴진·채탄·운반 등을 하다 1996년 정년퇴직했다. 김씨는 막장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천운으로 막장에서 겨우 살아 나왔는데 이번엔 직업병이 목숨을 조였다고 했다.

"정부와 광업소는 탄만 캐라고 했어요. 탄을 많이 캐는 게 애국이라고 했어요. 30년가량 갱내에서 죽기 살기로 탄을 캤어요. 그러다 진폐증에 걸려 고통을 겪었는데 정부는 치료도 보상도 해주지 않았어요. 죽을 수는 없으니 내 돈으로 약 사 먹었습니다. 참 너무하더라고요."

산재보험은 산재 근로자 보호의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정부가 알아서 보호해 준 적은 별로 없다. 김씨는 몇십 년을 진폐증에 시달렸지만 정부 당국은 외면했다. 김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서울에서 태백으로 온 청년 노무사였다.

"근로복지공단에 고통을 호소하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알아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러다 고마운 노무사 양반이 도와줘서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됐어요. 진폐 환자에겐 불쌍하다고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것보다 진폐증 인정받고 연금 받게 해주는 게 더 고마운 일입니다(울먹이며)."

김씨는 지난해 7월 '폐쇄성폐질환 3급 4호' 판정을 받으면서 산재연금(월 160만 원)을 받게 됐다. 김씨가 "고마운 노무사 양반"이라고 표현한 김정현(37) 공인노무사의 도움으로.

태백 하방한 청년 노무사, 20년 만에 문 연 노무사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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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증 환자로 승인 받은 김길선(77, 왼쪽)씨는 김정현(오른쪽) 노무사를 '고마운 양반'이라고 부른다. ⓒ 조호진


서울이 고향인 김정현 노무사는 태백으로 하방(下枋)했다. 동기 노무사들이 서울에서 무한경쟁에 시달릴 때 그는 모두 외면한 곳으로 향했다. 개간만 잘하면 황무지는 옥토가 된다.

2010년 공인노무사가 된 그는 2013년 1월에 강원도 태백에 사무실을 열었다. 첩첩산중인 강원도 태백으로 향한 건 노무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광산지역에서 폐광지역으로 바뀐 태백, 삼척, 영월, 정선 등에는 진폐증 환자가 많았지만 도와줄 노무사는 한 명도 없었다. 20년 전에 어떤 노무사가 사무실을 열었다가 1년 만에 문을 닫고 떠났다는 전언은 청년 노무사를 움츠리게 할 만했다.

20년 만에 생긴 공인노무사 사무실에 진폐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산재 승인을 둘러싼 진폐증 광부와 정부의 매우 불평등한 싸움판에 끼어든 김 노무사는 광부 편이 되기 위해 전문성을 키웠다. 실력이 없으면 약자를 대변할 수 없다. 정부(근로복지공단)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병의 원인과 직업의 인과관계 입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적인 판단과 산재보험 등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공인노무사에겐 전문성과 직업 정신이 필요하다. 김 노무사는 여기다 약자에 대해 헌신을 더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김 노무사도 20년 전의 어떤 노무사처럼 사무실 문을 닫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거의 떠나면서 늙고 병든 광부들의 도시가 된 태백에서 김 노무사는 진폐 환자와 단체들에 귀한 청년이다.

몇십 년 만에 진폐증 승인을 받은 김길선씨의 눈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억울함이 해소된 것과 김 노무사에 대한 고마움이다. 김 노무사가 태백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폐증의 고통과 억울함을 여태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진폐 합병증으로 사망한 김아무개(72)씨 유족에겐 사망 원인에 결핵이 작용한 점을 밝혀내면서 유족보상을 받게 해주었다.

윤아무개(74)씨의 유족보상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윤씨는 1년 여의 싸움 끝에 2013년 7월 산재 승인(만성폐쇄성폐질환 3급)을 받았으나 지난 3월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연금 지급이 중단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족에겐 가장을 잃은 아픔 만큼이나 연금 중단이 고통스럽다. 흡연 경력과 연관성이 있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유족연금 승인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싸움이다.

김 노무사는 지난 10일 기자에게 "광산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광부아버지들은 치료비로 가산을 날리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유족연금을 받지 못하면 살길이 막막한 유족들이 많은데 윤씨 유족도 형편이 어렵다. 유족보상이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뢰인 검진비용과 숙박비 부담, 위험한 방식이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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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으로 하방한 김정현 노무사. ⓒ 조호진


광부들은 질지도 모르는 산재 싸움이 두렵다. 권리를 찾으려 뛰어들었다 지면 되레 빚지기 때문이다. 김 노무사는 그래서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 산재 상담과 사건을 진행한다. 그뿐 아니다. 산재 성패는 검진에 달려 있다. 의뢰인을 데리고 서울 등지의 큰 병원으로 검진 가면 발생하는 검진비용과 교통비·숙박비·식비 등의 일체 비용도 김 노무사가 대신 부담한다. 산재 승인이 되면 성공 보수를 받지만 실패하면 각종 비용은 김 노무사가 떠안는다.

"주변에선 위험부담이 큰 방식이라고 만류했지만 저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건을 수임하면 보통 1년가량 걸리는데 거기에 대한 시간과 인적, 물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돈 한 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각종 비용까지 댔는데 승인에 실패하면 적지 않은 손해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를 압박하며 최선을 다했더니 성공률이 높아졌습니다.

승인이 안 되면 광부아버지들이 미안해하지만, 오히려 제가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최근에 진행한 유족연금 사건에서 진폐증이 사망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치의의 소견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폐지수집으로 지체장애 1급인 아들과 어렵게 살아가는데, 유족연금이 지급됐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광부아버지 편에 선 김 노무사는 이렇게 호소했다.

"10년~20년쯤 지나면 광부아버지들은 이 세상에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광부아버지들은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광부아버지를 조명하고 재평가하면서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가난한 이 나라를 위해 너무 수고한 애국자이기 때문입니다."

김 노무사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직업병 전문 노무사가 되고 싶습니다. 광부아버지에 대한 도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조선소와 화학 공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공인노무사의 도움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김 노무사의 아내(김은경)도 노무사다. 남편과 함께 강원도 사람이 됐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지난 7월 김 노무사를 '강원도 노동법률 자문노무사'로 위촉했다. 김 노무사는 또한 (사)전국진폐 재해자협회, (사)한국 진폐 재해자협회, (사)광산진폐 권익연대, (사)대한진폐재해자 보호협회 등 4개 진폐 단체 자문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방을 선택한 김정현 노무사는 광부아버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수고한 만큼의 수익도 거두고 있다. 그의 성공은 편안한 곳이 아닌 힘든 곳,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거두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다. 청년의 신음이 진동하는 시대에 하방한 청년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진폐증 #공인노무사 #태백 #광부 #김정현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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