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증명' 필요한 로스쿨생, 이 정부 참 악랄하다

[주장] 합리적 토론의 실종, 정부가 만든 잘못된 논의 구도 때문

등록 2015.12.14 15:56수정 2015.12.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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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로스쿨 법무부 규탄대회'에서 참석한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응시표를 불태우고 있다. ⓒ 연합뉴스


1. 나는 지금까지의 로스쿨 운영이 그렇게 훌륭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로스쿨 도입으로 대학 사이의 서열은 오히려 더욱 공고해졌고, 구성원의 학벌은 여전히 편중되어 있다. 합격률 관리의 함정에 빠져 특성화 교육은 말뿐이다. 장학금이 있다고 해도 부족하다. 사실 기본 학비가 너무 비싸다. 애초에 '대학'이라는 행위자들이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다.

2. 그런데도, 나는 예정대로 사법고시(사법시험)를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잘 개선하는 쪽이 사회에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민이기 때문이다.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시작되었다. 사법고시 중심의 기존 제도가 폐쇄적인 법조 시스템을 낳았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대학이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을 법조인으로 육성하도록 하고 교육과정을 마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취지대로 개혁을 이어간다는 전제로 분야마다 전문화된 변호사들이 더 많이 배출되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좋은 변호사'가 흔해진다. 그만큼 법률 서비스의 내용은 더 좋아지는데 오히려 비용은 더 저렴해지면서 시민 누구나 가지는 '법 앞의 권리'가 더 보장될 수 있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말이다. 모든 시민이 법 앞에 진정으로 평등하려면, 변호사를 수임할 수 있는 실질적 권리부터 평등해져야 한다.

한편, 법조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빠지는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 혹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식의 접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법조인의 '특권'과 '특권의식'도 줄어들고 사법고시 출신의 파워엘리트 권력은 약해질 것이다. 법조인이 '전문가' 이상의 특권층이어선 안 된다.

3.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성공신화의 잠재적 주인공으로 삼지 말고, 법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시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사고해야 한다. 언제든 온갖 송사에 휘말려 애를 먹게 되는 보통의 존재 말이다. 어떤 문제가 '법률적인 것'이 되었을 때 누구를 찾게 될 것인가?

로스쿨 학생들 '가난증명' 해야 하는 상황,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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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동아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들이 집단 자퇴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이날 동아대에서는 재학생의 대부분인 228명, 부산대에서도 357명이 자퇴서를 제출했다. ⓒ 동아대로스쿨학생회


4. 안타깝게도 사법고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개천에서 용 나게 한다'는 비유 외에 제대로 된 합리적 논리를 (아직은) 들은 적이 없다. 연수원 출신의 '적통 후배'가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애달픈 기성 법조인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고, 고시생 밀집지역에서 장사하는 상인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기존 고시생들을 위한 '출구'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시민의 변호인'으로 일할 법률가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대해, '사법고시 vs. 로스쿨' 사이의 쟁점에서 토론의 '핵심'에 올 수는 없다.

5. 왜 합리적 토론은 실종되었는가. 노동개혁 추진과정과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도 정부가 논의 구도를 참 이상하게 만들었다. 법무부는 로스쿨생과 사시생 중 누가 더 가난한지를 경쟁하도록 만들고 있다. 정부의 방식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악랄한 것이다.

로스쿨 학생들의 '가난증명'이 이어지는 상황에 나도 함께 비참한 마음이다. 그들의 모습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자신의 곤궁한 경제적 처지를 언론에 공개해야 하는가. 변호사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법고시에 인생을 걸었던 이들이 바친 시간, 노력, 열정, 돈, 그리고 앞으로의 불안정한 미래도 함께 걱정해야 한다. 그들의 모습에도 역시 내가 있으며, 우리가 선택한 것이 '사법고시'가 아니었을 뿐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는 '시험'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혼란에 대해 로스쿨 학생과 사법고시생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 해결해야 한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정준영 시민기자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됐습니다
#로스쿨 #사시존치 #사법고시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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