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

[분석] 교토체제의 종언, 파리협약에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등록 2015.12.19 16:09수정 2015.12.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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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기후 협정 최종 타결... "온도 상승 2℃보다 훨씬 작게" 파리 기후 협정이 체결된 12일(현지시간) 4만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파리 시내에서 위치태그 기법을 활용해 '기후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은 이날 파리 인근 르부르제 전시장에서 열린 총회 본회의에서 온도상승 목표, 감축이행 검토 등이 담긴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다. ⓒ 연합뉴스


가능성은 열리고, 우려는 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 뉴스에 가려 주목받진 못했지만,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이벤트가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다. 202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설정하는 국제적인 합의가 195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간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2009년 코펜하겐에서 결정되었어야 했을 합의가 6년이 더 지난 후에야 비로소 타결된 것이다.

지구 평균기온 증가를 2℃도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는데 합의했고, 1.5℃ 상승에서 멈출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선언했다. 이미 1℃ 정도의 온도 상승이 있었으니 야심 찬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모든 회원국은 온실가스 배출통계를 매년 보고하고, 5년 단위로 감축목표를 자발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에 감축의무를 지웠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었다. 반면 파리협약에서는 감축의무를 규정하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 약속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또한, 개도국에게는 아무런 의무도 없었던 교토체제(교토의정서가 이후 만들진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체제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탄소시장의 출현을 가져왔다 - 기자 주)와는 달리 이번 파리협약은 모든 국가들에 같이 적용된다. 대신 선진국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부터 매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파리협약이 미국 의회의 비준을 통과하기 위해 감축의무가 배제된 타협안이라는 비난도 있다.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사람들이 2℃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았지만, 4℃ 상승 이하로 낮추는 정도의 공약도 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사회가 택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협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의 기후변화를 촉발했던 산업혁명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석유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파리협약, 영국 탄광 폐쇄

미국의 유력 주간지 <타임(Time)>은 "파리에서 화석 연료 시대의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전 세계에 고했다. 교토체제가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를 억제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파리체제는 화석 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고한 것이다. 2050년까지 숲과 바다가 흡수하는 양만큼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자는 대담한 선언이 담겨 있다. 태양광, 풍력 등 탄소 중립(carbon neutral)인 재생에너지로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역사적인 이벤트가 이번 주 영국에서 있었다. 산업혁명, 즉 화석연료 시대의 문을 열었던 영국에서 마지막 탄광이 이번 주에 문을 닫은 것이다. 이 뉴스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주요 신문들이 비중 있게 다루었다.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언론에 비추어졌다.

환경운동가들이 파리협약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전문가가 의미 있게 바라보는 것은, 이 협약이 화석연료의 시대에서 재생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란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의 변화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력 생산에서도 지금까지 대부분을 차지하던 석탄은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2013년 미국에서 새롭게 증설된 발전소의 50%는 천연가스가 차지했고, 태양광이 22%로 그 뒤를 이었다. 과거의 강자였던 석탄은 11%에 불과해 풍력(8%)을 겨우 따돌렸다. 27개 EU 회원국에서는 2020년이 되면 전기 생산에 사용되는 화석연료의 비중은 35%로 재생에너지와 같아질 전망이다. 불과 5년 후, 우리나라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 일어날 일이다.

파리협약이 바꾸어 놓을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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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지난 2013년 1월 15일,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에서 프란츠 본 홀츠하우젠 테슬라 최고 디자이너가 새 자동차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국제오토쇼는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쇼 중 하나이다. ⓒ 연합뉴스/EPA


2009년 3월 26일 테슬라 모델 S가 처음 출시될 때 전기자동차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10년 후에도 여전히 휘발유 자동차를 볼 수 있을지가 오히려 궁금한 세상이 되었다. 테슬라 사는 전기자동차의 핵심이 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생산하기 위해 미국 네바다 주에 '기가팩토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장이 완공되는 2020년부터 연간 50만대의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배터리팩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석유가 언제 고갈될지를 걱정한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풍요가 화석연료에 기인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대가로 지구온난화라는 부작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석유가 생산되는 한 화석연료의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믿고 있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바뀐 이유가 돌이 부족해서는 아니듯이, 석유가 부족해져야 새로운 에너지의 시대로 옮겨 갈 것이라는 믿음은 부질없는 것이다. 셰일기름에 기대 화석연료의 시대가 영원할 것이란 믿음은 허망함만 남길 것이다.

슈퍼엘니뇨의 해였던 2015년은 가장 극심한 가뭄이 있었던 해인 동시에 온난한 겨울과 겨울비로 기억될 것이다. 늦가을부터 잦아진 비로 동계작물은 파종 시기를 놓쳤고 파종한 작물은 웃자라 동해가 우려되고 있다. 곶감은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피고, 가을걷이는 때를 번번이 때를 놓쳐 품질이 좋지 않다. 이 영향은 내년 봄 장바구니 물가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석탄발전소의 증설을 열심히 하고, 스마트그리드법과 분산발전법 등 미래를 대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법안은 기득권에 막혀 좌절되었다.

파리협약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류의 자신감 표출이었다. 세계는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것을 선언했고,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 당쟁으로 문명의 전환기를 허비한 기억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의 시대에 데자뷔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은 좌고우면하기보다는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남재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ecotown.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파리협약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화석연료 #교토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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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한 - 준비 안 된 사람들>의 저자로 우리나라 농업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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