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게 써야 좋은 글이다

[2015교육문화연구학교 7]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라"

등록 2015.12.18 11:39수정 2016.01.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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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월호 사건을 겪고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며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라는 주제로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엽니다. 나 자신부터 길러지지 않으면 누구도 교육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종이 위에 있는 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연마하고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실제로 그렇게 걸어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는 10월 9일부터 12월 18일까지 총 10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주

학부 시절, 내 꿈은 '칼럼 쓰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었다.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사회 전반을 분석하고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통찰력만 있으면 글은 자연스레 잘 쓰게 될 거라 생각했다. 글쓰기 기술을 향상시킬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글쓰기 책 한 권 제대로 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다. '칼럼 쓰는 지식인'이라는 꿈은 버렸다.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글만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삶과 괴리된 말과 글이 난무했다. 그게 싫었다. 나는 내 삶 자체가 대안이 되길 바랐다. 글은 그저 내가 사는 만큼만 쓰고 싶었다.

그런 도중에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를 만났다. 함께한 강사들은 자기 삶을 녹여낸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이었다. 반가웠다. 그 중 5주 과정의 '실전 글쓰기'를 맡은 김종희 <뉴스앤조이> 대표는 철저하게 자기 삶에 근거해 좋은 글쓰기의 기본 요소를 짚어 주었다.

'실전 글쓰기' 강의 마지막 주제는 '종합'이다. 5주 과정을 갈무리하는 시간, 모든 참가자들이 김밥, 귤, 피자 등의 먹을거리와 함께 둘러앉았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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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식사를 하며 김종희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김민수


"글쓰기에서 주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생이잖아요. 자기 인생의 주제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김 대표는 주제가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실전 글쓰기 첫 시간(관련기사 : 김종희 대표 글쓰기 강의, '좋은 글로 가는 길')에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것이 좋은 글의 첫 번째 요소임을 밝혔다. 이번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뚜렷한 내 인생의 주제를 만들어 가라고 당부했다.

시중에 나온 글쓰기 책의 핵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서로 표절했다는 말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갖춰야 할 보편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주제의 선명성, 조화로운 구성, 매끄러운 표현 등이 그것이다. 그 보편성이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개성을 담아야 좋은 글이다. 개성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뜻한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가지 집중된 주제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직업'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직업은 '직'과 '업'으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글 쓰는 삶을 나의 '업'으로 한다면, 그 '업'을 이루기 위해 기자, 소설가, 시인 등의 '직'을 갖는 것이죠. 어떤 '직'을 갖든 글을 쓰는 삶을 사는 것이 '업'입니다. 대개 직업을 갖고자 할 때, 그 '업'이 일관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어요. 일관된 '업' 아래 다양한 '직'을 경험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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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버리는 것을 두려워말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라"고 했다. ⓒ 김민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버리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김 대표는 <뉴스앤조이>에서 인터넷 신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오디오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편의 방송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다. 그러나 그는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김 대표는 지난 봄부터 목회자를 위한 책을 집필 중이었다. 이미 원고지 450페이지 분량의 글을 썼다. 한동안 개인 사정으로 집필을 멈췄다가 최근에 다시 원고를 펼쳤다. 그런데 글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호하게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버리는 글이 아깝냐고? 김 대표는 버린 글이 글쓰기의 근력이 된다고 믿는다.

글쓰기 기본, 배려에서 시작

김 대표의 마지막 당부에 참가자들은 화답했다. 강의 후기, 포상으로 받은 책의 독후감, 감사 엽서. 각양각색의 소감이 이어졌다. 소감은 고해성사의 연속이었다.

'글쓰기가 편향되어 있었어요, 이제 좀 더 밝게 써 보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만 쓰느라, 글이 길었습니다.'
'주장만 하느라 글이 많이 허술했습니다, 강의를 통해 문단이 풍부해졌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고 전제하고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사실 글을 그렇게 못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교만했구나 싶었어요.'
'누가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내 글이 좋았어요.'
'첨삭을 받고 싶지 않았던 제 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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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소감으로 준비한 엽서에 빈 칸으로 '글'을 형상화했다. ⓒ 김민수


반성과 다짐이 교차하는 소감 중 가장 많은 이야기는 '상대를 배려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강한종(35)씨는 "그동안 글감이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감응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강의에서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포상으로 받았는데, 그 책에는 글을 쓸 때 신체가 재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 씨는 "이번에 글을 쓰면서 신체가 새롭게 구성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글을 통해서 삶을 바꿔 가고 싶고, 주변의 존재와 감응하는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정길후(29)씨는 "그동안 문제의식부터 판단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는데 이제는 독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걸 알았다"며 "독자를 배려하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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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 김민수


이에 김 대표는 친절하게 써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상대방이 나의 말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절하다는 것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글 쓰는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 대표는 팟캐스트 첫 방송 때 여는 인사를 수차례 연습했다고 한다. "우리도 한 번 팟캐스트 해 볼까"와 "우리도 팟캐스트 한 번 해 볼까". '한 번'이라는 단어의 위치를 바꿔가며 수차례 녹음했다. 어떻게 해도 의미는 같은 문장이다. 다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무엇이 잘 들리는지 계속 고민했다.

배려를 넘어 문제 해결

글을 쓰며 끊임없이 친절과 배려를 염두에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공적인 글은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일기장까지 맞춤법을 정확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김 대표는 강의 내내 최선을 다 하는 일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절대 명제는 없다. 최선을 다 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상황도 있다. 지금 당장 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조금씩 실력을 늘려나가는 일도 의미 있다.

무작정 배려하는 글이 좋은 글일까. 이 또한 절반만 맞다. 적어도 독자가 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글의 내용까지 배려로 가득 차 있으면 안 된다. 글쓴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김 대표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으로 글을 채우라고 당부했다. 단순한 배려를 넘어 글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까지 이어져야 한다. 자기만의 이야기로 알맹이를 채우고, 그것을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포장해야 한다. 글을 쓰고 삶을 사는 데 지녀야 하는 기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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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 김민수


마지막으로 고백 하나 하면, 지난 강의에서 글쓰기 숙제의 포상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받았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쓴 글쓰기 개론서이다. 이 책에는 글쓰기의 핵심이 거의 다 담겨 있었다.

거기에 이번 강의에서 글쓰기의 '엑기스'가 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앞으로는 글쓰기 개론서 읽지 않으려 했다. 좋은 글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틈틈이 찾아 읽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 나를 향한 김 대표의 일갈. 자신은 아직도 글쓰기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읽는단다. 6:4의 비율로, 읽기와 쓰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선명한 주제와 조화로운 구성, 매끄러운 표현은 공적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것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자.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 그 두 가지를 지켜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나의 고통이 너의 즐거움.'

지난 5주 동안의 강의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다시 나의 보람으로'라는 문구 하나를 추가한다. 글쓰기 강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시가 연애편지다. 연애편지는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어떻게 온전히 전달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 이제 연애편지가 아니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며 쓸 수 있다. 진정 글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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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마지막 강의 후 함께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 김민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문화연구학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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