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서 구성... 친한 친구들이 소원해졌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33] 부산 패밀리 4인방

등록 2015.12.21 13:33수정 2016.07.26 09:1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a

홈페이지 제작 회사는 새로생긴 유통사업부의 홈페이지 제작비용 조차도 아끼기 위해 산업기능요원들중 작업이 가능한 인력을 차출했다. ⓒ pixabay


회사에 프린터 생산 업무가 중단되고 매출과 직원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전무님은 사장님과의 권력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듯했고 회사에는 전무님 직속의 '유통사업부'가 생겼다. 유통사업부는 중국 저가 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홈쇼핑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는, '무역'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중국에서 주력으로 수입해온 품목으로는 '미니스쿠터' '홈시어터' '차량용 냉온장고' '어린이 장난감' 등이 있었다. 그 제품들을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 채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우리 회사는 '홈페이지'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였다. 대기업 제품을 하청 받아 임가공 생산만을 해오던 회사였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을 만나거나 회사를 홍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유통사업부에 근무할 인력도 구성을 해야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 쇼핑몰도 만들어야 했다. 보통의 경우 쇼핑몰을 구축하려면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업하거나 외주 제작을 맡기는 게 일반적인데 회사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내부 직원들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직원들을 차출해서 이용했다.

유통사업부가 생기고 산업기능요원들 중에 유통사업부에서 근무할 인력을 뽑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유통사업부로 부서를 옮기면 사무실에 자리도 생기고 현장에서 하루종일 서서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작업자 신세를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이들 가고 싶어했다.


유통사업부 인력 구성이 시작되고 먼저 내게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나를 좋게 봐줬던 관리팀 누나가 유통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는데 나도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자재팀에서 생산팀으로 자리를 옮긴지 몇 달 되지 않았고 수리사가 없어 힘들어 하던 생산팀에 이제 어엿한 수리사가 생겨 좋아하던 대리님과 주임님이 기를 쓰고 반대했다.

나도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에 '자리를 옮겨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계속 가보자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접고 수리사 업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래도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데 핵심인재로 내가 지목됐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부산에서 온 친구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던 형이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 우리 회사에 함께 취업했다. 아무래도 친구가 중간에 있다보니 그 형과도 우리는 금새 가까워졌다. 그 형의 전공이 '웹'쪽이라 유통사업부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차출됐다.

형은 낮에 생산팀 작업자로 근무를 하고 매일 새벽까지 유통사업부가 차려진 출하검사실 2층 사무실에서 홈페이지 제작에 몰두했다. 몇주간 그렇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채 일하고 있는 형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홈페이지 제작이 완료되면 현장을 벗어나 유통사업부에 그 형의 자리가 생길줄 알고 조금만 더 힘내라며 응원해줬다.

얼마 뒤 홈페이지 제작이 완료되고 유통사업부 구성원 명단에서 형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형과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내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 친구는 형이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옆에서 함께 지원을 해줬었다.

그 일로 인해 그 형과 내 친구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그 이야기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친구는 남의 공을 가로챈 파렴치한으로 매도돼 산업기능요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유통사업부가 생기면서 그 형도, 내 친구도 모두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됐다. 둘과 모두 잘 지내고 싶었던 나와 다른 친구들도 둘 사이에서 아주 불편하게 눈치보며 지낼수밖에 없었다.

후배 수리사 지목권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졌다

a

수리사 혼자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불량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수리사를 한명 더 키우자고 이야기 했다. ⓒ pixabay


생산팀의 수리사가 되고 몇달이 지난 나는 '1등 수리사'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내가 처음 수리사가 됐을 때 TV라인 수리사로 있던 스무살 먹은 동생은 결국 수리사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 라인의 작업자가 됐다. 그렇게 나는 TV와 CCTV 모든 제품의 수리를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TV와 CCTV 2개 라인에서 쏟아지는 불량품을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다. 간단한 불량 수리가 가능했던 주임님이 가끔 도와주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쏟아지는 불량품들을 수리해서 재투입하느라 공정 개선 업무는 뒷전이 되어 버렸고 그러다보니 불량품이 줄어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나는 당시 생산팀 수장이었던 대리님에게 찾아가 수리사를 한 명 더 키우자고 제안했다. 대리님은 몇 달간 내가 수리사 업무를 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 대한 신뢰가 깊었고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게다가 후임 수리사로 누구를 키울건지 나에게 모든 선택권을 일임하셨다.

그렇게 나는 내 후임을 누구로 할지 생각하게 됐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성실함을 보여준 형과 부산에서 함께 올라온 내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후보들이었다. 다행히 그 형은 수리사가 아니어도 성실함과 더불어 생산 라인에서는 맏형뻘의 나이였기 때문에 작업자를 벗어나 자재 투입 담당이 됐다.

내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홈페이지를 만든 형 그리고 나는 부산패밀리였다. 우리 부산패밀리 중에 마지막으로 작업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친구를 수리사 후임으로 지목했다. 대리님께 말씀드려 그 친구를 수리사로 차출해 내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다.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었고 열아홉 난생처음 실습사원이 되었을 때 나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던 친구다. 게다가 우리는 그 첫직장에서 같은 생산설비를 가지고 12시간씩 서로 맞교대 근무를 했던 막역한 사이다.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우리 부산 패밀리 4인방은 모두 현장 작업자 신세를 벗어났다. 조금씩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간접 부서에서 나름의 역량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무역 #홈페이지 #인력 #수리사 #차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