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애들이 알 리 없지

[책 뒤안길] 로고테라피 가르쳐 주는 <나는 별일 없이 늙고 싶다>

등록 2016.03.04 09:34수정 2016.03.0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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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으려고 꼬불쳐 놨는데 저 X이 훔쳐갔어. 빨리 빼앗아 줘."
"미친 X,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어? 먹는 X이 임자지."

암튼 그때는 이런 대화가 일상이었다. 내가 요양원에 몸 담고 있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는 통에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들이 골치를 썩는다.

요양원에 있는 분들 가운데 몸이 건강한 사람이 거의 없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거동할 수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움직임에 자유가 있는 분들은 거지반 치매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식탐만큼은 추종을 불허한다.

'식탐'이란 달리 말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 아마도 젊은이들보다 어르신네들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만큼 살날이 짧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잘 모르겠다. 이제 나도 환갑이 되면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이 든다는 것... 젊은이는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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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일 없이 늙고 싶다>(다비드 구트만 지음 / 배성민 옮김 / 청아출판사 펴냄 / 2016. 1 / 391쪽 / 1만6000 원) ⓒ 청아출판사

'늙음'과 '죽음'에 대한 주제가 마음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새 읽은 책 중에 오시카와 마키코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와 다비드 구트만의 <나는 별일 없이 죽고 싶다>가 그것이다. 전자가 재택사(在宅死)를 다루는 내용이라면 후자는 고상한 나이 듦에 대한 연구서라 하겠다.

사람은 고상하게 살아야 한다. 늙어감도 고상해야 한다. 죽음의 순간도 고상해야 한다. 어디서 죽을까의 문제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가 잘 알려주고 있다. 병이 들었을 때를 한정하여 병원과 의료진,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와는 달리 <나는 별일 없이 죽고 싶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고상하게 사는 법이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다. '고상한 죽음'이 주제라기보다 '고상하게 나이 들어감'이 주제다. 이는 '늙는다는 것'을 잘 수용할 때 의미 있는 삶이며 행복할 수 있다는 전제다.

'늙어 가는 것'도 '죽는 것'도 본인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늙어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 한 마디로 나이 들어보지 못한 '애들'은 모른다는 뜻이다. 노인의 식탐도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황희진 교수(국제성모병원)에 따르면, 노인과 치매환자의 '행동심리증상(BPSD)' 중에는 화냄과 욕설은 물론 식탐과 식습관의 변화가 들어 있다.(<메디컬투데이> 참고)

그러니까 요양원 해프닝은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병적 현상이다. 그저 추하게만 보이는 게 실은 늙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추하지 않게 잘 늙을까. 나도 이젠 이게 참 궁금한 나이가 되었다.

의미 있게 늙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별일 없이 죽고 싶다>는 로고테라피(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잘 늙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주는 책이다. 동기이론의 하나로 사고방식과 방법론이 결합된 로고테라피의 목표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적·심리적·정신적 차원 모두를 아우르며 의미 있는 노인의 삶을 조명한다.

로고테라피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써 유명해진 빅터 플랭클이 창안한 이론이다. 로고테라피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영적 차원을 중요시한다. 그렇다고 종교를 추천하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노년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천착한다.

"궁극 의미가 형이상학적 개념이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든, 궁극 의미를 믿는 것은 심리치료와 정신건강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궁극 의미를 믿는다면, 인간 생명력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된다. 궁극 의미를 믿을 때, 결국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별일 없이 죽고 싶다> 97쪽

의미 있는 죽음이 가끔 있다. 혹 의미 없는 죽음이라고 해도 죽음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늙어가는 건 다르다. 의미 있게 늙어야만 한다. 의미 없는 삶의 연장으로의 '나이 먹음'은 추하기 이를 데 없다. 인생 자체가 의미 있는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생의 궁극의 의미를 지성으로 알아낼 수도 없다.

책은 로고테라피의 수행 원리로 ▲ 의지의 자유 ▲ 저항하는 인간의 정신 ▲ 신체적·심리적·정신적 차원 ▲ 정신 건강이 핵심 ▲ 한계를 넘는 능력 ▲ 물러서는 용기 ▲ 현재에 살며 미래를 보는 눈 ▲ 대체할 수 없는 고유성 ▲ 의미의 변화 가능성 ▲ 순간의 의미 ▲ 선택의 자유 ▲ 정신적 긴장 ▲ 의미를 찾는 인생 ▲ 긍정 마인드 ▲ 행복은 덤이라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로고테라피를 통해 당연히 행복하고 의미 있는 늙어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테면 인디언 동화를 인용하며 "타인이 너를 필요로 하는 한 너는 행복할 것이다"라는 원리를 말한다. 사람들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길 때 그의 삶은 의미 없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는 한 어느 누구의 삶도 추한 늙어감이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자다'라는 거창한 격언이 아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 자체가 의미 있다. 세네카의 주장처럼, 인생은 '이미 있었던 것, 지금 있는 것, 앞으로 있을 것'이 있다. 특히 '앞으로 있을 것'에 주목하며 준비해야만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로고테라피의 실존철학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며 늘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긍정 마인드와 저항정신은 꼭 있어야 할 늙어감의 갑옷이다.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농담이 "자아가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쾌락 원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팁이라고 말한다.

늙어가는 과정 중에 요양원의 해프닝도, 저질의 농담도, 유치한 오락도, 욕지거리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 하느냐가 문제다. 아직 늙어 보지 않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늙음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과거의 치적을 내려놓고 곱게 늙어가는 과정에 좋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게 잘 늙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별일 없이 늙고 싶다 - 로고테라피가 알려 주는 의미 있는 인생

다비드 구트만 지음, 배성민 옮김,
청아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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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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