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는 스펙이야"라고 말하는 중2

김한수의 청소년 소설 <너 지금 어디가?>

등록 2015.12.04 12:00수정 2015.12.04 12:00
0
원고료로 응원
녀석은 오늘도 1교시가 끝난 후에 어슬렁어슬렁 기어왔다. 작은 키의 교복 위에 검은 잠바를 걸치고 와선 교실 문이 잠겨 있으면 복도 창문을 훌쩍 뛰어넘어 교실로 들어간다. 대부분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는데 이 녀석은 바지를 입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1교시 후 등교를 하면서도 녀석은 늘 큰 소리다.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일어나고 싶어도 못 일어나는데 어쩌란 말이냐. 비 오면 자전거를 못타는데 어쩌란 말이냐. 버스 타는 데까지 집에서 30분 걸리는데 어쩌란 말이냐. 한 마디로 배 째라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수업시간이면 늘 잠만 잔다. 그렇게 늦게 오고 잠만 자는 녀석들. 그런 녀석들을 보며 아이들은 나를 탓한다. 어떻게 좀 해보라고. 가끔은 저희들끼리 고성을 오가며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 3분 정도 되면 우스운 상황이 연출돼 모두가 웃어버린다.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학교는 천차만별의 아이들의 집합소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속상해 하는 아이와 대충 하는 것 같아도 성적이 좋은 아이, 공부와는 담 쌓고 즐겁게 살자는 아이.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말썽이라도 피워 교사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아이.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살면서도 늘 밝고 씩씩하게 생활하는 아이와 어두운 그림자를 얼굴에 달고 사는 아이.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 아빠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아이. 공부를 잘해도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와 공부를 못해도 항상 다른 친구들을 챙기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학교는 숨 막히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회자된다. 학교 폭력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왕따 은따가 늘 있는 공간. 그 속에서 상처 받아 목숨까지 끊는 친구들. 그런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고 성장시켜야 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고 배워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하면서도 습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은 부딪히고 다투다 울고 웃으며 한 뼘씩 성장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a

김한수 장편소설 <너 지금 어디가?> ⓒ 창비

김한수의 소설 <너 지금 어디가?>는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일산 중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의 일환으로 텃밭 농사를 지으며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의 고민들을 들어주었다. 고민거리엔 왕따도 있었고 이성 문제도 있었다. 성적 때문에 고민덩어리를 한 움큼 털어놓은 아이도 있었고, 부모 없이 가슴앓이를 하며 의욕 없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고민들을 들으며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놓은 게 <너 지금 어디가?>이다.


학교를 중심으로 한 청소년 소설의 특징을 보면 이기적인 공부 잘 하는 학생과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원만한 성격을 가진 친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 아이들에게 왕따나 은따를 당하는 친구와 그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꼭 등장한다. '너 지금 어디가?'도 그런 유형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전교 1등은 도맡아 하지만 공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이기적인 지욱이.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지만 아빠의 텃밭 농사를 울며겨자 먹기로 도와주다 자신의 진로를 어렴풋이 찾아가는 아주 평범한 건우. 부모 없이 병든 할머니와 둘이 살면서 또한 학교의 주먹 짱인 정태.

아이들에게 은근히 따를 당하며 어깨 푹 처진 채 생활하는 민식. 부모 없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약간의 허세를 부리는 대풍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이다. 소설은 이런 아이들이 텃밭 동아리를 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특별한 과장 없이 그러면서도 밝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몸은 용수철마냥 어디론가 튀어오르려 한다.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얽힌 실태라 같다. 중 3이면 어느 정도 또래에서 어른 흉내라도 내는데 중 2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스펙을 생각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이면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기도 하고, 떡볶이를 먹으며 친구들과 아무 걱정 없이 수다를 떠는 나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성공을 위해 스펙을 입에 담는다. 대부분 공부만 아는 아이들이 모습에서 나타난다. 이들에겐 친구란 필요로 할 때 부르는 택시와 같다. 성공하면 친구는 저절로 생긴다고 말한다.

"솔직히 성공해서 잘 먹고 잘살려고 공부하는 거잖아. 난 맘만 먹으면 스카이쯤 어려울 것도 없어. 얼마든지 자신 있어.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 학교에서 1등 하는 거 난 관심도 없어. 여기 애들은 내 경쟁 상대가 아니거든. 막말로 너희랑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나한텐 쪽팔린 일이야. 아마 엄마가 날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난 착실하게 외고 갈 준비를 했을 거야. 근데 엄마가 날 못 믿고 강요를 하니까 일이 꼬여 버린 거야. 난 지금도 엄마가 간섭만 하지 않으면 최고의 스펙을 쌓을 자신이 있어. 난 너희들하고 다르잖아. 그래서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 거야."

엄마의 간섭이 싫어 유학을 간다는 지욱이. 공부 잘하고 부잣집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닐 터이지만 하루하루가 삶인 정태나 대풍이 같은 아이들이 들으면 화딱지가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술 더 떠서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는 친구도 아니다. 그저 잠시 한 공간에서 얼굴 마주치고 숨만 잠시 쉬는 사이일 뿐이다.

"야, 학교가 꼭 성공하기 위해서 다니는 건 아니잖아?"
"아니면?"
"친구들도 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도 있잖아."
"친구? 웃기고 있네. 너도 정신 차려, 인마. 내가 충고하는데 정태 같은 애들하고 어울려 다녀 봐야 루저밖에 안 돼. 진짜 친구는 그런 놈들이 아니라 스펙이야.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나중에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스펙이 최고라는 지욱이의 말은 어쩌면 지욱이의 말이 아닐 수 있다. 어른들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고 반복한 말.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은 그 스펙의 올가미에 걸려 살아간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데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그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요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길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너 지금 어디가?>는 중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너 지금 어디 가?

김한수 지음,
창비, 2013


#김한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