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리는 하느님'은 어떤 꿈을 꾸었나

[시골에서 만화읽기] 반 토시오,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등록 2015.12.16 11:17수정 2015.12.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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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만화책을 좋아합니다. 어른도 만화책을 좋아하지요. 아이들은 만화책에서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자그마한 아이가 커다란 어른을 한주먹으로 누르기도 하고, 가볍게 뛰었는데 구름을 뚫고 달이나 토성까지 닿기도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는 사이에 몸을 잊으면서 아득한 꿈나라를 누비고, 언제 어디에서나 새랑 노래하고 나비하고 춤추는 기쁜 놀이를 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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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권 겉그림. ⓒ 학산문화사

만화가 아니라면 이러한 꿈이나 놀이나 사랑을 맛볼 수 없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사회에서는 꿈도 놀이도 사랑도 뒤로 처지거나 짓눌리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성장이나 개발만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없애지 않으려는 어른이 너무 많은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거나 신나게 꿈꾸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학위논문을 위해 우렁이 정자의 스케치 등을 그렸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나라 의과대학 연구실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1961년 1월 29일에 학위를 땁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의학박사가 된 것입니다. (11쪽)

"테즈카 선생님은 드디어 애니메이션을 시작하셨구나." "선생님의 꿈이었으니까." "개인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선생님의 애니메이션에는 흥미가 가지만 말이야." (19쪽)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학산문화사, 2013)는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 삶을 돌아보는 만화책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이 땅을 떠난 지 스물 몇 해가 흐른 요즈음, 테즈카 오사무 님이 어떤 만화를 어떻게 그렸는가를 만화로 되짚어요.

테즈카 오사무 님 곁에서 만화를 도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녁한테서 원고를 받으려고 며칠 동안 밤새워 기다리던 출판사 편집자들이 이야기를 거듭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손수 쓴 글에서도 이야기를 따옵니다.

그러면, 일본뿐 아니라 지구에서 '만화를 그린 하느님(만화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테즈카 오사무 님은 왜 만화를 그렸을까요? 스스로 기쁨이 넘쳐흘렀기에 만화를 그렸습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으면서 전쟁 소용돌이를 일으켰어도 총검을 버리고 펜대를 쥐면서 화장실 벽에다가 만화를 그렸지요. 의학 공부를 하다가 만화를 그렸으며, 끝내 의사로 가는 길을 그만두고 만화가로 가는 길을 걸었어요.


'만화영화에 그만큼의 수고와 품질을 논하는 것은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우선 인건비가 들고, 제작 기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개봉하면 '뭐야, 어린이 만화잖아'라며 어른들은 비웃는다.' (34쪽)

"아야미 씨, 내일 방송은 취소하죠! 이런 일은 계속 해 나갈 수 없어요!" "방송을 취소한다고 하면, '매주 TV 애니메이션 따위 역시 불가능하잖아!' 이런 소리를 들을 거예요. 그리고 더 이상 스폰서도 붙잡지 못하고, 누구도 TV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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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권 겉그림. ⓒ 학산문화사

스스로 아이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만화를 그리려 한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는 가슴에 늘 품은 꿈이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책으로 빚는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로 빚는 만화'입니다. 이리하여, 첫째 꿈인 '책으로 빚는 만화'를 엄청나게 그리면서 돈도 엄청나게 모으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씩씩하게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립니다. 누가 도와줘서 차리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아니라 '만화를 그려서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붓는' 애니메이션 회사이지요.

만화를 그리면 '돈을 쓸 일이 없다'고 하기에, 그림삯을 차곡차곡 모아서 건물을 짓고 일꾼(애니메이터)을 둡니다. 한때 400∼500 사람에 이르는 일꾼이 있었다는데, 이들은 모두 테즈카 오사무라는 '만화 하느님'이 빚은 만화에서 얻는 그림삯으로 만화영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만화책을 잇달아 선보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만화영화를 빚으려고 온힘을 쏟습니다. 애써 마무리지은 만화영화도 어디에선가 빈틈이 보이면 모두 버리고 새로 빚기로 합니다. 이런 손길하고 땀방울이 모여서 <아톰>이 만화영화로 태어났고, 이 만화영화 하나는 일본뿐 아니라 지구별 만화영화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고 합니다.

