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 조응천, 과거는 묻지 마라

천하통일 위한 인재, 중요한 것은 과거 아니라 신념

등록 2016.02.08 19:29수정 2016.02.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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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수였던 A는 자신의 계책이나 제안이 지휘자에게 전혀 먹히지 않자 도망쳐 나와 상대 국가로 귀순한다. 그곳에서 친구의 적극적인 천거를 받아 대장군의 자리에 오르고, 이후 5개 제후국을 평정한다. 결국 귀순한 국가의 가장 큰 적국이자 자신의 원소속 국가를 멸망시키는 데에도 큰 공을 세운다.

#2. B는 본디 다른 나라 태생이지만, 천거를 받아 C국가에서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은 이론을 실제로 사용하여 당시 중원의 패권 국가를 평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공을 세운다. 이후 C국가의 왕이 이상해지자 잠적했다.

#3. D는 C국가에 인접한 국가의 인재 모집 공고(?)를 보고 그 수하에 들어가 재상이 되어 약소국이었던 나라를 일으키고 왕의 모든 행동을 조언했다. 결국 왕은 C국가에 당한 굴욕에 대해 복수한다. 그러나 이후 왕이 자신을 죽일 것으로 염려되자 잠적해 다른 나라에서 재상을 지내다가 다시 잠적했다고 전해진다.

A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무신 한신이고, B는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 C는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 D는 월나라의 범려다. 한신은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 무신으로 꼽힌다. 손무는 당대 최고의 병법가임은 물론, 그가 쓴 <손자병법>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는 고전이다. 범려는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의 구천을 보좌하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약소국이었던 월나라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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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초한전기>에서 나온 한신의 모습 ⓒ 드라마 초한전기


한신, 손무, 범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줄 군주를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한신은 항우 밑에 있다가 유방에게 갔으며, '천하를 쥐고 싶지 않다면 나를 죽여도 좋다'는 호언장담 끝에 공을 세운다. 손무는 당시 오나라의 왕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2명을 죽임에도 합려가 자신을 내치지 않자 합려를 따라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다. 범려는 자신의 왕 구천에게 오나라 왕의 똥을 먹고, 복수심을 갈기 위해 쓸개를 핥으라고까지 간언하고, 그가 그 말을 따르자 구천을 끝까지 보위해 그가 월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래 있던 국가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했으며, 상대 국가로 전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철새'라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라는 비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해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중국 삼국시대에는 관우가 다른 나라에서 유비군으로 들어온 황충이 자신과 같은 '오호대장군'의 칭호를 받았음에 공분하자, 비시가 한신을 예로 들며 '임용하는 인물에게 한 가지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며 관우를 설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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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은 기억하고 있다. 황충은 죽을 때까지 유비를 위해 싸우다 죽는다. ⓒ 중국 드라마 <삼국지> 80화 캡처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인물이 자신이 가진 철학을 끝까지 밀고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그가 거처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신념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 자체가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전의 자리에서 하던 행동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단순히 권력만을 좇거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의 신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신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을 두고, '보수 진영'의 인사였다는 사실 자체로 인물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다. 김종인 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예가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꿈꾸고 주장하느냐다.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학자로서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조응천 전 비서관은 법조인 출신으로 이번 입당 기자회견에서도 '사회정의 실현'을 이야기하며 중도(中道)를 강조했다. 이들의 지향점이 더불어민주당이 그리는 모습이나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맞닿아 있다면, 과거에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만으로 그들을 단죄하고 평가하는 것은 인재를 잃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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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손무가 초강대국 초나라를 격파하고, 범려가 그 초나라를 무찌른 오나라를 평정한 것, 그리고 훗날 한신이 수많은 제후국을 평정하고 항우를 무찌른 것은 그들에게 과거를 묻지 않고, 그들의 능력과 신념을 믿고 중책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과거에 어디 있었느냐'라는 질문으로 그들을 잘라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는 그가 과거에 어디 있었느냐는 기준은 우선이 아니다. 그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고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콧대 높던 관우 역시, 결국은 '다른 곳'에서 온 황충을 찾아가 황충이 오호대장군에 속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자신의 판단이 어리석었음을 사과했고 황충은 죽는 날까지 유비를 위해 공을 세웠다. 인재에게 보내야 할 것은 과거행적 '묻기'가 아닌 '신뢰'다.
#한신 #손무 #최효훈 #범려 #인재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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