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 활동가의 마지막, 이럴 줄 몰랐습니다

부산반빈곤연대 윤웅태 대표를 추모하며

등록 2016.02.16 18:34수정 2016.02.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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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태 주거복지부산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 부산참여정치실천연대


부산반빈곤센터 대표 윤웅태 동지. 2016년 2월 14일, 46세를 끝으로 한 줌 재가 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만덕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오래된 달동네 만덕. 지금은 그 많던 집들이 철거되어버린 곳 만덕.

머리 하얗게 센, 집 잃은 만덕 주민들이 그의 영정을 모셔놓고 절을 했다. 짧은 노제 내내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집, 만덕주민사랑방을 지키는 개는 곡을 하듯 울었다.

몇 해 전 겨울밤,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서울역이니 갈월동에 있는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추위와 생리통에 얼이 다 빠진 채 마감이 임박한 원고 하나를 쓰는 중이었다.

도저히 술을 마실 상태가 아니었지만, 꾸역꾸역 몇 잔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때 활동비 월 60만 원을 받을 때였는데(동종업계에서 괜찮은 편이었다) 그는 2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당시 나와 함께 상근하던 동료는 "와 대단하다, 멋있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그걸로 어떻게 먹고 살아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는 "다 그렇게 산다"고만 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답답한 양반아. 그래가지고 당신의 삶도 다른 사람의 삶도 재생산이 되겠나'하는 딱한 마음이었다.

철거된 만덕공동체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개발사업이라지만 쫓겨난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살 길은 요원하다. 그래서 만덕 5지구 주민공동체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 최예륜


철거되기 전의 만덕동 만덕주민사랑방에 걸려있는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은 풍경.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만덕주민공동체


하지만 그는 꾸역꾸역 활동도 삶도 이어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없는 형편에 수련회고 전체회의고 일 년에 몇 번씩 서울에 올라왔다.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나 보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선을 위한 투쟁이며 용산참사 추모사업이며 빈곤 철폐의 날이며 하는 빈곤사회연대 사업 일정에 부산반빈곤센터의 일정도 맞춰졌다.

나는 자료집, 포스터만 보냈지, 부산에서 벌어지는 사업이 있어도 한번 찾아가 보지 못하고 가끔 전화나 할 뿐이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매달 보내오는 분담금 꼬박꼬박 받으며, '중앙' 노릇을 한다 여겼나 보다. 그곳의 활동조건은 어떤지, 탄탄한 재정구조를 만들 방안은 없는지 같이 고민도 못 해봤다. 아무리 제 코가 석 자라고는 해도.


돈보다 생명을 약 7년전, 건강했던 윤웅태씨(왼쪽)와 반빈곤센터 활동가들. 건강보험료 체납자의 탕감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전상규


삼 년 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서 그를 만났다. 시꺼먼 얼굴을 보고 그저 "아저씨, 선크림 좀 바르고 다녀요" 했는데 몸이 그렇게나 망가진 줄은 몰랐다.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괜찮겠지, 술 좀 덜 먹고 약 먹고 관리하겠지, 싶었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픈 내색도 않고,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회의 잘했습니까?"였단다.

어젯밤(15일) 추모제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노동자, 장애인, 철거민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그가 가진 거라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높은 의지와 몸뚱아리뿐이었다. 그러니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은 그의 이상과 괴리되어가기만 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바꿔야 할 문제들은 갈수록 쌓여만 갔다.

노숙농성을 함께 하고, 집회를 기획하고, 밤새 원고를 써 강연을 다니고, 고공에 매달린 노동자를 만나고, 쫓겨난 주민을 만나고, 복지제도 문턱에서조차 넘어지는 빈민, 장애인을 만나고... 그러다 죽어간 이들의 상도 숱하게 치렀을 것이다. 무엇이 그의 굳어가는 간에 소주를 들이붓게 했나. 무엇이 그가 제 몸 하나 지킬 요령 없이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도록 내몰았나.

만덕동에 걸린 용산참사 7주기 추모 현수막 7년이 지난 지금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는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윤웅태 동지는 쉴 수 없었나 보다. ⓒ 최예륜


그런데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빈소에는 여기도 윤웅태 저기도 윤웅태. 닮은 얼굴들이 널려있었다. 가난하고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빈소를 지키며 황망한 마음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화장터에서 그의 몸을 활활 태우는 일이 시작되고서야 이제 그는 영영 없다는 것,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반빈곤센터의 최고운씨가 서럽게 흐느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이렇게 젊고 훌륭한 활동가가 어디서 나타났나, 했는데 그게 벌써 수년 전이다. 그녀가 감당할 무게가 무겁게 전해졌다. 매 순간 그의 부재를 느껴야 할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지금쯤 그의 육신의 흔적이 유골함에 담겼을 것이다. 그는 제 손으로 숱하게 장례를 치렀던 열사들이 있는 솥발산공원으로 향할 것이다. 다행히 양지바른 좋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그의 육신과 영혼이 따뜻한 햇살 속에서 위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들으며 올라가고 있다. 그의 노래처럼 윤웅태 동지의 가난한 노래도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윤웅태 동지 편히 쉬세요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윤웅태 동지. 따뜻한 곳에서 부디 편히 쉬세요. ⓒ 최고운(부산반빈곤센터)


** 약력**
금정고등학교 졸업
동의대학교 졸업
전. 동의대학교 교지편집위원장
전. 부산철거민연합 연대사업팀장
전. 노동자민중회의 운영위원
전.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전국회의 운영위원
전.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조직부장
전. 아시아공동체학교 준비위 기획단장
전.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 사업지원팀장
전. 주거복지부산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현. 부산반빈곤센터 대표
현.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감사
현. 민주노총 일반노조 조합원/노동전선 회원
현. 만덕5지구 주거생존권 공대위 상임대표

고 윤웅태 동지 장례위원을 2월 18일까지 모은다고 합니다. 부산은행 031-01-033227-8 부산반빈곤센터. 그를 아는 모든 분들, 그와 닮은 이들을 아는 분들 모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윤웅태 #빈곤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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