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댓글, 세상을 뒤흔들다

[서평] 장강명 새 소설 <댓글부대>

등록 2015.12.07 15:12수정 2015.12.0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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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축소·은폐 정황'
'대선개입 댓글 의혹 사건의 핵심인물인 여직원 김모씨의 변호사 비용을 국정원이 자체 예산으로 부담'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댓글 작업에 동원된 민간인 이모씨(42) 계좌로 국정원 자금 4900여만 원 입금'

3년 전,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선 안 될 큰 사건이 터졌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선거에, 그것도 한 나라의 안위를 책임질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윗글은 당시 일간지에 나온 기사의 소제목들이다.


국정원 개입의 뿌리는 깊고도 넓었다. 국정원 직원 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동원해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고 상식으로 맞설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 인터넷이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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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겉표지. ⓒ 은행나무

총칼로 목숨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고작 기사나 게시판글 아래에 달린 질 낮은 댓글이 무어 그리 대단한 힘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장강명은 그의 새 소설 <댓글부대>(은행나무)를 통해, 단 세 사람이 오로지 댓글만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모습을 눈앞에 생생히 펼쳐 보인다.

'삼궁', '찻탓캇', '01査10'이란 별칭을 쓰는 세 사람은 '팀-알렙'의 팀원이다. 개인병원이나 의류쇼핑몰 등 소규모 업체를 상대로 온라인마케팅을 해주는 작은 업체에 불과했던 이 팀은 인터넷 환경이 변함에 따라 빠르고도 자연스러운 변신을 한다.

실시간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가짜 구매후기나 가짜 20자평을 올리는 일은 그나마 '양심적인' 수준에 속한다. 이들은 의뢰인이 원하는 상대방을 마구 깎아내리는 청부 사이버 공격, 이른바 '저격'을 시작한다.

처음에 팀-알렙 팀원들은 이런 의뢰를 받아 일을 할 때 먼저 저격 대상을 연구했다. 성격이 어떻고 뭘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지, 주변 평가는 어떤지 등. 그런데 그런 조사는 별 필요가 없는 것으로 곧 밝혀졌다. 뭐든 사소한 트집을 잡으면 그만이었고, 대게 외모를 문제 삼으면 되었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그들은 아예 근거 없는 중상모략도 꽤나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군대 있을 때 그렇게 후임병을 두들겨 팼다더라, 완전 이중인격자다'라든가 '한때 강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나이트 죽순이'라는 식의, 확인하기 어려운 모함이 잘 먹혔다. 삼궁과 찻탓캇이 그런 주장을 올리면, 01査10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라는 취지의 댓글을 대량으로 달았다.' (본문 9-10쪽)

정치인도 이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상대 후보 비방이다. 건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서서히 '비방계'에서 이들의 이름이 알려져, 급기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xx전자의 의뢰까지 받게 된다.

팀-알렙은 xx전자 직원들에게 발병한, 백혈병 사건을 다룬 영화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들에게 국정원 직원이 포함된 '합포회'가 접근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합포회의 요구는 진보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무력화하라는 것. 그 사이트들이 민주주의를 '해치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본문 57쪽)

소설은 팀-알렙의 팀원 중 한 사람이 신문 기자에게 일련의 사건을 제보한 녹취록과 이들의 일상이 엇갈리며 전개된다. 오로지 댓글만으로 목적과 욕망을 실현시켜가는 이들의 숨 가쁜 행동력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심장까지 쿵쾅거리게 한다.

누구라도 금방 실명을 떠올릴 만한 고유명사가 대거 등장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소설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게다가 작가는 소설가로 나서기 전 <동아일보>에서 11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이력이 있다. 일반인이라면 알지 못할 무언가를 소설을 통해 폭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충분히 할 만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일까? 책 맨 뒤에는 '출처에 대하여'라는 글이 따로 실려 있다. '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작가는 '익숙한 이름들을 섞어 그럴듯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글에는 소설의 전체 모티브가 2012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 사건이라는 점, 소설 초반 팀-알렙이 벌이는 상품 홍보 작업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에서 착안했다는 점, 그리고 팀-알렙이 진보 성향 게시판 파괴 공작을 벌인 내용에선 실제 모델이 된 커뮤니티와 모티브가 된 상황·사건이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책에서 각종 전략을 펼쳐내는 인물인 삼궁은 자신의 전략이 먹히는 것은 '진실의 힘'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인 어떤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거짓이 판을 치고 믿을 게 없다며 냉소하던 독자는 '진실' 운운하는 이 대목에서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 든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 그 둘을 가르는 잣대가 존재하긴 할까? 소설은 맨 마지막까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은 독자는 알 수 있다. 허구임을 밝힌(밝힐 것도 없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소설은 허구다!) 이 소설이,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2015


#댓글부대 #장강명 #국정원 대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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