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 카페의 추로스, 이게 1인분?

[빅풋 부부의 스페인 일주 8] 그라나다 (Granada) 1

등록 2015.12.15 11:51수정 2015.12.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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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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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잘 살 수 있는 곳.'


스페인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긴다면 가장 가고 싶은 지역으로 안달루시아를 꼽으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여를 머무른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음부터 풍요로워지는 땅,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Granada)로 이동했습니다.

그라나다하면 스페인에 남아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인 '알함브라 궁전'을 먼저 떠올리게 될 테죠.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점심 때가 넘어서야 그라나다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는 일정은 내일로 미루고 그라나다의 기독교 유산을 먼저 찾아 나섰습니다.

그라나다는 8세기 이후 781년에 걸쳐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번영의 절정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 경제와 문화, 예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그라나다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는데요, 때문에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아니어도 도시의 구석구석 이슬람 지배의 흔적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그라나다 여행은 1492년 이후 그라나다를 지배한 기독교의 흔적에서 시작합니다.

그라나다 최대의 기독교 건축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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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대성당 1523년부터 1703년까지 180여 년에 걸쳐 완성된 그라나다 최대의 그리스도교 건축물이다. ⓒ 박성경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그라나다 대성당은 원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1523년부터 1703년까지 무려 180년에 걸쳐 완성된 그라나다 최대의 기독교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대성당의 그런 명성에 비해 여행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입구는 참 초라하다 할 정도였어요. 건물 구석에 있어 찾기도 힘들었고요. 아무래도 입장료를 받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 같았는데, 교회라는 곳이 세상 누구를 향해서라도 활짝 열려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성당 신자들에겐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여행자가 입장료를 내야 하면 내는 것이 맞겠지만, 그 작고 초라한 입구가 '돈을 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상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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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대성당 내부 20개의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황금빛 내부 장식이 특징적이다. ⓒ 박성경


스페인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에 속한다는 내부 예배당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황금빛 장식으로 빛납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의 대성당들에 비해서 내부가 훨씬 밝고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20개나 되는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의 하얀 대리석 마저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네요.

황금빛 주제단 양쪽으로는 그라나다의 기독교 유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톨릭 부부왕'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단 오른쪽에는 이사벨 여왕, 왼쪽에는 남편 페르난도 공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이었던 그라나다를 탈환해 스페인의 전 국토를 가톨릭 국가로 만드는 이른바 '국토회복운동'을 마무리한 인물들입니다. 그 덕분에 1496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부터 '가톨릭 부부왕(Los Reyes Católicos)'이라는 칭호를 받게 됐고요.

그래서 가톨릭 부부왕의 유해가 묻힌 왕실 예배당은 대성상의 일부이긴 하지만, 대성당 보다 역사적 가치가 훨씬 높다고 합니다. 건물 자체도 스페인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힐 만큼 가치가 높다고 하네요.

'가톨릭 부부왕'의 무덤, 왕실 예배당

사실 스페인 왕들의 유해는 모두 마드리드 서북쪽에 있는 '에스코리알 궁전(Real Palacio del Escorial)'의 지하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의 왕을 비롯해 앞으로의 스페인 왕들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두 에스코리알 궁전에 묻힐 테고요.

그런데 그라나다를 정말 사랑했던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에 묻히길 희망해, 1504년부터 이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예배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516년 사망하고 말았는데요, 그녀의 외손자인 카를 5세에 의해 완성이 됐습니다. 가톨릭 부부왕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된 것은 이사벨 여왕이 사망한 5년 뒤인 1521년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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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예배당 지하 '가톨릭 부부 왕'의 무덤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 지하에는 스페인 황금시대를 이룩한 이사벨 여왕과 그의 남편 페르난도 공의 무덤이 있다. ⓒ 박성경


