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도 못한 재벌개혁, 이 사람이 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 네 번째 이야기

등록 2016.02.01 12:26수정 2016.02.0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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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 SBS


경제적 지배층의 붕괴 없이 세상이 바뀌는 예는 없었다. 가까운 사례인 1945년에도 그랬다. 한국 경제를 움켜쥔 일본 식민지배세력이 미군 제24군단에 쫓겨 현해탄을 급히 건너지 않았다면, 한국 역사가 새롭게 쓰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시대인 고려 말에도 그랬다. 이 시대 변화를 선도한 정도전은 고려왕조의 정치 시스템보다도 경제 시스템을 훨씬 더 세게 타격했다. 그랬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이 공격한 경제 시스템은 요즘 말로 하면 재벌 체제나 다름없다. 재벌이란 용어가 한국에서만 사용되고 영어로도 'chaebol'로 표기된다 하여, 이런 집단이 이 시대 이 땅에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구체적 존재 양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경제력을 배경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정도전 시대의 재벌은 대한민국 시대의 재벌만큼이나 골치 아픈 존재였다. '권력 있는 가문이자 세력 있는 족속'이란 의미로 권문세족이라 불린 이들은 생산수단인 노비와 토지를 문어발식으로 확보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팽창함은 물론이고 국가 재정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암적인 존재였다.

자유계약 노동자인 머슴이 대규모로 등장한 18세기 이전만 해도, 노동자의 일반적인 모습은 노비였다.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자유계약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평생 한 주인을 위해서만 복무해야 하는 노비가 18세기 이전 노동자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권문세족은 이런 노비를 최대한 확보할 목적으로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중 하나는 좀 나쁘게 말하면 미인계였다.

노비에 관한 법령 중에는 '어머니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로 삼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권문세족은 이를 악용했다. 고려시대 사회실상을 고발한 조선 태종 14년 6월 27일자(1414년 7월 13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권문세족은 휘하의 여자 노비들이 여러 명의 남자들과 교제하도록 부추기고 거기서 아이가 생기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생긴 아이를 자기 노비로 들일 목적이었던 것이다.


권문세족은 자기 휘하의 여자 노비가 다른 가문의 남자 노비나 일반 양인(자유인) 남성과도 교제해 어떻게든 더 많은 아이를 낳기를 희망했다. 사내 연애뿐 아니라 사외 연애를 활용해서라도 '기업 팽창'에 기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들의 탐욕은 사람뿐 아니라 땅으로도 향했다. 이들이 노비뿐만 아니라 토지까지도 미친 듯이 모아들였다는 점은 국사 교과서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 남의 토지를 빼앗아 자기 토지로 만드는 토지겸병이란 용어도 국사 시간을 통해 우리 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이들이 탐낸 토지를 우리 시대의 토지와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농업경제시대에는 거의 모든 경제력이 토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토지를 보는 관점으로 그 시대의 토지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업경제시대의 토지는 부동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농업을 경영한 권문세족은 지금의 대기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므로 토지에 대한 이들의 권리 속에는 지금의 회사 주식이나 지분과 같은 성격의 것이 들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농업경제시대의 토지는 우리 시대의 부동산과 회사 지분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토지를 마구잡이로 겸병하는 권문세족의 행태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지분까지 무분별하게 인수·합병하는 행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비뿐 아니라 토지까지 거의 다 권문세족의 수중에 들어가서 서민경제는 물론이고 국가경제까지 마비될 정도가 된 게 고려 말 정도전 시대의 실정이었다. 지금의 양극화가 그 시대에도 극심했던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김명민 분). ⓒ SBS


정치보다 경제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 정도전

정도전은 이런 실상을 뜯어 고치고자 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면 그런 문제부터 일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개혁가들은 정치개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만, 정도전은 정치보다는 경제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구상을, 정도전은 이성계가 공동정권의 리더가 되는 순간부터 실행에 옮겼다. 1388년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쿠데타, 위화도 회군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해서 연립정권이 꾸려진 직후부터 정도전은 이성계를 움직여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날은 음력으로 고려 우왕 14년 5월 22일(양력 1388년 6월 26일)이고, 임금인 우왕과 정권 실세인 최영을 제압한 날은 같은 해 6월 3일(1388년 7월 6일)이다.

