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3명, 그들의 '끔찍한' 증언

황금주·강덕경·문옥수 할머니가 전한 '일제의 만행'

등록 2016.01.01 15:59수정 2016.01.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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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회담을 마친 뒤 "위안부 문제가 최종·불가역적으로 해결됨을 확인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한·일 외교장관회담 합의의 주요 내용은 ▲ 아베 총리는 위안부로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사죄와 반성 ▲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이 10억 엔 출연 ▲ 국제사회에서 한·일 상호 간 비난·비판 자제 등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졸속 미흡 여론이 드높다. 나는 이 시점에 이미 고인이 된 세 분 위안부 할머니의 생전 증언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황금주(1927~2013) 할머니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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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횡금주 씨가 일본 나고야 집회에서 지난날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 이토다카시 / 눈빛출판사


어느 날 공장에 갈 직공을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고 어린 시골 처녀들이었습니다. 저도 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저는 깨끗한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갔습니다. 이때가 싱가포르가 함락되던 1942년 4월이었습니다. 함흥역까지는 조선인이 인솔했어요. 많은 여자들이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열차는 군용열차였고, 입구에는 헌병들이 지키고 있더군요. 게다가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기차 창문은 모두 검정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 우리를 실은 트럭은 캄캄한 밤중이 돼서야 어느 육군부대에 도착했습니다. 나중에 그곳이 '히노마루' 부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들어간 곳은 양옥 안의 조그마한 방이었는데, 안에는 좁게 칸막이를 해놨고, 모포 몇 장이 놓인 나무침대가 있었습니다. 헌병이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용변을 보러 갈 때마다 하늘을 보면서 '엄마도 이 하늘을 보고 계시겠지' 생각하고 눈물만 자꾸 흘렀습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에도 "도망칠 생각하는 거야!"라는 고함이 어김없이 들렸고, 심한 기합(얼차려)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착한 날은 불안과 피로 속에서 그냥 지나갔지만 다음날부터 우리는 군인들을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순결을 잃게 되면 죽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겁에 질려 있었으므로 처음 들어선 병사한테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군인은 대검으로 제 속옷을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20여 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의 성기조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병사들을 상대할 때마다 '똥이라도 먹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세탁과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생리 때에는 생리대가 있는 데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천을 훔쳐다 썼는데, 들키면 매를 맞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여자는 장교와 심한 싸움을 했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반항하다가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도 계속 반항하니까 그 장교는 벌거벗은 그 여자의 음부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을 일본인들이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일제강점기> 630~634쪽

[두 번째] 강덕경(1929~1997) 할머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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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미드키나에서 일본군과 함께 있다가 포로가 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 ⓒ 눈빛출판사


… 천막 속에는 1인용 목침대가 있어 여기에서 군인들을 상대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국부의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하루에'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후 이곳에서 약 4개월 동안 군인들을 상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이곳으로 끌고 온 '고바야시'만 상대했었는데, 사흘 뒤부터는 다른 군인들도 받게 됐습니다. 군인들은 매일 찾아왔고, 평일에는 4~5명 정도, 주말에는 10명 이상을 상대했지요. 주말만 되면 마치 사형집행일 같이 생각됐습니다.

어느 날 밤 저와 다른 여자 한 명은 모포를 들고 산이 있는 쪽으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웅덩이가 있었고, 보초 서고 있는 군인 몇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지고 있던 총을 옆에 놓고 우리에게 덤벼들었어요. 일을 끝낸 후 저는 아랫배가 너무 아파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 위의 책 618쪽

[세 번째] 문옥수(1924~1996) 할머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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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릴까? 하지만 이 할머니들의 대부분은 끝내 이 세상을 떠났다. ⓒ 눈빛출판사


… 제가 배속된 곳은 최전선인 만다레였습니다. 위안소 건물은 10명가량의 군인들이 와서 지었는데, 가마니로 칸막이를 해놓아서 키가 큰 사람은 옆방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방안에는 이불과 베개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위안소가 세 군데 있었고, 위안부는 모두 조선 여자들이더군요. 위안소에서는 아침 9시부터 일(?)을 했는데, 8시부터 일을 시작할 때도 있었습니다. 요금은 사병 1원50전, 하사관 2원, 대위, 중위, 소위는 2원50전, 대령, 중령, 소령 등 영관급은 3원이었습니다.

한 번 하는데 1시간씩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1시간 동안 여러 명의 군인들이 드나들었습니다.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군인들이 "야! 빨리 하고 나와, 빨리!"라고 재촉했기 때문에 병사들은 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일을 치르곤 했습니다.

사병들은 귀대시간이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 하고 돌아가야 했지만, 장교들에게는 시간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새벽 1시, 2시까지  위안소에 있다 가곤 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30~70명씩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군인들의 외출일이 부대마다 달랐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일같이 교대해 오는 그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조선인 군인, 군속들도 위안소에 오곤 하였습니다. 조선인 군속들은 '포로감시원'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들이 불쌍하다고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방 소독을 했고, 군의관이 와 검진을 했습니다. 임질 같은 병에 걸리면 입원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위안소의 자기 방에 누워 낫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 위의 책 624쪽

서독 수상의 진정어린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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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브란트 서독 총리. ⓒ 자료사진


한일 양국 외교장관의 발표문을 보니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를 대하는 일본 지도층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말장난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하늘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살아있는 할머니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용서를 할 수 있도록, 일왕을 비롯한 지도층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한다.

참고로 1970년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한 후 무릎 꿇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죄했다. 이로써 얼어붙은 유대인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용서는 진정한 참회에 뒤따르는 화답이다.  그래야만 한국과 일본은 화해 협력의 새 장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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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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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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