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사진작가, 제주도에서 국화빵 굽는 이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의 이야기] "국화빵 장사는 사진계를 향한 작은 데모"

등록 2015.12.18 14:37수정 2019.10.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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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일본에서는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권철씨가 20년에 걸친 일본 생활을 접고 작년 귀국 후 제주도에서 가족과 함께 둥지를 틀었다. 

권철씨는 귀국 후 첫 국내 작업으로 제주 이호테우 해변과 해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내고 오월 관련 사진전 <이호테우>를 열었다. 지난 8월엔 관덕정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전을 열 계획이었으나 도내 언론사의 오보와 시민단체의 오해에 기인해 제주시에 의해 사진전 허가가 취소되었다가, 제주시장이 공식 사과하는 촌극이 있었다. (관련 기사: 제주시, 야스쿠니 망령 사진전 취소 "잘못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두 얼굴, 가소롭다 )

권씨가 얼마 전부터 생활을 위해 시작한 일은 국화빵 트럭 장사다. 국화빵 장사에 한창이던 권씨를 만나 제주살이 이야기를 들었다.

"너 바보냐" 소리 들었지만 한국으로 와
 

손님에게 국화빵을 건네는 권철 작가 ⓒ 이길훈


-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된 배경은 무엇인지.
"2005~2007년, 일본에서 나는 보도사진가로 전성기를 누렸다. 수입도 좋았고 일본에서 그 분야의 1, 2위를 다툴 만큼 잘나갔다. 그러다가 중국 사천성 대지진 때 청도에서 두 다리가 잘린 아이 취재를 계기로 보도사진을 접었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을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보도사진과 달리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림이 예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 가부키초(도쿄의 환락가) 취재를 오래 했다고 알고 있다. 일본에서는 잘 알려진 다큐 사진가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는지?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때 아이가 백일이었다. 아이와 아내를 한국으로 대피시키고 나는 다시 후쿠시마로 가 취재를 계속했다. 보도사진을 하다가 2008년부터는 다큐 사진만 하다 보니 수입이 없었다. 아내와 상의해 일본 20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귀국 전 사진집 <가부키초>,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 자서전 <가부키초 스나이퍼>까지 3권의 책을 같이 준비했다. 2012년 사진집 <가부키초> 출판 후 2013년 고단샤 상을 받았다. 주변에선 한국을 가지 말라고 말렸다. 고단샤 상을 받았고 일본에서 잘 나갈 수 있는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너 바보냐'라고 말했다. 결심한 거니까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본의 삶이 제2의 인생이었다면 제3 인생은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도전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별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귀국하기로 했다."

국화빵 장사, 사진계를 향한 작은 데모


- 일본을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것 같은데, 다시 제주로 온 이유는 무엇인지.
"작년 4월 제주로 와서는 사진을 안 하려고 카메라를 손에 안 쥐고 다녔다. 그러다 여름에 이호테우를 보고 작업을 안 할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가 <야스쿠니>와 <이호테우> 책을 낼 준비를 했다. 석 달 동안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야스쿠니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서울에 살 이유가 없었다. 죽을 때까지 소록도를 작업할 건데, 녹동항 바로 앞에 있는 소록도로 오가기 제일 좋은 곳이 제주이지 않나. 애 키우기도 좋고. 서울 가보니까 나라만 썩은 게 아니라 사람도 다 썩었다. 있을 이유가 없더라. 다큐 사진 테마는 계속 끌고 갈거다. 그래서 국화빵 장사를 하는 것이다. 한국을 바꾸고 싶다는 욕심은 조금 접었다. 한계를 느꼈다. 조금씩 조금씩 접어야 하는 것 같다."