옛날 사람들은 경제나 재정에 관한 사항을 식화(食貨)라고 불렀다. <고려사>에도 그런 내용을 다룬 부분이 있다. 바로 <고려사> 식화지다. 이 부분에 따르면, 정도전은 우왕 14년 음력 8월부터 양전이라고 불린 토지측량사업을 개시했다. 권문세족의 토지소유를 해체할 목적으로, 달리 말하면 그들의 부동산 및 회사 지분을 몰수할 목적으로 양전 사업을 실시한 것이다. 공동정권을 잡은 때는 음력 6월이고 양전을 시작한 때는 음력 8월이다. 권력을 잡은 지 불과 2개월 만에 권문세족의 힘을 빼기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정도전의 토지개혁, 아니 재벌개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았다. 정권을 잡은 지 2년 만인 1390년 하반기에 그는 토지 소유권에 관한 문서들을 죄다 소각하는 데 성공했다. 국유 토지는 물론 개인 토지에 관한 문서까지 죄다 소각해버린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및 회사 지분에 관한 증명서류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다.

최근 <육룡이 나르샤>에도 이 장면이 방영되었다. 불에 탄 문서들을 보며 환희에 넘친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방원(유아인 분)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다. 고려사 축약판인 <고려사절요>에서는 개경 시내의 시장 거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권문세족 몰락의 쇼를 연출했던 것이다. "불길이 며칠 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라고 한다.

고려왕조를 지탱하던 권문세족들의 재산 문서는 1390년에 죄다 불타버렸다. 고려 체제를 지탱하던 근간이 그렇게 사라졌으니, 고려는 곧 망할 수밖에 없었다. 1392년, 새로운 토지소유권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이성계·조민수 공동정권이 수립되고 나서 조선이 건국되기까지는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은 정도전의 전광석화 같은 경제개혁, 재벌개혁 때문이었다. 개혁 대상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정도전의 KTX급 재벌 초토화 전략으로 권문세족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무너지고 말았다.

정도전은 경제는 그냥 놔두고 구체제의 껍데기인 정치만 개혁하려는 일반적인 개혁가들과 달랐다. 그는 구체제의 본질을 곧바로 건드렸다. 경제만 놔두고 정치만 개혁하려 했던 수많은 개혁가들은 경제적 지배세력으로부터 의외의 일격을 받고 무너지는 예가 많았다. 하지만, 정도전은 처음부터 경제적 지배세력부터 집중 공격함으로써 그들에게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정도전의 집터가 있었던 광화문광장 동쪽 뒤편. 오늘날에는 종로구청과 종로소방서 등이 있다. ⓒ 김종성


김대중·노무현도 못한 재벌개혁

정도전식 개혁은 1997년 및 2002년에 등장한 대한민국 시대의 개혁정권들과 비교해도 독특한 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결같이 재벌개혁을 외치며 출범했다. 하지만 두 정권은 정치적 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들의 경제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일례로, 김대중 정부는 취임 초기에 "우리나라에 재벌이란 말이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며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공언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실패했다는 점은 재벌개혁의 상징인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에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출총제는 30대 재벌 그룹이 회사 자산의 일정액 이상을 사용해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전두환 정권 때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출총제 규정을 IMF 위기극복의 명분으로 폐지한 때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국정을 장악한 때인 1998년 2월이다. 그때까지 등장했던 정권 중에 가장 개혁적인 정권이 재벌개혁을 원위치 시켜 놓은 것이다.

출총제 폐지로 인한 문제점이 다시 불거지자 김대중 정권은 2001년 4월 이 규정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경제하기 어렵다'는 재벌들의 압력을 못 견디고 그 해 11월 출총제의 예외를 대폭 인정함으로써 이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이에 대해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부가 재벌과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세에 굴복했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개혁정권들도 재벌개혁만큼은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개혁정권들은 정치개혁에는 과감하면서도 재벌개혁에는 소극적인 편이다. 결국에는 소극적인 재벌개혁으로 인해 정치개혁마저 실패해온 게 대한민국 개혁정권들의 역사다. 

이에 비해 정도전은 처음부터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정치개혁은 세게 하고 경제개혁은 약하게 하는 여타의 개혁정권들과 달리, 그는 경제개혁을 초고강도로 전개함으로써 경제적 지배세력이 개혁을 무산시킬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정도전의 접근법은 결국 주효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4년 만에 권문세족 개혁은 물론이고 구체제의 문제점을 일소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의 실태를 보면 5년은커녕 50년이 흘러도 힘들 것 같은 일을 그는 불과 4년 만에 해치우는 데 성공했다.
#육룡이 나르샤 #재벌개혁 #경제개혁 #출총제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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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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