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묻힌 대전 골령골, 또 훼손돼

5 매장지 이어 2 매장지도 훼손, 희생자유족회 "안내판만 설치했어도..."

등록 2015.12.15 18:05수정 2015.12.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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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들이 묻혀 있는 데전 산내 골령골 매장지가 또 훼손됐다.. 방치돼 있던 밭을 고르면서 일부 유해가 드러났다. ⓒ 심규상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대전 산내 골령골이 또다시 훼손됐다. 훼손된 곳은 가장 많은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2 매장지다.

올 상반기에는 최소 수십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근 5 매장지에 있는 유해가 토지소유주에 의해 송두리째 훼손된 바 있다.

15일 오전 10시.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11번지 일대는 예전의 땅이 아니었다. 약 2000여 평 면적의 땅은 지목상 밭이지만 최소 20여 년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잡풀과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수십 년 전 도로포장 공사로 유해가 유실된 이후에는 비교적 유해 훼손이 적은 편이었다. 일부 주변 주민들이 농지로 활용했지만 심각한 유해훼손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현장은 이전과 크게 달랐다. 중장비를 이용해 땅 고르기 작업을 한 직후였다. 잡풀로 덮여 있던 땅은 짙은 황갈색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이곳엔 직선으로 가로 약 150m(세로 2~3m) 크기의 구덩이에 희생자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밭 중간지점에도 40m 크기의 구덩이가 있다는 증언도 나와 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아래 산내유족회)에서는 2 학살지에만 최소 1000여 명 가까운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급히 유해매장 추정지를 돌아보았다. 염려했던 대로 일부 유해가 드러나 있었다. 잠깐 둘러보며 추려낸 유해만 10 여점에 이르렀다. 흰 단면으로 보아 작업 도중 쪼개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2곳에서도 유골 가루가 드러나 있었다. 그나마 바닥을 깊게 파지 않아 유해 훼손 범위와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땅 소유주인 모 저축은행 관계자는 "약 한 달 전쯤 다른 사람과 땅 매도계약을 체결했다"며 "계약자가 땅 고르기 작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곳이 유해매장지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저축은행 측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한아무개씨는 "주민자치센터와 상의 후 농사를 짓기 위해 땅 고르기 작업을 했다"며 "이곳이 유해매장지라는 얘기를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이 유해매장지인 줄 알았으면 땅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유해가 묻혀 있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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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매장지에는 도로변을 따라 약 150미터 길이에 최소 1000여구 이상의 유해가 묻혀 잇을 것으로추정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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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고르기 작업으로 드러난 희생자 유해 ⓒ 심규상


올 상반기에는 두개골 등 일부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던 5 매장지가 훼손됐다.

5 매장지에는 최소 수십 구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대전시민사회단체까지 대전 동구청장을 면담하고 관리 소홀로 인한 공개 사과와 안내판 설치 등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할 한현택 동구청장은 유해매장지가 사유지라는 점과 주민 반대, 예산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만에 또 다른 유해매장지가 훼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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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유족회장이 드러난 뼈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심규상

김종현 산내유족회 회장은 "올 초에는 수십 구가 묻혀 있는 유해매장지가 훼손돼 통째로 사라졌다"며 "이런 황당한 일을 막기 위해 관할 동구청에 시위까지 벌이며 현장 안내판 설치를 요구했지만 뭉개버리더니 이런 일이 또 벌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유해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만 설치하면 되는데도 정부는 물론 대전시청, 대전 동구청이 약속이나 한 듯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유해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울 경우 땅값 하락 등이 우려된다"며 "안내판 설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내유족회는 올 하반기 대전시의 지원을 받아 산내 골령골 내 유해매장 추정지 전수조사를 벌였다. 산내유족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전시와 관할 동구청에 안내판 설치 등 유해훼손방지 대책 마련을 재차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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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골령골 2유해매장 추정지(학살지). 윗줄은 스카이뷰, 아랫 줄 왼쪽은 지도, 어랫 줄 오른쪽은 지적도를 이용해 유해매장 추정지를 표시했다. 노란색은 학살 당시 옛 도로이고 붉은색이 유해매장 추정지다. ⓒ 대전 산내유족회


#유해매장지 #골령골 #대전 동구청 #유해훼손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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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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