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명함 떼고 택배 상하차 해봤더니...
도망가고 싶었다, '추노'는 팩트였다

[현장 12시간] 16시간 30분만에 우겨 넣은 빵, '헬조선'의 근로계약서는 휴짓조각

등록 2016.02.07 17:09수정 2016.02.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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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취재와 짧은 기사가 미덕인 이 시대 저널리즘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저는 천천히, 차근차근, 깊숙이 현장을 기록하려 합니다.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 현장을 지키려고 합니다. 제 글은 짧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을 쓴다면, 여러분은 이를 허투루 넘기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3일 오후 퇴근 시간을 앞둔 사당역 4번 출구 앞. 이곳 버스정류장은 안양·수원 등지로 출발하는 광역버스 노선의 기점이다. 많은 시민이 줄지어 버스를 기다린다. 그곳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수십 명의 남성이 모여 있다. 대부분 앳된 20대 대학생으로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에다 운동복에 파카를 걸친 모습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기자 역시 비슷한 차림새였다.

"모이세요."

한 남성이 외쳤다. 인력 관리 직원일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15명가량 모였다. 바로 옆에서도 수십 명의 남성이 또 다른 관리 직원을 중심으로 모였다. 관리 직원은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우리에게 건넸다. 시급은 6030원. 올해 최저임금이다.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신분증과 함께 관리 직원에게 냈다. 곧 관리 직원의 조용한 으름장이 이어졌다. 

"힘들다고 그냥 가시면 안 돼요. 다른 분들 일자리 뺏는 거예요."

'도망가지 말라'는 뜻이다. 앞서도 '업무를 끝날 때까지 해야 급여가 지급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긴장감 탓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오늘 할 일은 밤샘 택배 상하차다. 설 연휴가 코앞이니, 하루나 며칠 짜리 초단기 알바생을 구하는 택배 회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오전에 연락했더니, 바로 '일하러 오라'는 답을 받았다. '지옥의 알바'에 선뜻 지원할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택배 상하차를 할 바에는 차라리 막노동을 하라'는 권유가 많다. '도중에 도망자가 속출한다'는 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한 택배 회사의 물류터미널에 내리자 나도 모르게 인근 아파트단지에 눈길이 갔다.

'저쪽으로 도망가면 되겠네.'


[밤 12시] 중도 포기를 막기 위한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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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택배 상하차·분류 작업이 한창인 한 택배회사의 물류터미널 ⓒ 선대식


터미널 안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롤러코스터처럼 1~3층 곳곳으로 이어져 있다. 1층 벽에는 택배를 내리거나 싣기 위해 컨테이너나 화물차 짐칸과 연결되는 문이 줄지어 설치돼있다. 내가 배치된 곳은 5번 라인. 문이 열리자,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택배 상자와 마주했다. 할 말을 잊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대학생 김준수(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반장의 지시로 작업이 시작됐다. 다행히 소형 택배 상자나 조그마한 의류가 든 택배 봉투였다. 초반에 이를 컨베이어 벨트에 옮기는 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수량이 수천 개나 된다는 거다. 최소 수백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펴야 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땀이 나 파카를 벗었다.

마지막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에 싣고 나니,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작업반장이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라"고 했다. 휴게실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준수씨는 내게 "정말 힘드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힘드네요"라고 답했지만,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휴게실 의자에 앉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여기서 뭐 해? 왜 안 와"라는 호통이 들렸다. 또 다른 작업반장이다. 5번 라인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탓에 택배 분류 일을 맡았다. 업무량이 많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다시 호통이 들렸다.

"야. 내 말이 안 들려! 여기로 안 와?"

5번 라인엔 화장품 상자 더미가 내 키보다 더 높게 쌓여있었다. 손을 뻗어야 꼭대기에 있는 상자에 손이 닿았다. 그렇게 수천 개의 상자를 날랐다. 팔다리는 내 의지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도 포기를 막기 위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고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비우는 것이다. 무념무상. 기계처럼 일했다.

[새벽 2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두 번째 택배 하차 작업을 끝냈다. 새벽 2시였다. 파김치가 됐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또한 땀이 식으면서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다시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쉬는 시간, 준수씨와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준수씨는 2주 뒤에 입대한다. 그는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초단기 알바인 명절 앞 택배 상하차에 나섰다고 했다. 그는 원래 이틀 일하기로 회사에 얘기해놨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일인데, 제가 왜 이틀 일한다고 했을까요."