왕실 예배당 중앙에 화려하게 조각된 대리석 묘는 일종의 '가짜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해가 없이 멋지게 조각된 빈 석관입니다. 진짜 '가톨릭 부부왕'은 그 석관 옆 계단을 내려가면 있는 작은 지하 공간에 잠들어 있습니다. 예배당 중앙의 크고 화려란 대리석 묘와 달리 작고 오래된 부부왕의 진짜 관을 보니, '왕이건 평민이건 사람이 죽을 때 필요한 건 딱 저 만큼의 공간이구나'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라나다가 가톨릭 진영의 입장에선 국토회복의 숙원을 이룬 곳으로, 781년간 영화를 누리던 이슬람 진영에겐 슬픈 역사를 남기고 내몰린 곳이 되게 한 부부. 어떤 의미로든 세계사에 길이 남고 남을, 두 사람의 누운 자리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을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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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여왕의 왕관 왕실 예배당 전시실에는 이사벨 여왕의 왕관과 페르난도의 칼, 군기 등이 전시돼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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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예배당 내부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 내부에는 이사벨 여왕의 소장품인 플랑드르 거장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돼 있다. ⓒ 박성경


왕실 예배당에 속해있는 보물관에는 이사벨 여왕의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사벨 여왕의 왕관과 페르난도의 칼과 군기 등은 보물 중에서도 보물로 손꼽히며, 여왕이 수집했던 보우츠와 한스 멤링 등 플랑드르 거장들의 작품 역시 꼭 봐야 할 보물들입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지만, 이사벨 여왕의 무덤과 그가 남긴 보물들은 참 많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승에서의 영광에 대해서도, 지금도 전 세계를 휘감고 있는 서로 다른 종교들의 갈등과 침략에 대해서도요.

전형적인 아랍 시장, 알카이세리아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는 두 사람이 오고 가려면 어깨가 스칠 듯한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엮여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1843년에 화재로 타버린 아랍인들의 시장이 복원돼 있는데요, 바로 알카이세리아(Alcaiceria)입니다.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엔 비단 시장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그라나다의 공예시장이 됐습니다.

여전히 아랍의 건축이나 문양들이 살아있는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는 자체 공방에서 제작하는 수공예품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예쁜 아랍식 슬리퍼와 현란한 귀금속과 유리제품, 독특한 엽서들과 갖가지 그라나다 기념품들까지. 가게마다 특징있는 물건들을 둘러보고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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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이세리아 (Alcaiceria) 이슬람 시대 때 비단 시장이었던 곳으로, 오늘날엔 공예시장이 되었다. ⓒ 박성경


그런데 오래된 아랍 시장에서 색다른 물건들만 만난 건 아니었어요. 정말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스페인 여행 첫 날,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바르셀로나의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Museu Frederic Mares)'에서 유일하게 본 관람객이자 한국인이었던 언니를 다시 만난 겁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여행을 왔다는 대학생 여행자도 함께 만났습니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지(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다음날 알함브라 궁전에서 다시 만났고 이후 그라나다 일정을 함께했다), 다함께 쿵짝이 맞아 그라나다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오래된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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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 Cafe Bib-Rambla 추로스 전문점 1907년에 오픈했다는 그라나다의 유명만 추로스 전문점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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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통 추로스와 초코라떼 100년 전통의 가게에서 맛본 추로스와 초코라떼는 환상 궁합이었다. ⓒ 박성경


비브 람블라 광장에 자리한 '그랑 카페 비브 람블라(Gran Cafe Bib-Rambla)'는 1907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디저트 카페입니다. 무려 100년이 넘은 이 가게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는 스페인 정통 추로스(Churros)와 초코라떼(Chocolate)랍니다.

따끈따끈하게 갓 튀겨져 나온 추로스는 고소하고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처럼 설탕이나 시나몬 가루를 뿌려 먹는 게 아니라 밋밋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입맛에는 잘 맛더라고요.

게다가 1인분을 시켰는데 4명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의 양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번 헤로나 여행에서 검지손가락 만한 추로스 4조각이 1인분이었던 것과는 딴판이었던 거지요. 제대로 설욕을 했다고 할까요. 초코라떼도 너무 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달콤함 보다는 고소함 따뜻함이 더 먼져 느껴져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모든 걸 우리와 똑같이 길에 선 여행자들과 함께 나눴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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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가톨릭 부부 왕 #그라나다 대성당 #왕실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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