- 제주에 살아보니 어떤가. 계속 제주에서 살 생각인가.
"귀국 2년, 제주살이 1년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20년을 살았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다. 일본은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이 한국보다 훨씬 덜하다. 월세 산다고 서럽지 않다. 주인에게 비굴하게 될 일이 없다. 한국은 그렇지 않더라. 그런 차이가 깜짝 놀라게 한다. 애가 없으면 다시 일본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지지 못한 자로서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에서 제3의 인생을 살려고 한다.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간 너무 바빠서 자연과의 대화도 못하고 오로지 일만 했다. 20년 동안 정말 사진만 찍었다. 쉬고 싶은 마음, 가정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가족 부양이 우선이다. 국화빵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 제주로 온 뒤에 상업사진에 대한 제의도 있었다.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는 말이다. 아내가 돈 없는 남편도 괜찮다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힘을 줬다."

- 국화빵 장사는 어떤가.
"국화빵 장사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진계에 향한 작은 '데모'라고 생각한다. 사진작가의 권위의식을 깨고 싶다. 다큐 작가는 최소한 고개를 낮추고 을의 입장에서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들한테도 떳떳한 아빠다. 기생충처럼 남에게 빌붙어 살며 돈을 벌거나 썩은 정치인들처럼 살며 호의호식하면 뭐하겠나.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 트럭 장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거리전시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젤을 가지고 다니며 세워놓고 사진 전시를 할 수 있다. 서민들과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나. 시설이 훌륭하고 좋은 갤러리가 아니지만 본질적이고 서민적인 전시공간이다. 내 사진 테마 자체가 서민과 약자이기도 하고." 

- 지난번 '관덕정 전시회 취소'라는 촌극이 어찌 보면 권철이라는 작가가 제주에 알려지는 데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된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에서 난 유명한 사진가였다. 큰 상도 받았고. 제주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같은 것 없다."

"돈이 안 되지만 힘든 일, 1%의 일을 할 것이다"  

제주시청의 오해로 인한 전시허가 취소로 인해 관덕정안에서 전시회를 열지 못하고 관덕정 앞에서 전시를 강행했다. ⓒ 이길훈


- 이호테우에서의 야스쿠니 전시회 이후 사진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계속 이러한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 있는가. 
"퍼포먼스를 통해 야스쿠니의 '발톱'을 알리고 국민의식을 깨우고 싶었다. 계속하고 싶은데 당장은 여력이 없다. 우선 생활을 좀 하며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국화빵 장사를 열심히 할 것이다. 또 시간을 내서 계속 기록해나가는 다큐 사진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제주에서 제3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항상 부딪치며 살아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나 자신도 기대가 된다. 제주는 세계적인 관광지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나. 사진이라는 도구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갤러리를 제주에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진정성 있는 다큐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국제적 교류도 할 수 있는 비엔날레 같은 형식의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 또한 그런 것을 함께 하는 사진집단을 만들고 싶다."

- 이호테우 외에 제주도를 대상으로 하는 다른 테마가 있나?
"개발, 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기득권자들이 약자를 이용해서 자연을 훼손하고 투기하는 것이다. 이호테우 할머니, 마을 주민들은 피해자다. 그들은 뒤늦게 삶의 터전을 투기 자본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을 사람들은 당할 뿐이다. 거기에 대한 사진 기록으로 이 일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것이 저널리스트이고 다큐 사진이다. 제주 전체의 자본으로 인한 피해를, 제주도의 아픔을 계속 기록할 것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찍는 일은 많은 작가들이 하지 않나. 돈이 되니까. 돈이 안 되지만 힘든 일, 1%의 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다. "
 
권철 사진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1967년 한국에서 태어나 199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전문학교에서 보도사진가인 히구치 겐지로부터 사진을 사사받았다. 1999년에 한센병 회복자를 소재로 한 사진기사로 잡지 데뷔. 흥미진진한 밤거리인 신주쿠 가부키초(新宿 歌舞伎町)에 매료되어 촬영을 계속해 왔다. <가부키초>(후쇼샤, 2013, 한국어판 눈빛, 2014)로 제44회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가부키초의 고코로짱>(고단샤),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눈빛, 2014)와 자전적 포토스토리 <가부키초 스나이퍼>(寶島社, 2014),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컬쳐북스, 2015), <이호테우>(눈빛, 2015)가 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권철 #야스쿠니 신사 #다큐멘터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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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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