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지 않는 정부, 유희열 보고 배워라

[주장] '대승적 이해' 말한 대통령과 변명하는 차관, 진심어린 사과부터

등록 2015.12.30 11:50수정 2015.12.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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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SBS에서 방영된 <K팝스타 5>에서는 가수지망생 우예린(20)씨가 오디션 참가자로 출연해 본인의 자작곡인 '어항'을 선보였다. 공식 심사에 앞서 이 노래를 먼저 들은 유희열은 우씨에게 "가사가 너무 난해하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우씨는 가사의 수정 여부를 두고 고민했지만 결국 수정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심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들은 박진영은 유희열과 달리 가사를 정확하게 해석했다. 박진영은 오히려 "작사가로서는 천재적인 수준"이라며 우씨에게 찬사를 보냈다.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유희열이 과연 어떠한 심사평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아니, 어떠한 변명을 늘어놓을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곧바로 유희열의 심사평을 들은 나는 자신을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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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프로그램 방송화면 갈무리 ⓒ SBS


유희열의 심사평은 다름 아닌 우씨에 대한 사과와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유희열은 "제가 잘못한 것 같네요. 오히려 예린양의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 내 눈이 어항이었다"라고 말했다. 해당 오디션 자리에서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유희열이 본인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을 떠올렸다.

"왜 대통령과 정부는 유희열처럼 쿨하지 못한 걸까?"  

최근 우리 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 문제' 협상을 두고 말들이 많다. 우리는 일본을 비판할 때 독일과 자주 비교하는데, 일본과 달리 독일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 그리고 현대사 역사 교육을 추진하는 등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쿨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쿨하지 못함'을 비판해 오던 우리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 쿨한 모습을 보이는가?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 달라"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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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투데이 방송화면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문제 협의 관련 "한일 관계 개선과 대승적 이해를 당부"했다. ⓒ MBC


지난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간의 협상이 타결됐다. '불가역적'인 합의로 마무리된 탓에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할 말을 잃은 상황이 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 내적으로는 앞으로 더욱 시끄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현재 제기되는 비판과 의문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있다. 대통령은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바란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오히려 우리 정부와 협상단 측은 '대승적 결단'을 자축한 분위기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애초에 정부는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를 두고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일본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는 듯했으나 이후 "관련단체와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때부터 소녀상 이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노력 없이, 독단적으로 얻어낸 협상의 결과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 달라'는 말은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는 '미흡한 점은 있으나 이것이 최선'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최선이야 다했겠지만 졸속협상, 독단적 태도, 소녀상 이전 문제 등 비난 여론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부터 한 다음에 이번 협상에 임한 정부의 입장을 국민에게 차분하게 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조금은, 그래도 지금보다 아주 조금은 상황이 낫지 않았을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쿨한 모습'은 늘상 그래왔듯 이번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관의 발언에서 몇 차례 '부족함'이 거론되긴 했으나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방점은 '대승적 결단', '미래를 향한 새 도약'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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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TV>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나눔의 집'을 찾은 임성남 외교부 차관의 모습. ⓒ 오마이TV


협상이 타결되고 하루가 지난 29일 오후, 임성남 외교부 차관은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할머니들의 쉼터를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임 차관에게 "일본 외교부냐"며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어서 "정부끼리 만나서 짝짜꿍 한 것 아니냐"며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려 하냐"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임 차관은 사과 없이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라는 말만 몇 번씩 반복했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아 시작된 대화. 임 차관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김복동 할머니는 다소 가라앉은 어조로 심경을 토로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협상을 하기 전에 우리들한테 의사를 물어 봐야 돼요"라고 말했다. 이에 임 차관은 "연휴 기간 중에 이런 여러가지 진전이 급하게 이루어지는 바람에..."라며 장황하게 사정들을 풀어 나가려다 또 다시 할머니들에게 혼쭐이 났다.

변명만 늘어 놓으려 할 뿐, 당사자인 할머니들께 미흡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하려는 모습이 안 보였기 때문에 더욱 비판받은 상황이다. 그 이후에도 할머니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이게 다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라는 식의 변명이 지나치게 길었던 터라 다른 말은 기억이 안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정부의 변명은 구구절절했고 반성과 사과는 쉽게 들을 수 없었다.

연예인도 하는 사과, 정부와 정치인들은 왜 못 하나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K팝스타 5>의 심사위원 유희열은 해당 무대에 오른 오디션 참가자들의 명운을 가르는 권위자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발언을 반성하고 참가자에게 사과했다.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가수 지망생에게 말이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지만, 유희열은 본인에게 잘못과 미흡함이 있었다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사과했다.

이렇듯 연예인도 본인을 돌아보며 사과하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왜 못하는 걸까. 이번 협상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너무 답답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역사 인식을 보인다는 아베 신조 총리를 상대로 진전된 표현을 이끌어낸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잘한 것도 잘못했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당 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면 정부도 그에 관해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앞으로 전개될 갈등을 안정시키는 데 더 낫지 않았을까.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정부는 노력했다고, 그것도 최선을 다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하다.

물론 유희열처럼 단 한 명의 학생에게만 사과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사과해야 할 상대는 우리의 할머니들,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모든 국민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문제를 합의한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드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 아닌가. 유희열이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 한 명의 가수 지망생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닌가.

사안을 두고 말이 많지만 위안부 문제 협상은 이미 처리된 상태다. 정부는 이제라도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께 미흡함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여야, 보수-진보 세력 간의 의견이 엇갈려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여당을 믿고, 보수세력의 여론을 등에 업고 한 발 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부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란다. 할머니들에게 더 많이 혼이 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이 문제로 사회가 갈라져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번 협상을 주도한 정부가 모든 여파의 책임을 지고 '쿨하게' 나서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며, 오히려 스스로 미화하려는 모습은 과거사 문제를 두고 일본이 자주 보이던 모습이지 않나.
#위안부 문제 #협상 #사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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