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삼성전자 작업병 피해자 221명을 잊지 않는 퍼포먼스에 함께 해주세요

등록 2015.12.21 11:53수정 2015.12.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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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사업장의 직업병 피해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70여 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측은 사옥 바로 앞에서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나와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직업병 피해해결을 위해 마련된 공식 조정테이블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며, 철저한 재발방지대책과 배제 없는 보상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올림은 오는 12월 22일 화요일 저녁 삼성전자 본관을 에워싸고, 직업병 피해의 사회적해결을 촉구하는 '221인의 방진복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21명이라는 숫자는 현재(2015년 10월 기준)까지 제보된 직업병 피해자 221명을 나타냅니다. 돌아오는 화요일,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기자글

[관련기사] 12월 22일 221개의 방진복이 되어 주세요

지난 9일, 사망자 75명을 상기하며 75명의 사람들이 방진복 퍼포먼스를 했다. ⓒ 반올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는 시인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애도는 고통스런 노동이다.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억하고 회상하려는 치열한 노동을 통해서 우리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라고…. (출처: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애도의 기술'

인권의 현장은 늘 잊지 못하는 이들의 기억 투쟁에 의해 구성된다. 상처를 잊지 않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잊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는 사람들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와 결별하기 위해서 애써 잊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방법이다. 피해자들이 상처로 인해 다른 상처까지 곪아 터질 때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이제 그만 가자, 그만 하자' 설득할 때도 있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할 때, 다른 이들의 다른 아픔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울 때, 아니 싸울 수 있을 때 그들은 또한 그러한 투쟁으로 인해 스스로를 구원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이는 웃지 않았다. 그 커다란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느냐며, 자신을 비웃던 사람들 틈에서 웃음을 잃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보금자리를 지켜주던 영업 택시 뒷좌석에서 딸아이는 차갑게 식어갔다.

그래도 다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좀처럼 잡히지 않던 마음은 오죽했을까. 모든 전문가가 고개를 저었다.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선례는 어디에도 없다, 고 거절했다. 그것도 삼성 아닌가.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언제든 법조차 바꿀 수 있는 그들 아닌가. 의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보다 그들을 상대하는 게 더욱 불가능한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을 만날수록 황유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업병 정체는 오리무중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친 척 만들어 보았던 제보 창구. 죽음에 대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희귀병의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성에 다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삼성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 뜬소문으로만 떠돌던, 질병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기 운명 탓이라 여기던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알 수 없이 묻어 두었던 억울한 세월을 꺼냈다. 성금이라고 던져주던 돈 때문에 닫혔던 말문을 열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가족인 황상기씨. 그는 강원도 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시간을 쪼개 서울 농성장에 결합하고 있다. 그는 8년째 삼성전자의 진정어린 사과를 요구하며 반올림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반올림 홈페이지> ⓒ 반올림


그래서 소위 '삼성백혈병 사건'이라 불리는 싸움의 주인공은 죽은 자들이었다. 가족을 잃은 자들이었다. 병 들었던 자들이었다. 산업재해가 최종적으로 인정되었던,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포기했던 날, 7년의 싸움을 끝낸 황상기 어르신은 환하게 웃었다. 그가 찾은 웃음은 단 하나 싸움의 승리로 읽히지 않았다. 상실과 싸운 자의 승리였고 애도의 노동에 지치지 않았던 이의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쉼 없이 병들고 다치고, 그리고 떠났다. 도대체 우리 손에 쥔, 눈으로도 어림짐작하지 못할 그 작은 반도체 칩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221명의 사람들이다. 그중 75명은 밝히지 못한 직업병으로 죽었다. 그것도 제보되었기에 알게 된 숫자일 뿐이다. 75개의 세계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내가 병든 이유를 알기 위해서 싸우는 이도 있다.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존엄의 훼손을 참기 힘들기에 여전히 싸우고 있다.

70여일째 삼성본관 앞에 쳐 놓은 반올림 농성장에 그들이 있다. 삼성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는 요란한 쇼의 커튼이 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다시 피해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들의 사과에는 재발방지 대책도 없고 배제 없는 피해 보상도 없다. 여전히 돈이면 된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돈으로 피해자들을 다시 모욕한다. 지금까지 그들은 피해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려 했고, 개인적으로 돈을 줬다. 돈을 받으면, 다시는 문제제기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반올림 ⓒ 반올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삼성 본관 앞 비바람 가리지 못하는 농성장은 매일 비닐 한 장 때문에 실랑이를 한다. 실랑이 하는 용역과 경찰 들 뒤에 서있는 높은 분들 코빼기는 보지 못했다. 공식 조정 테이블에서는 무성의하고 사회적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 빨리 삼성 본관 앞에서 피해자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겠지. 어쩌면 삼성이라는 이름에서 백혈병이 빠지기만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소위 피해자라고 불리게 된 이들을 흔들어 놓은 지난 시간에 대한 고려가 그들에게는 없다.

오는 22일 저녁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221명의 사람들이 방진복 입고 건물을 에워싸 보겠다 한다. 직업병 피해의 사회적 해결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다. 삼성LCD사업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38살 한혜경은 말한다.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자들은 꽃이 되었을까.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어느 병상에 누워 있는, 221명조차 되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당신들이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도 괜찮지 않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내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럼 없다
단지 후회를 하나 하자면
그날,
그대를 내 손에서 놓아버린 것 뿐.
어느새 화창하던 그 날이 지나고
하늘에선 차디찬 눈이 내려오더라도
그 눈마저...
소복 소복 따뜻해 보이는 것은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일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청아-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님이 썼습니다.
#반올림 #삼성백혈병 #백혈병 #방진복 #삼성반도체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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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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