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말대로 노동개혁 하면 '사랑' 가능?

[청와대 일기 32] '나쁜 일자리' 양산 우려 외면한 '노동개악' 드라이브

등록 2015.12.11 08:43수정 2015.12.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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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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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청와대에서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이 문제(청년실업)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박 대통령은 "만혼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만혼화 현상은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또 "소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문제는 나라의 미래와 후손들과 젊은이들을 위해서 우리 기성세대와 우리 국민들이 함께 풀어 나가야만 할 어려운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근래 이토록 시적인 표현을 쓴 적 있는가 싶더군요. 그만큼 박 대통령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으로 국회를 압박했습니다.

지난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는 노동개혁·경제활성화 관련법과 한중FTA 비준안 처리를 두고 "모든 것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국회에서 모든 법안을 정체 상태로 두는 것은 그동안 말로만 민생을 부르짖은 것이고 국민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앞으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같은 날 "잘못된 역사를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지난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는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그러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거는 말이 안 된다"라면서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국회를 질타했죠.

지난 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서는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라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는 손도 못 대고 계속 걱정만 하는데 그래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나"라고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에 비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란 대통령의 말은 정말 서정적입니다.

비정규직 2년 더 연장하면 '쪼개기 계약' 근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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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들고 거리나온 민주노총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노동개악 법안 저지-폭력정권-공안탄압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박 대통령 말대로 '노동개혁 5법'이 통과하면 젊은이들 가슴에 사랑이 차오를 수 있을까요.

박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지금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라며 "부디 여러분과 국민여러분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조금씩 양보해서 아름다운 세대를 만들어가길 바란다"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근로자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며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데 기성세대와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고 해당 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일견, 그럴싸 해보입니다. 임금피크제·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법은 '저성장의 악순환' 속에 빠진 고용시장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노동개혁 5법'은 박 대통령의 말처럼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할 '해법'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 중 무엇보다 노동개혁 5법 중 기간제법 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이 문제입니다.

일단, 기간제법 개정안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기간제 계약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규직 전환 시점을 2년 더 늦추자는 얘기입니다. 새누리당은 고용주가 4년 후에도 해당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4년 치의 퇴직금과 이직수당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에 지금보다 쉽게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이상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할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한 현 기간제법도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미 정규직 전환 직전 해당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쪼개기 계약' 관행은 사회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이 기간제법이 비현실적인 해법이었단 걸 인정한 겁니다. 실제로 박 대통령 취임 후에도 '쪼개기 계약' 관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2년 동안 3개월, 6개월, 2개월, 3개월, 2개월, 3개월, 2개월 등 총 7차례 '쪼개기 계약'을 당해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파견법 개정안은 어떤가요. 55세 이상 고령자와 교사·기자·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등 전문직, 그리고 주조·금형·용접 등 제조업의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자는 내용이 주 골자입니다. 결국, 현행 파견법에 따른 허용 범위를 더욱 넓히자는 내용인데 '나쁜 일자리(비정규직)'이라도 얻을 수 있게 열어놓자는 얘기입니다. 더욱이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 허용은 최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확정된 재벌 대기업의 사내하청을 합법화해준다는 우려마저 사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사랑' 지켜 줄 '좋은 일자리' 보장하는 법 아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봅니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개혁'이 성공하면 과연 젊은이들에게 좋은 걸까요?

기간제 계약기간을 늘리고, 파견 허용 범위도 넓혀서 '나쁜 일자리'만 양산될 뿐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은 고용주(기업)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는 형국입니다. 오히려 그 '좋은 일자리'를 찾다 35세가 넘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삶을 꾸려야 할 가능성만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와 관련,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니까 진짜 풀죽만 써주는 식"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현행) 기간제법을 무력화하는 데 대해서 적극적으로 법을 지키도록 지도하고 조치를 해야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지난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말하자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우리 당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확고한 당론"이라고 말했습니다.

야당뿐입니까. 오죽하면 노사정 대타협 당사자도 나섰습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9일 "정부 여당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노사정 합의 위반이며 반칙이고 배신"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까지 나섰습니다.

박 대통령 말대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차오르려면 지금의 '노동개혁'부터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박근혜 #노동개혁 #기간제법 #파견법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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