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가 사회복지에 앞장선 이유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의 사회정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

등록 2016.03.07 15:40수정 2016.03.0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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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7월 30일, 비스마르크가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사회정책을 실시해 독일을 복지국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보장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을 고안한 유럽 최초의 정치가였다.

1871년 통일 직후 독일제국은 한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1873년부터 시작된 수년간의 경제 불황으로 주가의 대폭락, 수많은 기업의 도산,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겪었다. 급속한 공업화의 결과 1871년 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던 노동자의 수는 1880년대 초 인구의 25퍼센트로 늘어났다. 1870년대에 시작된 불황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물질적 궁핍을 낳았고 빈부격차를 확대했다. 노동자들은 장기 불황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고, 이는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세력이 급증하는 요인이 되었다.

'사탕과 회초리' 정책

비스마르크는 1878년 10월 21일 새로이 구성된 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을 통과시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890년까지 12년 동안이나 갱신,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높아가기만 했다. 이런 현실에서 비스마르크는 법을 통한 강압은 사회주의에 대한 완벽한 대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적절한 사회정책을 펼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1881년 11월 비스마르크는 제국의회에서 사회입법의 취지를 담은 황제교서를 낭독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호 및 부양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그 후 약 10년간 광범위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제국의회에서 통과된 첫 번째 법령은 1883년의 의료보험 법안이었다.

병이 난 지 3일 후부터 보험금이 지급되기 시작해 길게는 13주까지 지급되었다. 산재보험은 1884년, 연금보험은 1889년에 각각 도입되었다. '위험한'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선량한' 노동자들을 포섭함으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위주의적 사회정책이었다. 이른바 '사탕과 회초리' 정책이다. 사회정책과 탄압법을 동시에 시행한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시행한 사회보장법은 독일 노동자를 전부 포함할 만큼 적용 범위가 광범위했다. 또 보험제도에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보험을 국가가 직접 관리했고, 나중에는 이를 담당하는 전문 기구를 설립하기도 했다. 비스마르크가 시행한 복지 제도, 특히 세계 최초로 시행한 노동자의 양로금이나 건강, 의료 보험제도는 독일 제국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상당 부분 완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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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은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 참여사회


비스마르크의 '위대한 전환'

물론 이런 권위주의적인 정책으로 참다운 국민 통합이 이뤄질 수는 없었다. 노동 계급의 고통을 덜어주기보다는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위대한 전환'이었고, 그 후 유럽 각국 사회보험제도의 본보기가 되었다.

1884년 오스트리아에 이어 1893년에 이탈리아, 1901년 스웨덴, 네덜란드 등지에 이와 유사한 제도가 등장했다. 한 세대 뒤 영국의 자유당 정부가 실시한 사회보험은 상당 부분 독일 사례를 본받은 것이었다. 이제 시민의 복지는 국가의 의무가 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0-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한 결과, 소득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 가구 간의 순자산 격차가 2010년 5.1배, 2011년 5.7배, 2012년 6.8배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퍼센트 가구의 순자산이 늘 때, 하위 20퍼센트 가구의 순자산은 오히려 줄었다. 상위 20퍼센트 가구의 순자산이 2010년 5억 1천만 원, 2011년 5억 3천만 원, 2012년 6억 원 추이를 나타낼 때, 하위 20퍼센트 가구의 순자산은 2010년 1억 원, 2011년 9,400만 원, 2012년 8,900만 원으로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10퍼센트 안팎으로 OECD 국가평균 21퍼센트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사회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실업급여와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같은 복지혜택이 가장 적다. 노조가 과격한 투쟁에 매달리면서 우리 노사관계 경쟁력이 세계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실직 후 사회보장이 취약한 데 일부 원인이 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지 않고, 우리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나친 재정부담도 피하면서, 경제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한국형 복지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의 사회정책이 실시된 것은 까마득한 19세기의 일이다. 지금은 21세기다. 비스마르크의 과감한 역발상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찾아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상익님은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입니다. <나의 서양사편력 1·2>,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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