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없는 맞벌이 여성과 쌍둥이 워킹맘의 연말정산

[주장] 자녀를 낳으라는 정책에 역행하는 세제 혜택... 가사 서비스 양성화 필요하다

등록 2016.01.15 17:49수정 2016.0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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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오늘은 2016년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열리는 날이죠. 저 역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로 서류를 챙기고, 인터넷을 통해 연말정산 예상 조회를 해봐야 할 텐데요. 2월 한 달치 월급을 거의 추징당했던 2015년 연말정산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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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사이트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사이트 ⓒ 이나연


노키즈 맞벌이 부부의 아내 vs. 쌍둥이 남매 워킹맘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고 같은 해 승진해서 같은 직급=같은 연봉에 머무는 두 과장의 2015년 연말정산을 비교해봅니다.

▲ 노키즈 맞벌이 부부의 아내 - 40세 과장 A씨
- 소비 특징 : 1년에 2회 장기 해외여행
- 카드 총 사용액 : 약 3000만 원

▲ 쌍둥이 남매 워킹맘 - 41세 과장 B씨
- 소비 특징 : 아이들 유치원·학원 교육비 비중이 큼. 연중 휴가는 아이들 돌봄(기관 방학, 학부모 참여수업, 병원 등)로 소진. 유일한 휴식은 2박 3일 제주도 여행
- 카드 총 사용액 : 약 3000만 원

→ 2015년 연말정산 후 징수된 세금이 동일.

이미 납부한 세액이 동일하고, 추징 대상 세금이 같아 2월의 월급은 세금을 제외하고 나니 10만 원이 채 안되더군요.


세금 부문에선 혜택이 하나도 없는 워킹맘의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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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육아 워킹맘육아 ⓒ pixapay


위 사례에서 쌍둥이 남매의 워킹맘 과장 B씨는 접니다. 2015년 상반기 저는 당장의 생활고로 세금을 3개월간 분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상반기 내내 현금 부족에 시달린 저는 급기야 3월 쌍둥이 남매가 유치원에 학기 초에 내야 하는 각종 현금성 경비를 부담하느라 보험 하나를 분할 인출하고 맙니다.

자녀 공제는 남편 쪽으로 신청했고, 자녀 외에는 부양가족이 없어 남편이나 제가 연말정산의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나마 자녀 공제가 있는 남편은 2015년의 연말정산으로 대략 30만 원쯤 돌려받았습니다.

노키즈 동년배 맞벌이 여성보다 가사 노동의 볼륨은 두 배가 넘고 육아를 해야 하는 부담에 친정엄마까지 동원하는데, 세금 부문에서도 혜택이 하나도 없는 연말정산을 보며 아이를 왜 낳고 키우는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혜택은커녕 남편이 환급받은 30만 원의 세금도 그간 월급에서 공제됐던 세금을 돌려받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연말정산 때마다 언론은 자녀가 있는 가정과 자녀가 없는 가정의 소득공제를 비교해 화려한 표로 제공하는데, 실제와는 큰 괴리가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수요자 입장에서 시행돼야 할 정책들

쌍둥이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엄마는 오전 7시~9시(낮 시간은 유치원)와 오후 5시~먼저 퇴근하는 부부의 도착까지 돌봄을 하고 계십니다. 점점 활동성이 높아지는 아이들은 학원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3일은 오후 6시에 집에 돌아오도록 조정하고, 친정엄마가 저희 집 가사는 신경을 안 쓰시도록 주 2회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친정엄마께 육아 도움을 받고 있지만 최대한 활용 가능한 서비스는 모두 이용하려고 애쓰고 있죠.

그러나 종일반이나 오후 5시까지 유치원에 머물게 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의 일부와 학원비 같은 대표적인 교육비뿐만 아니라 친정엄마께 자녀 돌봄으로 매월 150만 원의 용돈, 가사도우미 서비스로 지출되는 매월 40만~50만 원의 비용 등은 저희 가구의 지출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지원하는 대책은 수요자 입장에서 시행돼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현금 흐름에 대한 정부의 세제 정책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음성적으로 기관에 지급하는 현금성 경비, 돌봄, 가사도우미 시장을 양성화하기만 해도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경제 흐름을 투명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이 커다란 벼슬이라거나 무슨 혜택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테지만, 일만하는 사람과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정부의 세금 혜택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생각됩니다.

육아를 하는 것은 자식을 낳아 얻는 삶의 기쁨이라는 측면 외에 국가를 위한 다음 세대의 일꾼을 키워나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가정이 지닌 육아의 기능을 가정의 측면(수요자) 이 아니라 기관(공급자)의 입장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한때 절대 손주는 돌봐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할머니들 사이에서 돌았었죠. 체력적으로 노화가 일어나는데 육아가 결코 쉬운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의 이면에는 육아나 가사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점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힘든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돌봄과 가사도움에도 세금을 징수한다면?

돌봄(손주를 돌보는 일 포함), 가사 도움 등도 공식적인 일로 인정하고 세금을 징수하면 늘 적자에 시달리는 정부의 재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테고, 그간 자원봉사 격으로 여겨졌던 조부모의 손주 육아가 월급을 버는 일이라고 인식하게 돼 조부모의 손주 돌봄이 확산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제 상황의 변화로 이른 퇴직이 만연한 시기에 자녀의 자녀를 돌보는 일을 양성적으로 지원한다면 자녀의 사회생활을 도우며 손주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두 가지 보람을 낳을 수 있는데요.

어느 맘 카페에서 한 워킹맘이 제시한 교포 돌봄 아주머니에게 한 달에 19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글에 "그런 자리라면 회사를 관두고 내가 가서 아이를 돌보고 싶다"는 덧글이 수십여 개나 달린 것을 보면 회사를 그만둔 50대 부모님들이 손주를 돌보며 자녀의 사회생활을 지원하는 역할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용의 지출이 모두 세금 공제가 돼 워킹맘의 직장 생활을 지원해준다면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워킹맘에게 1년에 한 번쯤은 환급된 세액이라는 기쁨을,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업맘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직장 생활의 유지 혹은 재취업을 지원해주는 도구의 하나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수요자 입장에서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들이 산재해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산적해있는 법안들을 밥그릇 챙기느라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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