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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오지마을서 클래식 연주하는 젊은 음악가들

[청년 솔직 인터뷰] 현악4중주단 '무지크 콰르텟' 리더 정찬우

16.02.17 16:58최종업데이트16.02.1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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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스트 정찬우 바이올린은 찬우 씨의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다. ⓒ 무지크 콰르텟


개인적으로 <응답하라1988> OST인 '걱정말아요 그대'를 좋아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라는 노랫말에서 발버둥 쳤던 청춘을 위로받는다. 목소리가 갈라질 만큼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전인권의 원곡도 좋지만, 이적의 편곡은 들을 때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이적의 편곡은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로 노래를 끝마친다(원곡은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를 되뇐다). 새로운 꿈을 꾸는 한, 청춘과 꿈은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의 무게는 버거워지고 꿈은 바래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20대가 꿈을 향해 달려도 용인되는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젊은 청춘도 꿈을 잘 꾸지 못한다. 꿈을 좇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다. 헬조선, 흙수저, 3포세대가 오늘날의 20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꿈을 꾸는, 좇는 청춘은 있다.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사업의 인연으로 꿈을 향한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청년을 만났다. 정찬우(26). 그는 충남 지역 음대생으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 '무지크 콰르텟'의 리더다.

대한민국에서 젊은이가 지방대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

▲ '무지크 콰르텟' 리더 정찬우 씨 홍성군 한솔기마을을 찾아 온 정찬우 씨와 지방음대생으로 살아가는 고민을 나눴다. ⓒ 길익균


무지크 콰르텟은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을 위해, 간이역에서 시골 노인들을 위해, 오지마을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문화로부터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연주한다. 공익단체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재능기부로 연주회를 연다. 찬우씨는 "누군가를 위해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전문적으로 클래식 연주를 배운 학생들은 흔히 근사한 시향(시립교향악단)에 소속되길 원한다. 하지만 지방대학교 음대생이 시향에 들어가는 것은 지방대 출신이 대기업에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말 그대로 하늘에 별 따기다.

"지방대 출신은 시향에 들어갈 엄두도 못내요. 한 학교에서 한 명 나올까 말까해요. 그나마 대전 아래 지역은 괜찮다고 하던데, 대전 충남 지역 시향은 서울권 출신들이 거의 다 차지해요. 요즘 예산이 없어 단원을 줄이거나 시향 자체를 없애는 곳도 있다고 해요. 시향에 빈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전국에서 몰려와서 경쟁률이 엄청나죠. 아무래도 시향이 안정적인 직장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공무원처럼 평생직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음대생을 바라보는 편견이 있다. 잘 사는 집 아들 딸일 거라는 선입견이다. 음대에 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레슨을 받아야 하고, 학비도 타 학과에 비해 비싼 편이다. 찬우씨는 "친구들 중에 잘 산다고 할 만 한 집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크지 않은 키에 순둥이 같은 얼굴을 가진 그는 귀한 집 아들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평범한' 꽃집 아들이다.

대부분 음대생들도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번다. 그나마 음악이라는 재능이 있어 행사장에서 공연 알바를 뛸 수 있다. 기업인협의회 같은 단체 행사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식사할 때 청년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연주한다.

"그나마 바이올린, 첼로 같은 악기를 전공한 우리는 나은 편이에요. 피아노 전공자들이 제일 힘들어요. 결혼식 같은 데서 알바 할 수도 있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워낙 많고 행사 배경음악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서 알바거리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알바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바늘구멍 같은 시향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지방 음대생들은 전공을 포기한다. 음악이 꿈이었던 친구들이다. 전공을 살리고 싶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어서다. 그는 "대부분 악기를 전공하다 졸업하면 다른 일을 찾는다"며 "직장에 취직을 하기 위해 과를 옮기고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사를 준비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른 길 :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찾다

▲ 전통시장 공연 무지크 콰르텟은 시장, 간이역, 시골학교를 찾아다니며 연주회를 연다. ⓒ 무지크 콰르텟


찬우씨는 다른 길을 택했다. 시향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더라도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할 연주자가 필요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레슨을 받으며 친동생처럼 지내던 후배, 첼로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있던 대학교 후배, 그리고 가장 귀한 악기인 비올라 연주자는 "납치하다시피" 모셔왔다. 모두 대학교 재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청년음악가들이다.

찬우 씨(단국대 3학년)와 박세진(목원대 3) 씨가 바이올린을, 첼로는 이주연(단국대 졸) 씨가, 비올라는 구인선(나사렛대 2) 씨가 연주한다. 다들 대전, 충남 지역에서 행사공연이 있을 때마다 가끔씩 연주했던 이들이다.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와 연계시켜 사회공헌 하는 음악인을 그려봤어요. 그래서 봉사연주, 교육재능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했고 사각지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2014년 8월 창단한 무지크 콰르텟은 ▲소상공인 시장진흥공단 청년재능기부 ▲삼성그룹 대학생 끼 봉사단 프로젝트 ▲풀뿌리 희망재단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야외에서 일반 시민들을 만나 연주할 때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노년층을 위한 대중가요와 민요, 아이들을 위한 만화주제가도 연주한다. 찬우씨는 "클래식 문화를 접하기 힘든 대중과도 음악으로 소통하는 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받은 100만 원으로 오는 27일 오후 5시 천안 칸타빌레 아트홀에서 무지크 콰르텟의 첫 실내 단독공연을 연다. 시민들이 모아준 100만 원이라는 소중한 돈으로 공연장을 빌리고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모자란 돈은 부모님과 지인들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입장료는 없지만 관객들의 자율기부 전액을 지역의 저소득층 청소년오케스트라에 전달하겠다는 기특한 계획도 세웠다.

이제 대학 4학년... 그에게 물었다, 계속 할 수 있겠냐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 잡은 이후 찬우씨는 요즘 들어 가장 열심히 연주 연습을 한다. 6학년 때 벌써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다. 팀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직업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3월이 되면 그는 대학교 4학년이 된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무지크 콰르텟 활동은 계속 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언젠가는 저도 다른 직업을 찾고 바이올린 연주는 취미생활이 되지 않을까요? 대부분 대학교 4학년은 취직을 걱정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뭐하고 살지?' 같은 고민요.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힘들어 하잖아요. 솔직히 안정적인 직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연주만 했던 음대생이 무지크 콰르텟 활동을 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고 있다. 활동비를 후원받기 위해 공모서를 작성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계획과 포부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공연을 스스로 기획한다.

찬우씨는 "문화재단 같은 곳에 취직해서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무지크 콰르텟 활동과 같이 클래식과 사회복지를 연계하면서 기획자 겸 연주자로 살아가는 길도 있을 것이다.

사회에 발을 내딛기 1년 전, 불안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은 없지만 지금 당장 몰입할 수 있는 꿈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다. 몰입하지 못하고 '노오~력'만 하는 이 시대 가엾은 청춘들도 얼마나 많은가.

무지크 콰르텟이 신청곡을 받아준다면 이적이 편곡한 '걱정말아요 그대'를 연주해주길 바란다. 꿈을 잃지 않는 20~30대 청년들을 모아놓고 무지크 콰르텟의 클래식한 연주와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 현악4중주단 '무지크 콰르텟' 단원들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 무지크 콰르텟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시골다락방'에도 실렸습니다.
지방청년 음대생취업 취업난 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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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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