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공교육 혁신, 교육민주화로 가는 길"

[대구인권사무소 릴레이 화요 인권특강]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등록 2015.12.23 18:33수정 2015.12.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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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지금 여기저기서 혁신해야 살아남는다고 난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교육도 혁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지만 그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의 관점에서 공교육의 혁신을 주장한다. 

교육, 학생을 '교복 입은 시민'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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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기념 릴레이 화요인권특강의 마지막 강의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민주주의, 인권, 교육을 가지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세계인권선언 제67주년 기념 릴레이 화요 인권특강의 네 번째 강사는 혁신학교로 설명되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다. 곽 전 교육감은 지난 8월 '혁신교육 내비게이터 곽노현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백과사전을 찾다 보니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라고 정의되어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교육은 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인성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활동이어야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교육의 주체는 부모와 교사이고 객체는 학생이라는 말이 없다. 그럼에도 주변의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보호와 성장을 위해 교육적으로 지도한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호'라는 명분으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은 육체적으로 더 성장해야 하며, 경험이 적다는 속성 때문에 우리가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 여기서부터 학생인권이 시작된다. 학생 인권은 일종의 문화 혁명이다. 부모와 교사는 물론 그분들이 대표하는 사회와 국가를 향하여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부르짖는 인간 선언이자 주체 선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은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보니까 교권이 무너지고 각종 교육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에 대하여 곽노현 전 교육감은 자신의 다른 경험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은 학생 인권침해, 두발 단속, 체벌 같은 것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오히려 교육이 이뤄지기 좋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증거들은 우리에게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줘야 되는 것이 시기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교육의 다양성, "교학상장(敎學相長)"이 혁신이다

위의 책에 등장하는 어느 한 교육 전문가는 교육을 병들게 하고 교육의 본질을 죽여 버리는 것은 '표준화 교육과정'일지도 모른다고 표현하였다. 단 하나의 교육과정, 단 하나의 교과서로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며 서울시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혁신학교 담당자는 얘기한다. 또 혹자는 혁신학교 하면 '애들 성적은 얼마나 올랐냐?' 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학력=성적, 비교와 경쟁이 내면화된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항상 들리는 질문이다.

하지만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학력은 성적만으로 대표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혁신학교의 목표는 교학상장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주장하는 "교학상장"(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배움으로써 진보한다), 이 말은 학력우수상처럼 학생이 받는 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자발성에 근거해 함께 성장해 가는 것, 그것이 곽노현 전 교육감이 꿈꾸고 만들어낸 혁신학교에서 일어나는 교학상장이다.

또한 혁신학교에서 근무한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주체 누구도 소외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육은 상위 30% 이상만 데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고, 이것을 교육방식으로 뒷받침해줄 때 비로소 "아이들의 표정이 밝은 학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의 표정이 밝은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학생 모두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는 학교 현장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단시간 내에 이룩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학교는 교장이 전권을 쥐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교육의 주체로 인정받고,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소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주체가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서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교육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공교육혁신의 방향은 학교현장을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천되고 공유되는 공동체 사회로써 지식과 인성, 체력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시 합격자 발표가 끝나가고 엇갈린 명암 속에 누군가는 괴로워할 시간도 없이 본격적으로 정시 원서접수가 시작되었다.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운 입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오래간만에 오는 3일 연휴를 즐기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매년 이맘때쯤 발생하는 한국적 현상에 이제는 익숙해져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대학에 붙을 것이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어디 대학 붙었니?'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아이들이 교복 입은 시민에서 교복 벗은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먼저 축하해 주는 것이 어떨까?

