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1등으로 식사... 수리사의 특권!

[나는 고졸사원이다 34] 점심시간의 전력질주

등록 2015.12.22 17:20수정 2016.07.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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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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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일찍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작업자들은 전력 질주를 해서 식당으로 뛰곤했다. ⓒ pixabay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가장 편하게 쉴수 있는 시간은 단연 점심시간이다. 우리 회사 점심시간은 낮 12시 40분부터 낮 1시 20분까지로 40분이었는데 식당이 회사 안에 있었기 때문에 40분이라도 충분히 모든 사원들이 밥을 먹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오전에 한 번, 점심시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울리는 쉬는 시간 종소리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일하는 현장 생산직 사원들에게는 점심시간도 전쟁 같았다. 자칫 늦게 식당에 가면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으므로 소중한 휴식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이었다.

식당은 회사 정문 바로 오른쪽 기숙사 건물 2층에 있었다. 반면 생산 라인은 회사 제일 안쪽 사무동부터 식당 맞은편 출하 도크장(화물차에 물건을 편하게 싣고 내리기 위해 만든 장치)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제일 마지막 공정인 '적재' 공정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제일 식당에 먼저 도착하게 돼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여유롭게 식당에 와서 천천히 줄을 서서 밥을 먹었지만 병역 특례를 받고 있던 젊은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밥을 빨리 먹고 쉬기 위해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식당까지 전력 질주했다. 줄이 길어지기전에 식당에 도착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남은 시간을 기숙사 방에 들어가서 몸을 뉘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몇명의 친구들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기숙사 방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보며 뒹굴거렸다. 밥을 일찍 먹고 기숙사에 들어가 TV를 켜면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었는데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그 드라마에 빠져 들었고 드라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업무 시작 종이 울리는 걸 아쉬워해야 했다.

당시 나는 생산 라인 메인 수리사였다. 그리고 한 명의 수리사를 더 키우기 위해 PCB조립 공정에서 일하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라인에서 차출해서 함께 수리사 일을 하고 있었다. 수리사는 컨베이어 벨트가 가동되고 멈추고, 벨트에 따라 움직이는 생산 라인 작업자들과 달리 근무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오전에 10분, 오후에 10분씩 있는 쉬는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가야 하는 작업자들과 달리 언제든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다녀올수 있었고 어려운 '꼴통' 불량품이 나와서 몇 시간째 그 불량품 한 대와 씨름하다 스트레스가 쌓일때면 바깥 휴게소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몇십 분씩 머리를 식힐 수도 있었다.

전쟁같은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5분전 즈음이면 친구와 나는 슬쩍 현장을 나와 여유있게 걸어 식당으로 갔다. 딱 식당에 도착해서 식판을 잡으면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전력질주하면서 뛰어온 작업자들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수리사로써의 그런 소소한 특권을 누리고 지냈기 때문에 현장 작업자들은 마냥 우리 수리사들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고충을 아는 사람들은 항상 그들보다 늦게 퇴근하고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 모습을 보며 오히려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수리사 할 때는 작업복을 직접 빨아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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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사원들은 '수리사'시절 본인의 작업복을 직접 빨아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 빤주


내가 수리사가 되면서 선배 사원들의 과거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들었다. 업계에서 지금은 한자리씩 하는 선배 사원들을 보면 그 시작은 '수리사'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 회사의 '생산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최 과장님도 그렇고, 이전 직장에서 나의 멘토였던 신 과장님과 최 조장님도 모두 처음에는 라인의 수리사로 역량을 키웠다고 한다.

과거 수리사를 했었다는 선배들의 에피소드 중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작업복을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으로 빨지 않았다'였다. 보통 대기업 TV 라인의 검사 공정에는 젊은 여성 사원들이 많았다. 그 여성 사원들이 생산 라인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수리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말에 벗어놓은 작업복을 깨끗히 빨아다가 월요일 수리사 책상에 올려뒀다고 한다.

그만큼 수리사라는 직무가 생산 라인에서는 중요한 직무라는 걸 말하고 싶으셨던 거라 생각한다. 수리사는 향후 '관리자'로 커 나가기 위한 필수 코스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의 과거를 돌아봐도 수리사로 내 역량을 키웠던 시절이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수리사로써의 미래와 역량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받았던 것과는 별개로, 선배 사원들의 '작업복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회사 검사공정에 득실 득실한 남자 사원들을 바라보면 힘이 쭉 빠지기도 했다.

선배 사원들의 '작업복 이야기'는 어느 정도 부풀려진 이야기겠지만, 정말로 수리사로 일하다 같은 현장의 검사 공정 여사원과 결혼을 한 사례가 많았다. 이전 직장에서 수리사로 일하던 형도 당시 수입검사실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여성 사원과 결혼했다. 검사원과 수리사. 왠지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덧붙이는 글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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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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