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세탁 900원', 쉽게 맡길 수 없는 까닭

[말없는 약속 20년 56] 아무리 싸도 가랑비에도 옷은 젖으니까

등록 2016.02.03 16:25수정 2016.02.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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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관리도 능력입니다."(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덕이가 조립을 앞둔 자전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지낸지 2주일이 됐을 때였다. 덕이는 자전거를 조립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겼던지 퇴근하면서 공구 세트를 사왔다. 그날 밤부터 퇴근후 저녁식사 후에는 조립하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고 열심히 뭔가 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 오후 11시에 말 대신 덕이로부터 문자를 하나 받았는데, 그곳에는 조립이 완성된 자전거 사진이 있었다. 완성한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 자전거의 손잡이 부분 방향이 바뀐 것 같아 보였으나 일단 덕이의 자전거 조립 완성을 칭친해줬다. "수고했어"라고 답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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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우리에게 꽤나 효과적인 운동이었다. ⓒ pixabay


그 주 토요일, 덕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더니 자전거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창문 사이로 덕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전거가 덕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움직였다. 그때서야 내 생각에 손잡이 방향이 잘못된 것 같던 의문이 풀리면서 내 마음도 덕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덕아~ 자전거 타는 모습이 멋지다"라고 말해주자 덕이는 씨익 웃었다.

이렇게 덕이는 본인의 건강을 위한 운동 영역까지 도달했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한다. 나 또한 다른 운동보다 자전거 탈 때 가장 운동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행히 규칙적인 일과 중 일어나고 잠드는 시간은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었다. 아침에는 정확히 오전 6시에 일어나고, 오후 11시 30분 정도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덕이에게 까다로울 수 있는 '복장'과 관련된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출근 복장과 정장 복장이 다른데 출근 복장은 근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 덕이에게 편리하고, 근무하는 곳의 온도는 17℃ 정도니까 긴팔에 보온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장을 입어야 할 때 넥타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몇 번 연습을 해봤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주중에 한 번, 그리고 토·일요일 이렇게 세 번은 입어야 할텐데.


그러던 어느 날, 덕이와 세일하는 옷을 사기 위해 쇼핑몰에 들렀다. 덕이는 넥타이들이 진열된 곳, 그것도 지퍼로된 넥타이 앞에서 멈춰 섰다.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 있다. 점원은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없었지만 나는 덕이에게 '왜 서있니?' '맘에 드는 넥타이라도 있니?' '다른 곳으로 가자'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덕이 옆에 서 있었다.

기다림, 그것은 큰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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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는 매는 넥타이보다 지퍼가 달린 넥타이를 선호했다. ⓒ pixabay


덕이를 지도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 덕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 가능하면 내가 먼저 말하지 않고 기다려줌으로써 덕이의 생각·의도 등을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러면서 우리는 기다림의 훈련을 하게 됐다. 그 결과, 기다림이란 한 사람 특히 청소년이나 발전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겐 그 이상의 스승이 없음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나는 덕이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생각을 담아 말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게 됐다. 나 또한 '인내'란 큰 이득을 얻은 것이다. 한참 동안 망설이더니 덕이가 내게 한마디 한다.

: "고모~.  나 그냥 지퍼로 올리고 내리는 넥타이 할래."
고모 : "음…. 덕이가 요즘 일주일에 세 번 넥타이 매는 것에 신경이 쓰이나 보다."
: "응. 안하고 싶어."

나는 덕이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퍼달린 넥타이도 몇 개 고장이 났다. 왜냐하면 지퍼 옆에 옆천이 밀착돼 있을 때 지퍼를 그냥 쓱 올리려다 고장난 경우다. 지퍼가 달린 그 넥타이는 수선을 해주는 브랜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렸다. 그리고 지퍼 달린 점퍼 두 벌 역시 고장났었으나 다행히 지퍼를 새로 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덕이는 아무리 추워도 점퍼를 입을 때 앞 지퍼를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덕이가 원하는 지퍼로 된 넥타이 하나는 사기로 했다.

나는 그 이후로 덕이 작은 아빠에게 "덕이 넥타이 매는 법을 제대로 정확히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고, 작은 아빠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왔다. 마음 먹고 온 덕이 작은 아빠는 덕이가 넥타이를 제대로 맬 수 있을 때까지 차분하게(원래 성품이 온순해서 오늘날까지 누구에게도 화내는 모습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설명해주면서 덕이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다. 그날 이후로 제법 넥타이를 잘 매는 편이다. 이렇게 갈 길이 멀어 보여도 한 가지씩 계속 이루다 보면 될 거라는 희망이 보인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기관리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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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와이셔츠를 세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 pixabay


이제는 와이셔츠를 빨고 다리는 과정이다.

고모 : "덕아~ 와이셔츠 가지고 나올래?"
: "왜?"
고모 : "빨아야 할 것 같은데?"
: "괜찮아."
고모 : "푸른색 와이셔츠 네 번 입었는데~ 아마도 목 주위가 깨끗하지 않을걸?"
: "괜찮아."

내 생각에 무턱대고 "괜찮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덕이는 자기에게 그 셔츠를 직접 빨아보도록 내가 말할 걸 알고 있는 게다.

고모 : "아마도 너가 눈치 챘을 것 같은데 맞아~. 그 셔츠를 너가 직접 빨아보고 다리는 과정을 해볼 거야."
: "안하고 싶은데."
고모 : "그럼 언제 해볼까?"
: "세탁소 갖다주면 돼!"

덕이는 집 우편함이나 현관문 밖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잘 살펴보는 편이다. 그중에서 세탁소 전단지를 덕이가 본 것이었다. 거기엔 셔츠 한 장 드라이클리닝 값이 900원이었다. 언제 이렇게 저렴해 졌는지…. 셔츠 정도는 스스로 세탁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내 원칙이 흔들린다. 아마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 원칙이 흔들릴 때가 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한달 수입·지출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기 때문에.
#인터테이먼트 #청소년 #복장 #세탁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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