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살 '각' 안 나오는 지방대생들이 뭉쳤다

[할많하않?할많하!-⑨] 부산지역 청년 목소리 담은 <지잡> 편집진 인터뷰

등록 2016.02.29 08:11수정 2016.02.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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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방한한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의 애완 낙지 '사무엘'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비록 '탈조선'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지역 이동(노량진-강남)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접시에 담긴 '산'낙지가 되어 '죽을' 운명에 처했던 사무엘은 코엑스 아쿠아리움으로 이주해 목숨을 부지했다. 탈출이 그의 생사를 가른 것이다.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는 건 꿈을 위한 '도전'이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탈출'이라 보는 게 더 적절할 거 같다. 얼마 전 부산 청년 675명에게 고향을 떠나는 이유를 묻자 69%가 '일자리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른 말로 하면 청년들이 보기엔 부산에선 도저히 밥 벌어먹고 살 각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중략) 그렇기에 청년들이 부산을 탈출하는 건 단순히 지역을 떠난다는 공간적 의미를 넘어 바로 이런 악순환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다." (<지잡> 창간호, '부산을 탈출하는 청년들' 중에서)

사무엘처럼, 생존을 위한 탈출을 꿈꾸는 비수도권 청년에겐 '탈조선' 이전에 하나의 단계가 더 있다. '탈 지방'이다. 그들이 발 딛고 있는 곳은 한국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 그래서 "도저히 밥 벌어먹고 살 각이 안 나"온다.

지난해 12월, 그곳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가 나왔다. <지잡>이다. <지잡>은 부산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독립출판잡지다. '지방 잡 대학'을 의미하는 신조어, '지잡대'의 그 '지잡'이다. 이 잡지,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지난 19일, 이메일을 통해 <지잡> 편집진(김영준, 김성훈, 천재경)과 이야기를 나눴다.

부산 지역 청년들의 잡지, 지잡 부산 지역 청년들의 잡지, 지잡. 지난해 12월 창간호를 발행했다. ⓒ 지잡


편견과 딱지 붙이기에 대한 풍자, <지잡>

"수많은 청년이 지방에 살며 지방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지방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지잡대'라는 딱지가 붙고 가치가 매겨집니다.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자신의 가능성이 정해집니다. 딱 '지잡대'만큼이라고. 편견과 '딱지 붙이기'에 대한 나름의 풍자로 '지잡'이라는 이름을 내세웠습니다."


청년 문제를 다룬 글은 홍수처럼 쏟아졌지만, 정작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부족했다. 언론도, 정치인도 '수도권 4년제 대학생'을 청년의 기본 값으로 설정했다. 지역 청년은 늘 '노오력'하지 않은 존재, 그래서 쉽게 잊거나 소외되는 것이 마땅한 존재로 그려졌다.

부산 지역 사회적 기업인 '청춘멘토'와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청년들을 위한 잡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들은 '우리 목소리를 담은 잡지를 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후 청춘멘토와 인연이 있었던 언론비평 동아리 '프레임' 회원들 중심으로 지난해 9월부터 <지잡> 창간호를 준비했다. 현재 활동하는 인원 10명. 모두 부산에 있는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학생들이다.

시작은 무모했다. 그저 "소외된 지역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심정으로 모였기에, 별도의 수익원이 없었다. 첫 호를 만들 때는 청춘멘토의 도움을 받고 사비를 보태 비용을 마련했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지잡> 창간호 500부를 뽑아 부산의 대학가에 배포했다.

대학 선거 시행세칙과 총장직선제 논란, 지역 청년 이탈 현상을 다룬 경성 기사부터 동네 빵집 소개, 대학 학식 평가, 자취생 요리법 등을 소개한 연성 기사까지. <지잡>이 다루는 내용의 스펙트럼은 넓다.

눈에 띄는 것은 그간 소외됐던 이들의 목소리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앱을 개발하는 청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며 취미를 이어가는 청년 등. <지잡>은 '비 수도권 대학생의 이야기'를 넘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의 목소리도 담았다.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인간 소년상 시위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인간 소년상 시위. 2월초엔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문제를 짚기 위해 직접 인간 소녀?소년상으로 분해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 지잡


청년의 정치 참여에 주목하기도 했다.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 현장,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기를 담은 기사가 그랬다. 실제 <지잡> 편집진은 텍스트를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 활동을 한다. 지난 2월 초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짚기 위해 직접 인간 소녀·소년상으로 분해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사실 세련된 기획기사나 수준 높은 분석기사는 우리 <지잡>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지잡>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발로 뛰는 잡지'가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발로 뛰며 담고 싶은 건 '실제 청년들의 삶'

지역에는 청년의 목소리를 모아줄 창구가 부족하고, 있다 하더라도 영향력이 미미하다. <지잡> 편집진은 "그나마 부산은 대학교라도 많아서 청년노동조합이나 문화단체 등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청년 의제를 만들고 이슈화하기엔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지역 청년을 위한 의제 설정보단 당장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급급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잡> 편집진은 앞으로 "부산 지역 청년들의 실제 생활 이야기를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20대 총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로서 바라는 것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지잡> 편집진은 무엇보다 "실제 청년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자기 지역 청년들의 생활 모습도 모르고 의자에 앉아서 말로만 좋은 정책을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매일 마주하는 삶에서, 어떤 불안을 느끼고 힘들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잡>의 다음호는 3월 둘째 주에 발행된다. <지잡>을 1년에 4번 발행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탈출 대신 희망을 모색하는 목소리를 더 많은 이들이 주목할 수 있길, 지역 청년이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을 그려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지잡을 만드는 청년들 지잡을 만드는 청년들. 현재 부산 지역 청년 10명이 지잡을 만들고 있다. ⓒ 지잡


덧붙이는 글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지잡 #부산 #지역청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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