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들은 죽어야 한다던 아이들, 평화 말할까

[나의 평화교육 참관기]

등록 2016.01.05 21:02수정 2016.01.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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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의 시간은 내 머릿속에서 이제 많이 바래졌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2003년 그 해, 겨우 뜬 눈으로 아침을 먹으며 등교를 준비하던 내가 한 귀로 흘려듣던 TV뉴스에서는 '북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도 많이 들렸다. 다른 아이들의 아침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준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그 단어에 실린 알 수 없는 무게감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한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위에 앉은 반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핵이 뭐야? 그게 터지면 어떻게 되는데?" "옛날 일본처럼 되는 거야! 다 죽는 거지!" "북한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몰라! 진짜 미쳤나봐." "그럼 이제 우리나라 전쟁 또 나는 거야?" 그 토론 아닌 토론을 마무리했던 한 친구의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난 죽기 싫어!"

그때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었다. 책으로만, 수업으로만, 어른들의 말로만 듣던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들은 어린 아이 특유의 상상력을 매개로 끝없이 증폭되고 확장됐다. 그리고 그 때, 어른들의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전쟁'은 처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TV에서 남북이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상황이 나와도 눈 깜빡하지 않는 둔감한 성인으로 자라난 나는, 이제 작년이 된 2015년의 어느 가을날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 찾아갔다.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화교육에 대해 취재해 보겠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마침 평화기자단으로 몸담고 있는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진행하는 평화교육 수업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향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교문에 들어서 학생들이 열심히 체육수업을 받고 있는 운동장이 보이자, 묘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들어와 그날 평화교육 수업이 있을 2학년 반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작아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은 그 교실에, 아이들이 있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고, 신나게 더들고 놀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날 수업을 맡은 어린이어깨동무의 최혜경 사무총장이 수업을 시작했다.

그날의 평화교육은 최혜경 사무총장이 교실 앞에 앉은 한 아이를 불러 어깨동무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진정한 어깨동무는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라 서로의 키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것이 그날 최 사무총장이 40분의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전달한 이야기들의 가장 좋은 요약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보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수업을 들었다. 북한에 살고 있을 그들 또래의 편지들을 열정적으로 읽었고,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며 나누어 준 포스트잇엔 그에 대한 답장을 또 열정적으로 적었다. "그래, 좋아. 통일이 되면 같이 맛있는 국수를 먹자. 우리 집에 맛있는 국수가 있어"와 같은 답부터 귀여운 맞춤법 실수가 곁들인 "빨리 통일이 되어서 갔이 축구하자. 축구는 너희들이 하는 뽈차기를 말해. 통일되라"와 같이 말이다.

어린이어깨동무 최혜경 사무총장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날 수업은 최 사무총장이 교실 앞에 앉은 학생을 불러 어깨동무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이나은


하지만 항상 모범적인 답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PPT 화면이 지나가자, 한 아이가 크게 외쳤다. "북한 애들은 다 죽어야 해요!" 나는 채 10살이 되지 않은 아이의 말의 수위에 많이 놀랐는데, 최 사무총장은 침착하게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평화교육을 진행하다보면 학생들이 더 심한 수위의 말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최 사무총장은 말했다. 이 아이들의 말은 분명히 틀렸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그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평화교육이 통일교육, 더 나아가 북한에 관한 '사상' 교육으로 연결되기 쉬운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평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그것을 가르치는 어른들에 따라 너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주류의 평화통일 교육은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보다는 전쟁의 상흔과 참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다소 게으른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장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총을 만지고 탱크를 타보는 것으로, 북한 주민들이 고문을 받는 재연 영상을 보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이들에게 전염된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이날의 평화교육에서처럼 적어도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라는 감정을 상기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저 곳에도 우리 같은 아이들이 살고 있어. 축구도 하고, 국수도 먹고, 숙제를 하지 않아 부모님께 혼도 나는 아이들이.

아이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 이나은


   

한 학생이 북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답장을 열심히 쓰고 있다. ⓒ 이나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쉬는 시간에, 그날의 평화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간단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전쟁이 왜 일어났어야 했는가, 또 왜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어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결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고,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갈 것이다.

"북한 애들은 다 죽어야 해요!"라고 호기롭게 외치던 그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 학교의 평화교육은 아이들에게 어떤 실마리들을 던져줄 수 있을까. 나는 감히 바란다. 그것이 단순히 그 옛날 내가 상상하고 두려워했던 알 수 없는 공포가 아니기를. 그리하여 이 아이들이 그 공포감과 무력감에 지쳐 오히려 전쟁과 폭력에 둔감해지지 않길. 현명한 방식으로 그것들에 저항할 줄 아는 예민한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아이들의 답장 ⓒ 이나은


덧붙이는 글 어린이어깨동무 대학생 평화기자단 NEWPEACE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평화교육 #통일교육 #평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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