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뒤끝', 유통기한이 없다

[取중眞담] 김종인 축하 난 거부 사태로 다시 본 박근혜식 '뒤끝 정치'

등록 2016.02.03 07:22수정 2016.02.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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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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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회 국무회의에서 민생안정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법안들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인이 된 유수호 전 국회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악연으로 유명하다. 1973년 운동권 학생을 석방했다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비판하며 법복을 벗어 던졌다. 악연은 대를 잇는 것일까? 그의 차남인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법 파동으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혔다.

아버지와의 악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과의 악연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유 전 의원의 장례식에 그 흔한 조화하나 보내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뒤끝 작렬'이라며 박 대통령의 옹졸함을 성토했다.

"왜 그때 그년, 이년 그러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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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뒤끝' 유통기한은 꽤 길어 보인다. 쉽게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둔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5자 회동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박 대통령은 회동이 끝난 후 청와대를 나서는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붙잡고 "왜 그때 (저보고) 그년, 이년 그러신 거예요?"라고 뼈있는 농을 던졌다. 이 원내대표는 무척 당혹스러워 하며 "아이고, 뭐 그땐 죄송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얼버무렸다.

2012년 8월 당시 이종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 돈 공천 파문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도가 지나친 표현을 썼다.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파래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라고 적은 것.

3년 전 대선 때 얘기를 끄집어내 갑작스러운 '일격'을 가한 박 대통령의 뒤끝에는 '한'이 서려 있다. 후에 이 뒷얘기를 전해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나도 당황스러운데 이종걸 대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나"라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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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3일 광주광역시 서구 금화로 광주 유니버시아드 주경기장(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회식에 참석, 정의화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참석자들과 함께 앉아 있다. ⓒ 연합뉴스


뒤끝 형태도 다양하다. 가장 많은 사례가 '무시하기'와 '거리두기'다.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이 광주유니버시아드 개막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에게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행정부의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행사장에 입장했다가 나갈 때까지 김 대표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에 김 대표는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네…"라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먼저 다가선 정 의장과 간단히 악수를 하긴 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한번 뵀으면 좋겠다"라는 요청에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청와대는 '5개 중견국가협의체'(믹타·MIKTA) 국회의장 접견 자리에 정작 주최자인 정의화 의장을 부르지 않았다. 외교적 결례가 분명했지만, 박 대통령의 '국회법 뒤끝'은 계속됐다.

지난해 3월 청와대가 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와의 회동 다음날 문 대표의 '경제실패론'을 정면 반박한 것도 '뒤끝 작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회동 자리에서 문 대표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지 않고, 회동이 끝난 다음날 청와대 경제수석이 낸 자료를 통해 비판을 가한 것은 회동에 대해 찬물을 끼얹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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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 10일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2차 TV토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통령 뒤끝 정치의 최대 희생자는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전 대표가 아닐까? 2013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는 순간 많은 이들은 2012년 12월 4일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떠올렸다. 당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이정희 진보당 대선후보의 거침없는 발언에 박 대통령은 토론회 내내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토론회 직후 SNS에는 이정희 전 대표의 안위를 걱정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실제 2년 만에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둔 2013년 11월 당시 문희상 민주당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을 겨냥해, "(일련의 사태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뒤끝 행사라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국민의당 창당대회에 놓인 박근혜 축하 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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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난' 7시간만에 청와대로 더불어민주당 비서실장 박수현 의원이 2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 할 난화분을 들고 있다. 이 난은 오전에 박 대통령의 생일 축하를 위해 전달하려고 했으나 청와대로 부터 거절 당했다. ⓒ 이희훈


박근혜 대통령이 2일 더불어민주당에서 보낸 자신의 생일축하 난을 거부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이 보낸 축하 난은 국회로 되돌아왔다가 7시간 만에 다시 청와대로 가는 '수난'을 겪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는 등 대선 승리를 도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 취임 후 경제민주화 후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고, 최근 더민주에 '입성'까지 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는 충분히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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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국민의당 창당 축하 화환 2일 오후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창당대회 행사장 앞에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놓여 있다. ⓒ 유성호


재미있는 것은 이날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창당대회에 박 대통령의 축하 화환이 놓였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거를 도왔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이날 국민의당 합류를 결정했는데도 말이다. 간혹 박근혜 대통령의 뒤끝도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뒤끝 자체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있는 사사로움과 원한이 국정 현안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박 대통령이 주력해야 할 것은 국민에게 약속한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한반도평화 실현 등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뒤끝 작렬'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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