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 벌써부터 금수저가 부러운 이유

금수저에게 유리한 사회, 이런 경쟁은 옳지 않다

등록 2016.02.22 11:20수정 2016.02.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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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비 고삼들에게 가장 걱정이 많은 시기다. 수시만 보고 달린 친구들도 하나 둘 수능특강을 붙들고 있고, 그걸 본 다른 친구들도 덩달아 불안해져 우왕좌왕한다. 언제나 화젯거리는 대입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배들의 입시 결과에 혼란이 온다. 그 성적인데 여길 떨어졌다고? 미칠 노릇이다.

3학년때 성적이 급상승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다들 치열하게 공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가 앞으로 넣을 수 있는 성적은 한 학기가 전부다. 상담 때 선생님은 여긴 못 넣는다며 한 단계 낮춘 학교를 추천받는다. 상담 시즌은 2,3등급 친구들이 가장 절망하는 시기다.

2등급은 4%~11%이다. 전교생이 300명인 학교에선 전교 12등부터 33등까지다. 절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아니다. 오히려 칭찬받으면 모를까. 하지만 대입 앞에선 너무나 초라해지는 숫자다. 밀려오는 회의감에 펜을 잡을 수가 없다.

부럽지 않았지만 부러웠다

한숨을 쉬고 반으로 들어오는데, 저쪽 구석에서 화장 진하게 하고 핸드폰 붙들고 노는 무리가 보인다. 공부 안 하고, 담배 냄새도 나고 선생님한텐 버릇이 없다. 반 분위기 흐리는 애들이라 친구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난 우리엄마가 졸업하면 옷가게 해준댔는데."
"나는 그냥 외국 몇 년 갔다 오려고. 아빠가 보내준대."

분명 저 친구들이 잘못한 건 없었다. 일부러 나 들으라고 크게 말한 것도 아니었고, 저들은 자신의 미래를 친구들과 공유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울화통이 치밀었다. 억울했다.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고 프로그램 찾아다니고, 몇 등 내려갈 때마다 불안해하며 손톱을 물어뜯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우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나니까, 하며 다시 책을 폈다. 물론 졸업하면 땡이란 생각으로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하면서 살긴 싫다. 하지만 유학 한 번 갔다올까? 하는 생각으로 외국행 티켓을 끊는 건 중산층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하고싶은 일을 금전적 제약 없이 할 수 있다는 건 많이 부러웠다.

쟤네들도 나름 노력을 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나름의 노력'이 그 보상에 견주기엔 너무 부족해 보였다. 시험때도 깨어 있는걸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금수저구나. 우리가 열심히 수저를 만들 동안, 그들은 벌써 금으로 된 수저로 밥을 퍼먹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

뒤늦게 '충남 삼성고등학교' 에 대해 들었다. 삼성 임직원 자녀들을 위한 학교라고 했다. 기가 찼다. 직원 자녀가 아닐 경우엔 삼성고등학교 전용 내신 산출기로 만점 가까이 받아야 입학할 수 있다고 했다. 시설은 당연 최고였고, 전교생에게 갤럭시 노트 10.1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들만의 엘리트 세상을 만드려는 걸까. 태어날 때부터 돈 많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을 골라낸 학교였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학교까진 이해하려고 했다. 애초에 고액과외 받는 애들이나 갈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종종 자신의 힘으로 가는 친구들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대놓고 우리끼리 놀 거란 심보였다. 극심한 우월주의에 빠진 그들의 발상에 동수저쯤 되는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누군가 열폭('열등감 폭발'의 줄임말)이라곤 할 수 있겠다. 상관없다. 난 저런 학교가 있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으며, 이 학교는 '금수저를 위한 학교' 말고는 어떤 말로도 포장할 수 없었다. 금수저들이 기회를 쉽게 얻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게 너무 슬펐다.

금수저들에게 유리한 사회가 계속된다면, 노력 빼면 시체인 동수저들은 점차 포기하게 될 거다. 취업을 못하는 건 다 내 노력 부족 탓이라 생각했던 동수저에게 더 이상 남은 건 없다. 한 인터뷰에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경쟁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라" 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돈이 노력을 이기는 세상은 잘못된 거다. 이런 경쟁은 옳지 않다.
#고삼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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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곳을 왜곡 없이 비추고, 가려진 세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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