대구인권사무소는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인권을 매개로 지역과 연대하기 위한 릴레이 화요 인권특강을 준비하였다. 이중 마지막 특강으로 12월 22일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과 인권'을 주제로 민주주의, 인권, 공교육의 혁신과의 관계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과 인권을 주제로 한 강의 내내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라고 주장하는 그에게 교육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혁신'은 일하는 방식 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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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도중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민주주의와 인권, 교육에 대한 한 참가자의 의견을 듣고 있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인권선언의 현대적 의미는 첫째,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체제나 국적, 성별이나 성적지향, 인종이나 피부색, 사상이나 종교, 장애나 이주 여부 등을 불문하고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선언하고 둘째, 국가와 국제사회가 보편적인권이 보장되는 국가질서 및 국제질서를 만들어가기로 합의하였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서 보편적 인권 없이는 인간이 전쟁과 압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인류의 절박한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이로써 인류는 아직 세계정부를 갖지 못하고 체제와 문명, 종교가 다양한 상태에서도 개개인이 어떤 존재이며 개개인이 국가와 국제사회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의 원칙을 갖게 됐다. 인류 상호 간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지속적으로 국제인권규약과 국제인권조약의 형태로 구체화되었을 뿐 아니라 유엔인권이사회와 인권조약기구, 지역인권기구와 지역인권법원, 국가인권기구와 인권옹호단체 등 인권보장기구의 발전에 의해 어느 정도 실효성의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선언으로 시작하였으나 명실상부한 국제인권법으로 더디게나마 진화하는 데 필요한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 그중 가장 좋아하는 조항이나 구절이 있는지?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그 존엄하며 동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이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제29조(1).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격이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가진다."

- 교육민주화와 공교육의 혁신은 어떤 관계가 있나?
"민주화는 권력소외가 있는 곳에서 권력집중을 완화하라는 요구다. 권력성립과정은 물론이고 권력행사과정에 대해서도 민주화를 요구할 수 있다. 교육민주화라는 용어는 교육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권력관계의 실질과 과정이 대단히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교육의 권력관계는 기본적으로 교육청과 학교 사이, 교장과 교사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서 성립한다.

교육계에선 전자의 목소리만 들리고 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학교나 교사, 학생은 자율성을 인정받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극도로 수동적이며 때로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하다. 교육민주화는 학교운영을 일방지배에서 참여와 집단지성으로, 지시와 명령에서 자율과 책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공교육혁신은 수업혁신과 생활교육혁신을 주로 의미하는바, 교육과정을 최대한 통·융합적, 창의적으로 운영하고 수업을 프로젝트나 토론방식으로 이끌고 생활교육의 원칙과 기조를 자율과 책임으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교무실을 학년부 중심편제로 바꾼다든가 교무행정전담팀을 둬서 담임교사의 공문처리 부담을 없앤다든가 하는 것이 공교육혁신의 이름으로 진행 중인 대표적인 변화다.

혁신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저항이 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익숙해진 일하는 방식을 고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일하는 방식은 권력관계에 최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디서나 일하는 방식은 관행으로 굳어있는데 배후의 권력관계를 전제할 뿐 문제 삼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할 때 비로소 일하는 방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눈뜬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도 조만간 권력과 기득권의 구조 및 그에 순응한 사람들의 저항에 부닥치게 돼 있다. 공교육혁신은 교육민주화로 가는 길이다."

-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차별이유 순위 1위는 성적 2위 외모, 3위 가정환경 등인데, 이런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법 또는 교육혁신은 어떤 것들이 있나?
"차별이유 1순위가 성적이라는 것은 학교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사실과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차별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하는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질문과 토론이 살아있는 쌍방향 수업으로 고쳐야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한 팀으로 부대끼는 가운데 모든 아이들이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팀별 협동수업으로 전환이 필수적이다. 학생인권조례 등은 법적 제도적인 출발점에 지나지 않고 인권존중과 반차별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감수성을 일깨우는  인권교육이 필수적이다." 

- 교권과 학생인권이 양립할 수 없는데 너무 학생인권만 강조하다가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교권과 학생인권은 갈등할 때도 있지만 개념적으로 별개다. 교사는 학생인권을 존중, 보호, 증진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을 훈육할 교사의 권리는 인권존중의 바탕 위에서 행사될 수 있다. 아이를 때리고 차별하고 폭언하여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학생인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교사의 직업윤리나 교육의 속성에 반하는 것이다."  

- 국립대 총장 직선제가 간선제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감도 다시 직선이 아니라 간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보통사람이 직접 권력을 만들어내고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직선의 매력이다. 직선으로도 멀쩡히 잘 돌아가는 걸 왜 간선으로 돌리나. 직선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진보교육감이 선출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그전에는 간선을 해봤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간선은 의미 있는 선택지를 좁힌다는 뜻이다."
덧붙이는 글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김종길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곽노현 #세계인권선언 #학생인권 #교권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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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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