시험에 합격한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은 3개월 정도 걸리는 양성 기간에 들어갑니다. 양성을 위한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미술대학 애니메이션과라든가 전문학교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현장의 빡빡한 일정을 완화하려면 인재를 늘릴 수밖에 없다, 신인 육성에는 선배들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76쪽)

만들면 팔린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제작된 조악한 작품의 범람이 돼서 시청자가 TV 애니메이션에 고개를 돌리게 하지는 않을까.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테즈카 오사무는 급격한 붐의 일그러진 일면을 경계했습니다. (94쪽)

죽는 날까지 펜대를 놓지 않고 잠을 미루면서 만화를 그린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는 그림삯(돈)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새로운 이야깃감을 생각해 내려고 하는 삶이었고, 새로운 만화책을 선보여 아이들한테 꿈하고 사랑 두 가지를 들려주려고 하는 넋이었습니다. 언제나 마감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면서 만화를 그리면서도 '새로운 연재'를 자꾸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고 싶은 만화가 자꾸자꾸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이야기도 그리고 저런 삶도 그리며 그런 노래도 만화로 그리고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놀고 싶어요. 어제 하던 놀이를 오늘도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어 누리고 싶습니다. 오늘 밤이 저물어 잠자리에 들 때에는, 어제오늘 누린 놀이에다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누리고픈 놀이를 꿈으로 그리지요.

꿈이 있기에 한길을 걷고, 꿈을 새로 가꾸며 다시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는 셈입니다. 꿈을 돌아보면서 기운을 차리고, 꿈을 되새기면서 언제나 즐거이 거듭나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앞의 말처럼 소년만화에 집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무렵 소년만화에는 나가이 고 씨의 <파렴치 학원>이 등장하였고, 성교육을 다시 재점검하자는 사회 풍조도 있어서 귀엽게 살짝 야한 묘사는 소년만화에서 극히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만화가들은 종래 소년만화의 성에 대한 터부를 확실히 무너뜨렸습니다. 1955년 전후의 악서추방운동을 겪은 만화가는 이것 때문에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139쪽)

다른 수많은 만화가하고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서 무척 크게 다른 대목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로 '소년만화를 그리는 테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에서는 '귀엽게 살짝 야한 묘사'가 조금도 없습니다. '안 귀엽게 제법 야한 묘사'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구태여 이런 기법까지 끌어들여서 인기나 지지도를 얻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고, 아이들이 꿈이나 사랑을 생각하도록 온힘을 쏟는 이야기를 만화로 빚고 싶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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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권 겉그림.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는 모두 네 권으로 나왔다. ⓒ 학산문화사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를 제쳐두고, 제게는 그리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166쪽)

데즈카 오사누는 1976년부터는 대형 출판사 만화상의 심사위원직을 전부 사임했습니다. 이유는 심사하는 것보다는 심사받는 쪽에 서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게도 다른 작가들처럼 만화상을 받을 정도의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정열 같은 것이 있다. 만화가는 연령을 불문하고 신인도 경력이 있는 사람도 다 함께 뒤엉켜서 작품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181쪽)

어떤 만화가 재미있을까요? 재미있게 빚은 만화가 재미있습니다. 어떤 만화가 '귀엽게 살짝 야할'까요? 이런 마음으로 이런 기법을 쓰면 만화가 이러하겠지요. 어떤 만화가 즐거울까요? 즐거운 꿈을 즐겁게 그리는 만화가 즐겁습니다. 그러면, 어떤 만화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슴에 담고서 이야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실으려고 온힘을 쏟는 만화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만화책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는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 바치는 책이라 할 수 있으면서, 만화를 그린 하느님이라 할 테즈카 오사무 님 발자국을 돌아보는 책이 되고, 만화책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만화는 어떻게 그리는가?'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만화를 그리려는 뜻을 품은 젊은이한테 '만화를 그리는 마음과 몸짓과 넋'을 어떻게 다스릴 때에 오래도록 기쁜 숨결이 되어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를 알려주는 길잡이책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반 토시오·테즈카 프로덕션·아사히신문사 / 김시내 옮김 /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 11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1: 1928 ~ 1946

반 토시오, 테즈카 프로덕션, 아사히 신문사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13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테즈카 오사무 #만화 #만화책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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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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