사실 내가 이날 하루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는 건,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대다수 청년은 연애·결혼 등 많은 걸 포기하면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헬조선'이라 불릴 정도로 청년들에게 가혹한 대한민국에서도 지옥의 알바를 선택하는 이들의 사연은 남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알바생들과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각 라인은 따로 작업한다. 서로 작업시간이 다르니 쉬는 시간도 다르다. 사실 쉬는 시간이 겹쳐도, 대화를 나눌 정도의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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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택배 상하차·분류 작업이 한창인 한 택배회사의 물류터미널. ⓒ 선대식


[새벽 4시] 스르륵 눈이 감기다

세 번째 하차 물건은 작은 상자나 택배 봉투가 가득 담긴 자루였다. 지금까지 나른 택배보다 훨씬 무거웠다. 근력의 한계를 느꼈다. 내가 가진 팔 근육으로 자루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무릎까지 사용해서 자루를 겨우 밀어 올릴 수 있었다. 몇 번을 옮기고 나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결국 중도 포기를 떠올렸다. '내가 이 자루를 옮기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진땀이 났다. 스스로 포기하고 도망가든 택배 회사가 나를 내보내든 둘 중 하나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몸이 한계를 느끼니, 두통이 시작됐다.

다행히 준수씨가 많이 도와줬다. 무거운 자루들을 옮겨준 덕분에 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자루를 맡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의 작업이 끝났다. 새벽 4시. 이렇게나 힘든데도, 잠이 쏟아졌다. 휴게실에서 잠시 앉았는데, 눈이 스르륵 감겼다. 준수씨가 날 깨운 뒤에야 내가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는 걸 알았다.

작업장 문을 여는 게 무척 두려웠다.

[오전 6시] 육체와 정신은 한계에 직면하다

밤샘 근무, 그것도 극한의 육체노동을 하는데도 공식적인 휴게시간은 없다. 계약서상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 30분부터 새벽 6시까지다. 여기서 0시~1시, 4시~4시 30분이 휴게시간이다. 하지만 담배를 피울 시간 몇 번을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짐을 날랐다.

인력 업체가 마련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한 건 오후 6시 45분. 이후 저녁 먹은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친다고 해도, 근로계약서보다 1~2시간은 더 일하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곳 택배 회사에서 받는 시급은 최저임금(시급 6030원)에 야간수당을 더한 금액이다. 야간수당은 기준시급의 0.5배지만, 실제로 받은 돈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상 강제적인 연장근무 또한 큰 문제다. 계약서상의 퇴근 시간은 오전 6시다. 하지만 사당역 앞에서 관리 직원은 우리에게 "오전 11시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사람만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다들 연장근로를 거부하면 일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연장근로에 응했다.

근로계약서에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준수씨도 쉬는 시간 기자에게 "계약서와 다르게 쉬는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2시간을 일한 뒤 단 5분을 쉬고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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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설연휴를 일주일여 앞두고 서울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우체부와 택배직원들이 가득 쌓인 우편물들을 분류·정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오전 7시 30분] 배고픔의 고통을 느끼다

오전 7시 30분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또 하나의 고통과 맞닥뜨려야 했다. 바로 배고픔이다. 전날 오후 7시 30분에 저녁을 먹은 뒤, 12시간 동안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했다. 숙련자들도 빵으로 허기를 때웠다.

컨베이어 벨트는 알바생의 아침 식사를 위해 멈추지 않았다.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이었다. 알바생뿐만 아니라 숙련자들도 초주검 상태에서 일했다. 내 앞에 섰던 40대 남성은 눈을 거의 감은 채 택배 상자를 분류했다.

[오전 11시] 드디어 밤샘 노동이 끝났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춘 건 오전 11시.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고,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류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사당역에 도착한 건 낮 12시였다. 나도 모르게 빵을 하나 사, 입에 구겨 넣었다. 물 말고 무언가를 먹은 건 16시간 30분 만이었다. 함께 일한 몇몇 20대도 사당역에서 허기를 달랬다.

집에서 선잠을 자고 오후에 일어나니, 왼쪽 무릎을 굽히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몸이 망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통장에 찍힌 일당을 확인해보니, 최저임금에 야간·연장근로수당을 더한 돈이었다. 함께 일한 청년들은 통장에 찍힌 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탈조선'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각 택배 상하차 모집 공고를 보고 사당역으로 가고 있을 또 다른 청년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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